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무렵, ‘된 장녀’라는 신조어가 널리 회자 되었다.주로 허영적 소비를 즐기는 여성들을 비하하는 말로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 되었다.당시 어느 주간지에서 스타벅스 카페를 자주 이용하는 여성들에게 '왜 스타벅스를 찾는가?' 라는 인터뷰를 한데서 생긴 말이라 했다.‘'미국 문화를 즐기러 온다'고 대답한 한 여성의 사연을 두고 '점심은 분식집에서 3~4천원짜리 된장찌개를 먹으면서 커피는 5천원짜리를 마셔야 되냐'는 식으로 조롱하면서 ‘된장
어렸을 적, 어머니는 음력으로 1월 15일 이른 아침이면 우리들을 깨워 동네를 돌게 했다.우리는 덜 깬 눈을 비비며 동네를 돌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이름이나 호칭을 부른 뒤 상대가 대답하면 잽싸게 “내 더위 니 더위 맞더위!”를 외쳤다.정월 보름날 다른 사람에게 더위를 팔아야 그 해 더위를 타지 않는 다는 믿음 때문에 생긴 풍속이다.그 더위 팔기는 해 뜨기 전에 만나는 사람에게 팔아야 효력이 있기에 새벽 동도 트기 전에 시린 손을 호호 불며 동네를 쏘다니는 수난(?)을 겪어야만 했다.더위팔기는 주로 또래의 친구
금,은 보석은 세상에서 귀하게 대접을 받는 귀중품이다.이들은 모두 땅 속, 즉 지하자원 출신이다.땅속의 엄청난 밀도와 압력과 세월 속에서 독특하게 반응하여 생성된 희귀성이 강한 것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이 세상의 귀한 것들은 대부분 땅 밑에서 나온다.땅속에는 무생물만 묻혀 있는 것은 아니다.생물체가 살아가기 힘들어 보이지만 땅 속에는 엄청난 미생물과 함께 땅 위 못지않은 생물들이 살고 있다.땅속 미생물 무게를 다 합치면 70억이 넘는 인류 전체 몸무게보다 수백 배 많다고 한다.그 미생물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 식물 뿌리다.식물
문득문득 떠오르는 기억은 맛이나 냄새에서 열린다.오래전 아프리카에서의 숯불 가래떡은 기억의 맛이다.“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질 줄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빈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베개를 돋아 고이 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고향의 들녘을 마치 그림처럼 펼쳐주는 이동원 박인수가 부른 노래 “향수”다.노래 역시 때로는 기
요즘처럼 번듯한 프라이팬이 없던 내 어릴 적에는 전을 부치는데 무쇠솥뚜껑만한게 없었다.솥 뚜껑을 뒤집어 놓은 넓적한 무쇠 판에서 구수한 냄새가 풍겨나오면 어김없이 올망졸망 아이들이 모여든다.김장이 끝나고 겨울이 깊어지면 으레 솥뚜껑 프라이팬에 올려지는 단골은 단연 배추전이였다.내 얼굴만한 배추 한 잎을 걸쭉하게 반죽한 밀가루에 듬뿍 발라 솥 판에 올린다.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노릇노릇 하게 구워지는 배추전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이미 행복해졌다.솥뚜껑은 하도 넓어 넓적한 배추전 대여섯 장은 동시상영하기에 충분하다.하기야 한꺼번에
“어깨동무 씨동무 미나리 밭에 앉았다. 동무 동무 씨동무 보리가 나도록 씨동무” 딱히 놀 거리가 없었던 어릴 적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가면서 화음과 동작을 맞춰 즐겨 부른 노래다.왜 그때의 씨동무들은 허구 많은 밭 중에 미나리 밭에 앉았을까? 지금도 여전히 궁금하지만 그 답은 모른다.다만 지금도 미나리를 먹을 때면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재롱이 추억 속에서 은근한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논이나 습지에서 아무렇게나 자라는 듯한 미나리에 관심을 둘 나이도 아니지만 헛디뎌 탁한 흙탕물 속 미나리 밭에 발이라도 빠지고
