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감독 김한민)이 개봉 열이틀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역대 개봉영화 중 가장 짧은 기간에 1000만명이 봤다. 추세대로라면 1500만명도 가능할 수 있다.

역사를 다룬 영화나 TV드라마에는 역사 왜곡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퓨전사극 혹은 허구와 역사를 섞은 팩션사극이 대세가 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명량'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이고, 어떤 부분이 허구일까.

① 배설, 이순신을 암살하려했다?

'명량'에서는 죽음을 두려워한 배설(배우 김원해)이 거북선을 불태우고 이순신(배우 최민식)을 암살하려다가 실패, 도망가는 장면이 나온다. 달아나는 배설을 안위(배우 이승준)가 활을 쏴 사살한다.

사실이 아니다. '선조실록'에 따르면 배설은 명량대첩 직전 탈영했다. 신병을 치료하겠다고 허가를 받은 뒤 도망한 것이다. 조정에서는 배설 체포 명령을 내렸으나 종적을 찾지 못했다. 배설이 체포된 건 1599년이다. 선산에서 권율에게 붙잡힌 배설은 한양으로 끌려와 참형당한다.

②명량해전 직전, 거북선 소실?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명량에서 거북선은 건조되지 않았다. 조선 수군이 칠천량 전투에서 대패하면서 남아있는 거북선은 없었다. 따라서 내부 분열로 인해 거북선이 불타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선에 맞섰다는 '명량'의 이야기는 각색된 것이다.

다만 이순신의 조카 이분(1566∼1619)이 쓴 '행록'에는 "장군이 전선을 구선(거북선)처럼 꾸며 군세를 도우라 명했다"고 나온다. 거북선을 두려워한 왜군을 기만하는 전술이었다.

③장검, 조총, 화포?

영화에는 이순신 장군이 장검으로 적을 베는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장검의 길이는 약 2m 정도. 이 칼은 의장용 칼이다. 충무공은 길이가 90∼100㎝인 쌍룡검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량'에서 조선군은 칼을 들고 싸우지만 왜군은 조총을 들고 원거리 공격을 한다. 사실이다. 당시 왜군의 주무기는 조총이었다. 일본은 유럽에서 들여온 조총을 개량해 썼다.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조총은 화살만큼의 거리를 날아가지 못했다. 당시 조총의 유효사거리는 50~100m, 최대 사거리는 200m 정도였다.

조선 수군의 화려한 화포 공격은 '명량'의 볼거리 중 하나다. 조선의 주무기는 화포였다. 판옥선은 두껍고 단단한 소나무로 만들어져 원거리 화포를 장착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반면 왜군의 첨저선은 소나무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무른 삼나무로 만들어져 화포의 반동을 이겨내지 못했다.

화포는 충격과 함께 폭발하는 형태가 아닌 배를 부수는 쇠탄환이었다. 화포와 함께 길이가 2m에 가까운 화살 대장군전이 왜선을 부쉈다. 불을 내는 데는 불화살이 쓰였다.

④ 대장선의 백병전?

영화에는 장군이 탄 대장선이 왜선에 둘러싸여 백병전을 벌이는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백병전이 일어난 것은 맞지만, 왜군과 조선군이 맞붙은 전투는 안위의 배 위에서 벌어졌다. '난중일기'에는 "적장의 배와 다른 두 척의 적선이 안위의 배에 달라붙어 앞다투어 올라갔다. 안위와 그 배 위의 사람들이 각자 죽을 힘을 다해 몽둥이를 들거나, 창을 잡거나, 혹은 수마석으로 무수히 어지럽게 쳐댔다"고 쓰여 있다.

⑤충파 전술?

영화 후반부 판옥선이 전진해 왜선을 부수는 장면이 나오지만 실제로 명량해전에서 이 전술이 쓰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충파가 가능했을 거라는 의견과 판옥선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갈린다.

판옥선이 왜선보다 상대적으로 단단한 소나무 재질로 만들어졌고, 왜선은 전투용이라기 보다는 해협을 건너는 데 최적화된 첨저선이었다는 점에서 충파가 가능했을 거라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조선군과 왜군의 배는 모두 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만약 부딪친다면 둘다 부숴졌을 거라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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