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TV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코너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가 가요계에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3일 저녁 '토토가' 2탄이 방송된 직후 이날 출연한 가수들의 음원이 주요 음원차트 실시간차트에서 '역주행'하고 있다. '토토가'는 1990년대 전성기를 맞았던 가수들이 자신의 경력에 정점을 찍었던 곡들을 무대에 다시 재현한 코너다.

4일 오후 1시 현재 기준 최대 음원사이트 멜론에서 엔딩을 장식한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12위를 찍은 것을 비롯해 힙합듀오 '지누션'의 '말해줘'(22위), 듀오 '터보'의 '화이트 러브'(31위), 김현정 '그녀와의 이별'(33위) 등 이날 출연 가수들의 1990년대 히트곡이 대거 50위권에 진입했다.

'토토가'의 PPL 협찬사로 나선 kt뮤직 음악사이트 지니의 같은 시각 실시간 차트는 '토토가' 출연 가수들의 곡이 대거 10위권에 진입했다. 엄정화의 '포이즌'(3위), 터보의 '러브 이즈'(4위), 김건모 '잘못된 만남'(6위), 지누션 '말해줘'(8위), 터보 '나 어릴적 꿈'(10위), 혼성그룹 '쿨'의 '애상'(11위) 등이 인기다.

지니는 '토토가'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지니 관계자는 "코리안 클릭 주간 순방문자(12월22~28일) 수치가 전주대비 21.9% 증가했다"면서 "221만명 방문자로 1위 멜론을 바짝 추격했다. 또 지니 신규회원가입수도 전주대비 37.2% 늘어났다"고 알렸다

또 다른 주요 음원사이트인 엠넷닷컴에서도 터보의 '화이트 러브'가 1위를 차지한 것을 비롯해 김건모 '잘못된 만남'(3위), 터보 '러브 이즈'(5위) 등이 상위권에 랭크됐다.

'무한도전'에서 소개된 곡들이 음원 차트를 장악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동안 2011년 7월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를 시작으로 '무한도전'의 코너에서 소개된 곡들은 당시 활동하던 가수들의 노래들을 압도하며 '음원 최강자'로 부상했다.

그러자 2013년 초에는 음반·공연제작자와 매니지먼트 전문사업자들로 이뤄진 한국연예제작자협회가 "방송사(MBC)의 프로그램 인지도를 앞세워 음원시장을 잠식해 나가는 것은 대기업의 문어발식 경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등 가요계에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토토가'의 경우는 다르다. 기존 '무한도전'의 코너는 새로운 창작곡이었던데 반해 이번에는 한 때를 풍미한 가수들을 재발견하고 이들의 곡을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음반업계 관계자는 "아이돌 중심으로 재편된 현재 가요계에서 밀린 뮤지션들을 대중에 다시 소개한다는 점에서 기존 가요계 역시 환영하는 분위기"라면서 "이번에 '토토가'에 출연하지 못한 가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는 소식이 벌써부터 들린다"고 전했다.

'토토가' 인기는 시청률로도 입증됐다. '무한도전'은 노홍철 음주운전 등 여러 위기로 최근 시청률이 10%대 초반에 머물렀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 기준 지난달 27일 '토토가' 1탄이 전국 시청률 19.8%를 찍은 데 이어 3일 '토토가' 2탄은 예능프로그램 마의 시청률로 여겨지는 20%를 넘기며 22.2%를 찍었다. 또 다른 시청률 조사회사 TNmS 기준으로는 무려 30%에 육박했다. 수도권 기준 29.6%를 찍었고 순간 최고시청률은 35.9%에 이르렀다.

◇'토토가' 열풍 왜?…무대 통해 1990년대 가수 건재 증명

'토토가'에 출연한 김건모, 소찬휘, 엄정화,이정현, 조성모, 김현정, 지누션, 터보, 쿨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하고 있다. 그룹 '핑클' '솔리드', 듀오 '언타이틀' 등 섭외 과정에서 언급된 팀들도 주목받고 있다. 출연은 불발됐지만 섭외 과정에서 출연한 이효리가 집에서 '토토가' 본방 사수를 하며 춤추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SNS에 퍼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6일 신곡을 내는 소찬휘를 비롯해 올해 상반기 중 새 음반을 낼 예정인 김건모와 김현정은 '토토가'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공연 섭외와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SNS를 중심으로 이들뿐 아니라 1990년대 활약한 가수들, 나아가 그 당시 문화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 나고 있다.

사실 1990년대 문화가 재조명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 영화 '건축학개론'과 tvN '응답하라 1997', 2013년 '응답하라 1994' 등에서 이미 수차례 주목 받았다.

'토토가'는 실제 가수들의 무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차별화됐다. 17년 만에 방송에 나선 터보의 김정남은 숨차 했지만 관절을 꺾는 '각기 춤'이 여전히 가능했고, '섹시퀸' 엄정화도 아직 건재한 섹시미를 뽐냈다. 소찬휘의 가창력 역시 쩌렁쩌렁했고, '공연 장인' 이정현의 무대는 다시 봐도 개성이 돋보였다.