흡사 회색 껍데기의 밤톨만하다.가시 대신 돌처럼 단단한 껍질로 자신을 에워싸고 있다.쫀득쫀득한 질감에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에는 살짝 단 맛도 돈다.노르스름한 속살은 저절로 침샘을 자극한다.빠른 손놀림이면 한 양푼 정도야 순식간에 비워낸다.여기에 텁텁한 막걸리는 최적의 궁합이다.바로 겨울철의 별미 꼬막이다.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며 겨울이 오고 있음을 알려줄 무렵이면 연례 행사처럼 꼬막을 주문한다.게장을 밥도둑이라고 하는데 우리 집의 밥도둑은 단연코 꼬막이다.특히 남편의 꼬막 편식은 유난하다.인터넷으로 주문한 꼬막 2망태기 중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떨어진다. 나뭇잎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열린다.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 영화 를 보고 난 후 이 글을 계속 중얼거렸다.오래 익을수록 맛있는 인생 영화 한 편을 보았다.다큐멘터리 “인생 후르츠”다자연을 벗 삼아 함께 나이 들어가는 노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주인공의 나이테는 90+87= 177이다.90세 건축가 할아버지 슈이치와 어떤 요리도 척척 만들어내는 87세 할머니 이바타 히데코다.1970년 고조기 뉴타운 지역에 자리를 잡은 두 사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맛이 있다.바로 추억의 맛이다.사는 게 팍팍한 날.온몸에 힘이 빠질 때, 계절에 수레바퀴에서 무언가 충전이 필요할 때, 추억의 음식은 위로가 된다.바로 나에게는 콩나물국이 그런 음식이다.우리의 먹거리 속에 차지한 콩나물의 추억은 콩알만큼이나 뿌려져 있다.겨울이 시작되고 신 김치가 맛이 드는 이때쯤이다.우리 집 부엌에는 자주 콩나물의 비릿한 냄새가 진동했다.겨울 채소가 없던 시절 콩나물은 화려한 변신으로 식탁을 차지했다.콩나물무침으로 콩나물찜으로 때로는 콩나물밥으로 콩나물 잡채로 한 겨울 식탁을 주름 잡았다.
그 날 따라 내가 남편보다 아침에 늦게 일어난 게 화근이었다.그보다 평소 하지 않던 일을 저지른 남편의 탓이라고 해야 더 정확한 사실이다.아침에 일어나 보니 전날 저녁 만두를 빚기 위해 애써 다져놓은 만두 속이 보이지 않았다.분명 주방 한편 그릇에 담아 소쿠리로 잘 덮어두었던 것이다.아뿔싸! 만두소가 가득 담아있어야 할 그릇과 소쿠리는 이미 깨끗이 씻어져 음식물 쓰레기통 옆에 정갈하게도 놓여 있다.우렁 각시는 밤새 밥을 지어놓고 갔다는데 밥은커녕 일만 저지르고 간 우렁 총각이 다녀갔음이 분명하다.남편이다.아침 일찍 일어난 남편이 기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 처녀, 총각.모두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다.이들 호칭 중에 다른 것들과 달리 독특한 게 하나 있다.바로 총각이다.즉 김치 앞에 붙일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 총각이다.이름하여 총각김치다.알타리김치라고도 많이 불리는 총각김치는 김장김치의 백미를 장식한다.평소에는 ‘총각김치’라는 이름에 대해 무심했다가 김장을 하면서 어느 누군가 ‘하고많은 호칭 중에 왜 유독 총각김치만 있을까?’라고 중얼거리듯 질문을 했을 때야 비로소 ‘그렇게 말이야’라
“오늘도 쓰레기 국이야?”어릴 적 이 한마디 말실수에 나는 집밖으로 쫓겨나 엄동설한 찬바람을 뒤집어쓰며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매일 이다시피 먹는 국이 어린 입맛에 질리기도 했지만 나는 정말 버려진 쓰레기로 만든 국인 줄 알았다.바로 시래기국 이야기다.김장을 다 마무리하고 남은 배춧잎이나 무 몸통에서 잘라낸 잎들을 모아 처마 밑 새끼줄에 주렁주렁 매달아 두고 노랗게 말라 배배 비틀어댈 때까지 말리는 게 시래기다.어린 나의 눈에는 당연히 버려진 잎들을 모아 말린 것이니 쓰레기나 다름없어 보이는 건 이상할 게 아니었
차를 타고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봉동을 들렀다.마침 김장철도 다가오고 해서 생강을 좀 살까 했던 참이었다.생강하면 대명사처럼 떠오르는 곳이 봉동이니 산지에서 직접 구하면 맛이나 가격 등 여러모로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의 위안도 있었다.생강을 재배할만한 한적한 마을의 한 농가를 들렀다.“생강 좀 사려고 하는데요!” 마당에서 가을걷이 손질을 하고 있던 할머니가 굽은 허리를 펴며 말했다.“우리 시앙은 벌써 다 나갔어요!” “아니요 할머니 생강을 사려한다고요.” &ldquo
