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보통 사람들에게 ‘환경운동’이란 말이 생소한 시절이 있었다. 지난 80년대를 지나 90년대에 오기 까지 군산이 그랬다. 먹고 사는 일이 급했던 시절이라 공장 굴뚝의 매연을 탓하려면 이웃들 눈치를 보아야 했다.

그런 시절을 하루, 이틀 보내면서 환경 운동가들도 이 지역에 뿌리를 내렸다. 물론 평범한 이웃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환경 단체 또한 발판을 다져갔다.
그 중에서 군산에서 환경 운동을 실천하는 시민들의 자생 모임인 환경부 지정폐기물 공공처리장 ‘주민지원협의회’가 21년의 연륜으로 지역 환경 운동의 맥을 잇고 있다.
이 ‘주민지원협의회’는 지난 1991년 정부의 유해산업 폐기물(당시에는 특정 폐기물이라 불렀다.) 처리장 군산 설치를 반대하는 운동을 하면서 지역 시민단체와 연합하여 구성되었다.
 

▲‘주민지원협의회’가 걸어 온 길
 
군산에 ‘특정폐기물 공공 처리장’을 건설하려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은 1990년도의 일로 환경운동가들은 기억한다. 당시 K모씨가 환경부 장관으로 재임하던 때였다.

지방 공단에 입주한 몇몇 기업을 빼면 이렇다 할 기업체가 없었던 게 당시 군산시의 현실. 지금처럼 대단위 국가공단이 조성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국가공단 2지구 사업은 착공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새만금 사업은 그림조차 그려지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낙후 군산이었고 불 꺼진 항구였다. 그런 군산이었기에 ‘공단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폐기물 처리장이 필요하다’고 하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었다. 공단 조성과 기업 유치라는 표면적 논리를 통해 ‘특정폐기물 공공처리장’을 군산에 유치하기 위한 물밑 작업이 진행되었다.

시민들에게 ‘폐기물 처리장 =지역 발전’ 이라는 장밋빛 꿈을 꾸게 했다. 환경 문제에 대해 생소했던 대다수의 시민들은 뭔가 큰 국책사업이 벌어지는 줄로 착각했다.

그러나 이 사업은 당시 지역 대학 출신들에 의해 숨겨둔 실상이 공개되면서 전환기를 맞게 된다. 그들은 일본에서 중대한 악성 화학 물질인 이른바 ‘PCB(환경호르몬)'를 수입하여 군산에서 처리하려한다는 계획을 입수하고 강력하게 반대 운동을 펼쳤다.

그 결과 ‘PCB'의 수입과 군산에서의 처리 계획은 백지화되었다. 당시 환경 운동을 촉발했던 문제의 이 물질은 지금 우리나라에서조차 외국으로 수출하여 처리할 정도로 유해성이 심각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역 발전론’과 ‘환경 보전론’이 충돌하는 등 극심한 혼란기를 겪었다. 그러나 지역 발전에 꼭 필요한 사업이라면서 ‘공공처리장’을 짓겠다는 데는 더 이상 반대 명분이 없었던 것도 당시의 현실.

그러나 지금도 그 시설이 군산 지역 발전에 얼마만한 힘이 되었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발전적인 측면보다는 지역 분열, 그리고 환경 유해성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 오늘의 현실은 더욱 그렇다.

당시에 이 ‘특정폐기물 공공처리장’을 유치하기 위해 두 팔 걷어부쳤던 그들은 우리들의 후손들에게 ‘환경 문제 해결’이라는 영원한 숙제를 남겨주었다.

그 이후 이 지역의 몇몇 환경운동가와 작은 단체들의 반대했지만 군산에 특정폐기물 공공처리장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내는데 역부족. 그나마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지금의 ‘주민지원협의회’를 구성하여 본격적인 환경 운동을 펼치게 되었다.

