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할머니! 안쪽으로 들어가요. 들어가”

전주 중앙시장 팔달로변. 호루라기를 든 단속요원의 한마디에 양영녀 할머니(82)는
슬금슬금 펼쳐진 곡식들을 인도 안쪽으로 끌어들인다.

“직접 농사지은 거여, 한 되만 사봐”

찹쌀과 맵쌀, 콩을 한줌씩 쥐어보이며 양 할머니는 80대 노인답지 않게 힘있는
목소리로 손님을 끈다. 하지만 하루 동안 팔아도 몇 천원이 고작이다. 그래도 귀여운 손주들에게 사탕 한 봉지 쥐어주는 맛에 양 할머니는 하루가
바쁘다.

남들처럼 번듯한 가게를 차린 것도 아니며 바람과 비를 막을 수 있는 천막을 칠 수도 없다.  전주 중앙성당 부근 인도에는 시장 안에
자리를 잡지 못한 양 할머니 같은 노인들이 하루 수 십명씩 나와 있다. 단속이 끝나는 오후 5시쯤이면 서로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모여들지만 언제부터인가
자기자리가 정해져 버렸다.

양 할머니는 목이 좋은 곳에 끼지도 못한다. 노점 행렬의 가장 끝자리에 가면 가지가지
곡식을 늘어 놓은 양 할머니를 만날 수 있다.

양 할머니의 깊게 패인 주름살에서 그 동안 살아온 인생역정을 읽을 수 있다.

40여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평생동안 농사를 지어 5남매를 키워 왔다. 할머니의
억척스러움 덕분에 5남매는 각자의 자리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여자 혼자의 힘으로 자식들을 고등학교까지 졸업 시켰건만 남들처럼 대학에 보내지 못한 게 항상 한으로 남아 있다.

이제는 농사일이 힘들 만큼 많이 늙어버렸다. 그래서 시작한 게 노점상이다.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지 못했지만 손자들에게 만큼은 더 잘해주고 싶은 게 할머니의 욕심이다.

노점을 해서 번 돈은 주로 손자들의 용돈으로 쓰인다.

“활동이라도 해야지 집에 누워있으면 뭐혀, 용돈도 벌고
얼마나 좋아”

갖은 굴곡을 헤쳐온 할머니의 얼굴엔 오히려 환한 웃음이 가득하다. 콩을 담고 있는
낡은 보자기들이 그 동안 할머니가 살아온 인생 여정을 증명해 주고 있다.

갑자기 빗방울까지 떨어지자 허겁지겁 곡식을 싸는 할머니는 하늘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오늘은 완전히 공친 날이다.

“비도 오고 오늘은 모처럼 귀여운 손주들 만나러 작은 아들 집으로 일찍 들어가야 겠어”

양 할머니는 내일을 기약하며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복정권기자 b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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