엄정화는 자신의 트위터에 "정말 모든 것이 그때 그대로 였습니다. 너무 시간이 오래 지나 기억조차 나지 않을것 같던, 한때는 나의 일상이던 그 모든 것들"이라면서 "녹화 한시간 전 연습에서 기억 안 날 것 같다며 걱정만하던 우리는 음악이 시작되자 몸이 기억해낸 동작들에 웃어버렸죠"라고 남겼다. "97년, 98년으로 되돌아간다는 건 가능하지 않았는데 녹화날 인사하며 반기는 쿨, 건모 오빠, 지누션, 이정현, 조성모, 김현정, 터보, 소찬휘, SES에 감격. 울컥하는 마음.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데 어쩜 그때로 돌아갈 수 있었는지"라고 덧붙였다.

이들의 한참 후배인 '소녀시대' 서현과 '쥬얼리' 예원은 존경심을 드러내는 한편 감동을 숨기지 못했다. 서현은 임신 중인 SES 멤버 유진을 대신해 무대에 올랐고, 예원은 미국에서 육아 중인 쿨 멤버 유리의 빈 자리를 메웠다. 예원은 트위터에 "다시봐도 소름이 끼칩니다. 어떡해"라면서 돈주고도 못 살 소중한 경험을 주셔서 감사해요"라고 적었다.

1990년대를 풍미한 작곡가들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쿨과 터보 등의 노래를 작업한 윤일상, 엄정화 등의 노래를 도맡아 만든 주영훈, 터보의 히트곡을 썼던 안정훈 등이다. 윤일상은 지난달 말 트위터에 "제가 20대초반에 만든 터보의 '러브 이즈'가 다시 1위를 하다니 감회가 새롭네요"라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환상여행을 온 기분입니다. 감사해요"라고 남겼다. 주영훈은 엄정화에게 보낸 트윗에서 "오늘 토토가 보는데 왜 눈물이 핑 돌까~오랜만의 춤추는 모습과 프렌즈 팀의 안무까지 완벽했어~ 신곡 하나 해야겠는데?"라고 남기기도 했다.

1990년대 가수들이 끊임없이 재조명되는 이유는 그들의 개성 때문이다.

최근 1990년대 활약한 가수들에 대해 쓴 에세이 '청춘을 달리다'를 펴낸 대중음악평론가 배순탁 씨는 책에서 90년대는 80년대에 비해 구체적인 브랜드 시대였다면서 가요계도 크게 양상이 다르지 않았다고 짚었다.

'토토가'에 출연한 가수들뿐 아니라 배 작가가 다룬 신해철, 서태지, 토이(유희열), 윤상, 윤종신 등의 뮤지션들 모두 자신만의 음악을 했다. 댄스 음악을 하든, 작가주의 음악을 하든 독특한 영역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망 이후 새삼 재조명되고 있는 신해철을 비롯해 최근 컴백해 활약한 서태지, 토이, 윤상 등 역시 브랜드가 뚜렷하다.

음반 업계 관계자는 "'토토가 열풍'은 K팝으로 뭉뚱그려지는 최근의 천편일률적인 아이돌 음악에 대한 일종의 반발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짚었다.

'토토가' 열풍에 힘 입어 특허청에는 '토토가'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콘서트' 등의 상표등록출원이 최근 수리됐다. 음반·공연 관련 종목으로 '토토가' 브랜드를 활용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무한도전'에서 직접 낸 상표 출원은 아직 없다. '토토가'의 브랜드를 이용하려는 일부의 편법인 셈이다. '무한도전' 측은 MBC의 법률 팀 등과 의논해 상표 출원에 대해 논의 중이다. 벌써부터 '토토가' 시즌2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향수마케팅 아닌 가수 활동 재개의 발판으로

'토토가' 열풍을 최근 영화 '국제시장' 신드롬에 비유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국제시장이 6 25 동란, 파독 광부, 베트남 전쟁 등 '아버지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며 공감을 불러일으키듯 '토토가'도 아버지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 침체로 인한 팍팍한 삶 때문에 과거로 계속 회귀하려는 사회적 경향과 맞물린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 '토토가' 열풍은 다른 관점으로 봐야 한다. 1990년대 활약한 이들이 아직도 건재하며 활동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현재 진행형 가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김건모, 조성모, 소찬휘, 이정현 등은 최근 3~4년 동안 새 앨범을 냈다. 하지만 아이돌 그룹에 편중된 가요계 흐름에 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1990년대 히트곡으로만 재조명을 받으면 '향수 마케팅'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부에서는 아이돌에 치우쳐 1990년대처럼 신선하고 개성 강한 콘텐츠가 나오지 못하는 흐름에 주목하기도 한다.

컴백을 준비 중인 중견 가수 관계자는 "새 음반을 내도 크게 주목받지 못해 의욕이 떨어진 건 사실"이라면서도 "'토토가' 열풍으로 인해 희망을 봤다. 1990년대를 추억하되 거기에 의존하지 않는 새롭고 완성도 높은 음반을 만들려고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알렸다. "앞으로 아이돌 그룹과 1990년대 가수들이 공존하는 가요계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