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구사회교육부장

  전주 음식은 맛있다. 전주 사람들은 노상 맛있는 음식을 먹고, 그만큼 미각 또한 발달하다 보니 밖에 나가면 먹을거리 때문에 고생하고 음식 타박을 하는 경우가 많다. 외지에 나가 이름난 별미라고 권하는 음식을 맛보기도 하지만 그 맛에 만족하기란 쉽지 않다.

  전주의 ‘맛’을 상징하는 음식이 여럿이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단연 ‘전주콩나물국밥’을 첫 손에 꼽는다. 구수한 감칠맛도 그만이거니와 그 소박함과 정겨움에 마음까지 푸짐해진다. 술 마신 다음날 속풀이로 으뜸이고, 외지에서 손님이 왔을 때도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음식이다. 전주한정식이야 원래 고급 음식이라 아무나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지만 요즈음 고급화된 전주비빔밥도 서민들이 선뜻 찾기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밥은 ‘파는’ 게 아닌 ‘퍼주는’ 것    

 전주콩나물국밥의 진가는 풍부한 영양과 맛을 간직하고 있음에도 값이 싸다는 점이다. 서민들이 시장통에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던 소중한 ‘끼니’였다. 돈이 없어도 ‘말만 잘하면’ 한그릇 정도는 얻어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전주 콩나물국밥은 ‘음식’을 뛰어 넘어 ‘밥’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밥은 ‘파는’ 것이 아니라 ‘퍼주는’ 것이다. 선택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되는 것이었다. ‘밥’에는 사람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담겨 있다.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전주의 한 콩나물국밥집이 최근 가격을 5천원으로 올렸다고 해서 말들이 많다. 전주 시민들의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렵다. 콩나물국밥은 누구나 편안하게,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콩나물국밥이 한 그릇에 5천원이라면 더 이상 ‘전주콩나물국밥’이 될 수 없다. 전주콩나물국밥으로서의 ‘본연’을 잃은 것이다. 차라리 ‘콩나물 라이스 수프’라면 모를까.  

전주 시내 웬만한 식당에서는 아직도 4, 5천원이면 남부럽지 않은 백반을 맛볼 수 있고, 푸짐한 김치찌개나 생선찌개, 비빔밥도 먹을 수 있다. 전주 콩나물국밥이 이들만 못하다고 하는 소리는 아니다. 전주 콩나물국밥은 없는 사람도 훌륭하게 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던 ’밥‘이었다. 서민들의 ’목구멍‘ 문제를 해결하던 그 상징성과 가치, 의미가 더욱 크다.

모처럼 전주가 맛과 멋의 체험 관광지로 도약하는 이 마당에 국밥 값 천원 올린 게 뭐 그리 대수냐고 항변할지도 모르지만 사람 마음은 그게 아니다. ‘하찮은 배추 나물에 속상한다’고, 전주의 맛이라는 게 단지 입맛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님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외지인들이 전주에서 느끼는 것은 맛뿐만이 아니다. 밥맛을 돋우는 ‘알파’가 있기 때문에 전주를 찾고, 맛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관광객들이 전주 음식을 즐기는 이유는 맛과 영양은 물론이거니와 가격 면에서도 큰 돈 들이지 않고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막걸리 한 주전자만 시켜도 ‘상다리가 부러지게’ 갖가지 안주가 곁들여지고, 콩나물국밥 한 그릇을 먹어도 원하는 만큼 가반(加飯)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전주의 정이요 인심이다.

  ‘아트폴리스’ 핵심은 情과 인심 

전주는 지금 ‘아트폴리스(예술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행정 기구까지 만들어 의욕적으로 미래 전주를 가꾸고 있다. 어수선한 개발 속에서 ‘소탐대실(小貪大失)’을 경계하게 된다. 한옥마을 내에 중국산 나무와 돌로 기와집들을 새로 짓고, 실개천을 만들고, 정자를 만든다고 해서 과연 전주가 아트폴리스가 되겠는가. 외형만으로 아트폴리스를 얘기한다면 대한민국에 전주 못지 않은 도시는 곳곳에 있다.

아트폴리스로서 전주의 진정한 가치는 외형이 아니라 정서에 있다. 면면히 이어 내려온 맛과 멋, 예술의 향취, 사람끼리 통하는 정과 인심, 포근함과 훈훈함,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아릿한 향수... 이러한 것들이 전주의 진정한 ‘아트’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도, 실망시키는 것도 사소한 데서 비롯된다. 전주의 소박한 인심이 새로운 관광 전주의 기틀을 세워가고 있다면, 5천원짜리 전주콩나물국밥은 전주 인심의 훼절(毁節)을 경고하는 전조(前兆)다. ‘과거 천년’을 명분 삼아 거창한 외형에만 집착하다가 소중한 가치를 소홀히 해, 결국 단명을 자초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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