<여성의 실력 발휘는 사회 하기 나름>










   <여성의 실력 발휘는 사회 하기 나름>

 

“갈대밭에서 자라는 칡넝쿨은 오십 센티미터를 넘지 못하지만 낙락장송을 타고 오르는 칡넝쿨은 소나무
키만큼의 하늘을 향해 높이 오를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은 아마 스승을 잘 만나야 큰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딱히 이와 같은 비유가 아닐지라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느냐 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도 당대에 플라톤과의 만남에 대해 매일 감사기도를 올렸다지 않은가.

  물론 개중에는 그 어느 누구도, 또 그 어느 상황과도 무관하게 그야말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사람도 있으리라. 그러나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게 마련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엔 그 비중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분명 여성
본연의 무한한 가능성의 실존 값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상황을 만나느냐에 따라 갈대밭의 칡이 되기도 하고 하늘 향해 뻗은 칡이 되기로 한다.


물론 이것은 여성은 스스로 서지 못하고 그 무엇에 의존하여야 비로소 서게 된다는 의존적인 속성을
비유하자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사회질서 속에서는 여성들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여성의 실력 발휘는 사회 하기 나름’이 아니겠는가. 혹 아는가, 올바른 여성관이 표류하지 않고 정착되는 사회가 되면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우리 여성들도 그런 사회를 만나게 된 것에  대해 매일 감사기도를 올리게 될지도.

  한때 왕년의 인기스타 엄앵란이 꽤 바쁘게 TV화면에 내비친 적이 있었다.
당시 자전적 수필집 “뜨거운 가슴에 좌절이란 없다”라는 책을 통해 남편 대한 외도를 화끈(?)하게 눈감아 주는 말을 시원스럽게 내뱉어 여장부(?)다운
면모를 유감 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의 무분별한 외도에 대해 스트레스 해소니 미남배우가 겪어야 할 유명세니 하면서 정말 대수롭지
않게(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여겼다. 그러면서 조강지처에게 다시 돌아온 남편을 받아들여 가정을 유지한 ‘최후의 승자’와 같은 당당함도
보여 주었다.

과연 한편의 자기 억제가 결여된 지속적인 외도와 다른 한편의 일방적인 인내와 체념으로 유지되는 불공정한
결혼 관계 속에서 진실한 행복이 얻어질 수 있을까? 모르면 몰라도 겉으론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있을지언정 진정한 사랑과
행복은 없었을 것만큼은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이젠 그러한 표류하는 여성관은 종식되어야 한다. 내키진 않지만 굳이
억지춘향 식으로 이해하자고 들자면 그간 결혼 이외에 다른 가능성이 차단된 과거의 여성들에겐 이러한 인내와 자기 억제의 희생이 미덕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남자=자유’였던 시대. 그 시대를 관통하여 걸어온 여자가 어찌 엄앵란
하나뿐이었겠는가. 이 땅의 무수한 여자들은 그런 시대를 살아왔다.

지금도 자신의 헌신만이 아름다운 가정을 유지하는 밑바탕이라고 생각하고, 가사의 전부를 도맡고, 그러면서도 남편이 가정의 머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중요한 의사 결정은 남편에게로 돌리고 그 결정에
순종을 하는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예전에 비해 요즘 여성들은 돈까지 벌고, 그 돈은 전적으로 남편과 자식을 위해 쓴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런 것으로 여성들이 실제로 얻는 보상은 낯뜨거운 찬사와 알량한 보람과 자그마한 기쁨이다.

그러나 일방적인 헌신은 남녀 관계에서 종종 배신으로 귀결된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 터이다. 여성들의 그러한 봉사와 헌신은 본인에겐 많은 희생을 감내하게 하지만, 오래된 일방적인 헌신은 상대방에겐 더 이상 고맙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은, 하찮은 습관일 뿐이기 때문이다. 습관에는 긴장이 없다. 그러한 습관은 인생의 모든 것을 보상해 주지 않는다.

지금은 평등을 지향하는 시대이다. 더 이상 엄앵란식의 인생이 미덕이
될 수 없는 시대이다. 사회는 이제 갈대밭의 칡넝쿨이 아닌, 소나무의 칡넝쿨이 될 수 있도록 유능한 여성 인력들을 사회적으로 제대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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