호박만큼 억울한 식물도 드물다.주로 못생김의 대명사로 애꿎은 호박을 내세운다.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 되냐며 대놓고 깔본다.아무리 멋지고 예쁘게 꾸며본들 그 본바탕이 어디 가겠느냐는 표현을 하필이면 호박에 비유한다.아예 호박 꽃도 꽃이냐며 위험한 성희롱까지 한다.다 찢어지고 헤져 모양이 흉측할 때도 ‘우박 맞은 호박’같다고 표현한다.음흉하고 엉큼한 사람들을 일컬을 때 왜 뒤에서 호박씨를 깐다고 둘러대는지 모르겠다.우리 속담 중에는 '실없는 짓으로 엉뚱한 일을 저지른다'는 뜻으로 "시러베장단에 호박
"쪽파 다듬어/ 젓국에 절여 파김치를 담근다/폭 익혀 /뜨거운 밥에 걸쳐 먹으면 /삭아진 젓갈의 감칠맛 /매콤한 훈기가 /코밑에서 쿵쿵 인다/빨리 파김치와 밥 먹어야지/침이 고여 안 되겠다."한복선 시인의 ‘파김치’라는 시의 앞부분이다.이 시를 읽으며 파김치를 상상하노라면 정말 침이 고인다.파는 그 맛으로만 우리 몸에 헌신하는 게 아니다.그야말로 파김치가 될 정도로 지친 사람에게 보약 같은 원기를 제공한다.파김치는 맵지만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요즘 같은 환절기에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음식으로 파만한 게 없
‘배추’가 순우리말일까? 한자일까?가을 밭 가득한 배추를 보고 있자니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배추는 한자어 백채(白寀)가 로 그 음이 바뀌어 온 말이다.그러나 표준 국어 대사전의 지침에 따라 '고유어'로 볼 수 있다는 ‘배추’.명색이 방송인 출신인데 이 정도는 답을 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인터넷 백과사전을 뒤져 짐짓 내 지식인 양 정리를 했다.아마 이것도 일종의 직업병일 것이다.‘백 가지 채소가 배추만 못하다&rs
“'무'가 맞아요? '무우'가 맞아요?“ 방송 일을 하다 보니 가끔 이런 애매한 표준어 질문을 받곤 한다.국어 표준어상 정답은 ‘무’다.그 동안 그러려니 하고 써왔던 '무우말랭이', '무우생채', '무우김치'에서 ‘우’자는 빼야 바른말이 된다.‘무’는 이렇게 애매한 표기와는 달리 우리 일상에서 가장 쉽게 접하는 채소중의 하나다.무는 아무 땅에서나 잘 자란다.마트든 시장에서든 손
에멘탈, 묑스테, 카망베르, 고우다, 파르메잔, 체더발음하기에 혀를 돌리기도 쉽지 않다.죄다 치즈 앞에 붙어있는 이름들이다.주로 생산지에서 따온 이름 외에 생긴 모양에 ‘따라 가는 입자 모양의 그라나, 벽돌모양의 브릭이라고 부르는 치즈도 있다.수도원의 이름을 본 따 지은 프랑스의 포르 뒤 살뤼, 폴란드의 트라피스트도 있다.평소 와인 안주로 즐겨 먹는 치즈였지만 이렇게 종류가 다양한 줄은 임실 치즈테마파크에 마련된‘치즈숙성실’을 둘러 본 뒤 알았다.임실 치즈축제 현장에서 서로 다른 10개의 치즈를 놓고
꽃무릇이 아직은 이른 가을 초입인지라 선운사를 거쳐 도솔암에 이르는 계곡 길은 한산했다.도솔암을 찍고 돌아 와 풍천장어를 점심으로 먹을 요량으로 걸음을 서둘렀으나 도솔암에 이를 무렵엔 벌써 점심 때가 되고 말았다.건성으로 암자를 둘러보고 돌아서는 찰나에 반가운 표지판이 눈길과 마주쳤다.‘점심 공양시간 12:00~13:00 ‘‘공양’ 이라! 부처 앞에 음식물이나 재물 등을 바침과 함께 사찰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공양이라 한다.속세의 천박한 표현으로 절에서 주는 공짜밥이다.허기진 배가 그냥 발
집나간 며느리들이 슬슬 돌아 올 채비를 하고 있다.가을바람을 타고 콧속을 파고드는 구수한 전어 굽는 냄새를 버틸 재간이 없었음이리라.횟집 문 앞마다 때를 놓칠세라 내건 '가을 전어가 도착했습니다.'라는 문구만 보고도 벌써 군침이 돈다.바야흐로 가을의 대표 맛, 전어의 계절이 왔음을 알리는 소리 없는 빵빠레다.내가 어릴 적 이맘때쯤이면 아버지는 집 마당에 숯불을 펴 놓고 석쇠 위에 전어를 노릇노릇 구워내기에 바쁘셨다.숯불 냄새가 잘 배어 익혀진 첫 마리는 항상 우리 집의 '귀요미' 딸 내 차지였다.형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