 
▲‘주민지원협의회’가 하는 일
 
환경부 지정폐기물 공공처리장 주변의 주민들과 시민 사회단체로 이루어진 이 ‘주민지원협의회’는 처리장으로 들어오는 유해 물질을 우선 감시하는 일을 맡고 있다. 전북과 전남, 그리고 수도권 일부에서 반입되는 지정 폐기물 운반 차량을 2명의 감시원이 반입 폐기물의 성분, 처리 방법과 결과까지 확인한다.
그렇게 들어오는 폐기물의 양에 따라 ‘주민지원협의회’에 일정액의 반입 수수료가 지원되도록 협약을 맺었다. 그 기금을 환경 운동에 사용하기 위해 재단법인 환경사랑이라는 법인을 설립했고, 주민지원협의회는 재단에서 기금을 받아 실질적인 환경 운동을 벌여 나가고 있는 것.
협의회는 공공 처리장 감시와 현장 환경 운동을 함께 벌여 나간다. 공단 주변 마을을 돌며 폐스티로폼, 폐비닐 등 지정폐기물로 분류된 각종 오염 물질을 수거하여 지정 폐기물 소각장에서 소각 처리하고 있다.
주면 마을 주민들의 건강을 챙기는 일도 이 협의회가 하는 일 중의 하나. 우선 매년 1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주민 1인당 35만원씩 들어가는 건강 진단을 지속적으로 벌여 나가고 있다. 또 주면지역 주민 자녀들 중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생들 50명을 선발하여 1인당 20만원씩 매년 1천만원의 ‘환경 장학금’을 주고 있다.
이와 함께 6월 5일 ‘환경의 날’을 기념하여 매년 ‘환경 백일장’을 열어 이 지역 청소년들의 환경 의식을 일깨워 주고 있다.
 

▲‘주민지원협의회’가 가야 할 길
 
환경부 지정폐기물 공공처리장 군산사업소가 위치한 군산시 소룡동 1585번지 일대의 부지만 약 30,000평에 달한다. 하루 60톤 처리 능력의 소각로와 함께 창고형 매립 시설이 들어 서 있다. 이 창고형 매립 시설은 현재 6단계 중 5단계까지 설치 사용 중이다.
6차 매립장 2,700평은 오는 2014년에 시설할 예정이다.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폐기물이 들어와서 매립되면 오는 2016년에 이 군산사업소는 사용 종료된다.
지정폐기물을 들여와 처리하여 매립하였던 사업소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앞으로의 과제로 남았다. 군산시민들의 환경권과 건강권을 담보로 하여 운영되었던 유해 환경성 사업이니만큼 군산시민을 위하여 사용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주민지원협의회는 요즈음 그 문제로 생각이 깊다. 환경부 담당 국장과의 면담 당시 협의회는 이 부지를 ‘태양광 발전 부지’로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건의를 했다. 친환경 대체에너지와 관련된 사업을 해야만 30년 가까이 ‘혹’처럼 달고 다녔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협의회도 한 목소리를 내야 하지만 같이 꿈을 꿔야 하는 재단법인 ‘군산환경사랑’도 발걸음을 같이 해야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환경과 관련된 일을 일상적으로 벌여 나가야 된다는 것이다.
그 일을 위해 ‘주민지원협의회’가 궂은비를 달게 맞을 것이다. /군산=채명룡기자
 
■ 박정애 회장 인터뷰
 

박정애 회장

“주민지원협의회는 그야말로 주민들로 이루어진 순수 민간 환경 단체이지요.” 박정애 회장은 지정폐기물 공공처리장 주변 지역 주민들의 건강권과 환경권을 지켜 나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며 “환경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을 넓혀 나가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주민지원협의회가 해 온 가장 중요한 일에 대해 박 회장은 “다이옥신 발생을 줄이기 위해 눈 부릅뜨고 지킨 일”이라고 한 마디로 요약했다.

이와 함께 “만료가 되는 처리장을 어떻게 지역에 환원할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환경 문제의 현안을 진단하면서 “이 땅을 군산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주민지원협의회와 함께 시민들이 다시 한 번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산=채명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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