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현

/정치부장

여권의 아성인 대구에서 야당 후보가, 야당의 텃밭인 전주와 순천에서 여당 후보가 당선된 것은 20대 총선에서 가장 두드러진 결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의 김부겸 후보는 대구의 강남이라는 수성갑에서 새누리당의 잠재적 대권 주자인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따돌리고 야당의 깃발을 올렸다.

전남 순천에서는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어려운 여건에서 재선에 성공했고, 전북 전주을에서는 전 농수산부 장관인 정운천 새누리당 후보가 승리했다.

전북에서 여당 후보가 당선된 것은 20년 만이다.

김부겸 후보의 경우 선거 초반부터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내주지 않고 꾸준히 앞섰다.

19대 총선에서 아깝게 고배를 마셨던 정운천 후보는 더민주, 국민의당 후보와 치열한 경합 끝에 이겼다.

이들의 당선이 주목받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 정치의 오랜 병폐인 지역 패권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일 것이다.

김부겸 후보는 지역주의의 틀을 깨보겠다고 작심하고 4년전부터 대구로 내려가 주민들을 파고 들었다고 한다.

지역주의는 정치판에서 40년 가까이 끈질기게 명맥을 유지해온 게 사실이다.

영호남 패권주의는 국민을 지역 정서로 갈라 이성적인 정치를 어렵게 했고, 적대적인 여야 공생의 토대이기도 했다.

이번 총선에서도 새누리당은 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했고,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은 호남을 텃밭으로 삼았다.

더민주당의 김종인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는 호남 민심이 국민의당 쪽으로 흐르자 광주를 찾아 무릎을 꿇기까지 했다.

대구는 박근혜 대통령의 아성으로 보수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정치사에서 대구와 광주는 지역 붕당을 대표하면서 최근 몇 십년 동안 늘 대척점에 서 있었다.

대구에서 정통 야당 후보가 승리한 것은 중선거제로 치러진 1985년의 제12대 총선 이후 31년 만이라고 한다.

여기에 제1야당 후보가 주민들로부터 진정성을 인정받아 터를 잡았다는 것은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같은 맥락에서 호남 유일의 현역 여당 의원인 이정현 후보의 재선도 돋보였다.

애초 여론조사에서는 불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으나 결과는 더민주당 후보를 여유있게 제친 승리였다.

호남에서 야당 후보의 재선은 처음이다.

이 후보는 2012년 19대 총선 때 새누리당 후보로 광주 서구을에 출마했다가 떨어졌으나 2014년 순천ㆍ곡성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지역벽 허물기의 물꼬를 튼 인물이다.

더민주당 출신으로 공천에서 배제된 뒤 무소속으로 대구에서 출마해 당선된 홍의락 후보의 선전도 눈에 띈다.

이들의 승리는 특정 정당의 만년 텃밭임을 거부한 지역 주민의 주권 선언으로도 읽힌다.

이런 흐름이 향후 선거에서도 이어진다면 지역주의를 불식해 우리 정치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선거가 지역 정서에 기대 손쉽게 표를 얻어보겠다는 정치권의 구시대적 발상이 바뀌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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