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모드 몽고메리 원작 빨강머리 앤을 오마주한 전작 빨강머리N이 두 번째 책으로 다시 돌아왔다.

전작에서 페이지마다 익살스러운 개그, 현직 카피라이터다운 인상적 단문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SNS 연재에서는 볼 수 없는 작가의 지극히 사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가 한층 더 깊은 시선과 감성으로 과감하고도 섬세하게 펼쳐진다.

보통 어른의 삶이란 어떤지, 다 큰 어른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이처럼 여릴 수 있는지, 남의 돈 벌어 먹고살기란 얼마나 고된지, 여자로서 험악한 세상을 살기가 얼마나 두려운지를 때로는 웃음 나게, 때로는 눈물 나게, 간혹은 오소소 소름 돋게 묘사하고 있다.

동시에 이 책의 독보적인 매력, 여전히 통쾌하고, 여전히 코믹하고, 여전히 재기발랄한 그림이 매 글마다 더해져 독자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다.

빨강머리N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다양하다.

몸개그를 보는 듯한 생생한 유머, ‘병맛’과 귀여움이 공존하는 N 캐릭터, 어른 세계를 묘사한 현실감 있는 이야기 등 무엇 하나 빼놓을 게 없다.

하지만 단 한 가지를 꼽으라면 N을 통해 평범한 삶의 가치가 재조명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 자신이라고 할 수 있는 빨강머리N은 대한민국 평범한 30대다.

9시에 출근해서 칼퇴근을 도모하지만 영락없이 야근에 돌입해야 하고, 활력을 줄 만한 주말을 보내고자 하지만 피곤에 전 몸뚱어리를 좀처럼 일으키지 못한다.

식당에서는 여유자작 혼밥을 먹지만 방구석에서 집혼밥을 먹을 땐 쓸쓸해하고, 고가의 코트 앞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다가 결국 내려놓는다.

우리 옆집에, 내 옆자리에 언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30대 직장인이다.

남다른 점이 있다면 솔직함이다.

아니 뭐 그렇게 솔직할 필요가 있나 싶을 만큼 솔직하게 남루하고 비루한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이번 책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여성으로서의 삶, 특히 홀로 사는 여성으로서의 삶의 모습이 다양한 형식으로 묘사된 점이다.

범죄 대상이 될 뻔했던 경험을 공포소설 형식으로 풀어내는가 하면, 엄마의 모습을 통해 여자로서의 자기 삶을 돌아보고,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대신 직접 백마에 탑승했다고 말하며 씩 웃는 N의 모습이야말로 이 시대 여성들의 자화상 아닐까.물론 우리의 N은 여전히 ‘솔로 천국, 커플 지옥’을 외치며 실연이라도 경험해보고 싶다고 하는 독거 처녀이기에 모든 여성의 롤모델이 될 순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맨날 집에만 있어서 남자들이 나란 여자가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아. 밖으로 나가야겠어”(〈웅녀〉, 259쪽)로 시작되는 연애 시도, 동화 속 왕자가 없어도 자발적으로 백마에 탑승하는 모습을 보면 N이 어떤 인생의 질주를 펼칠지 기대되는 건 독자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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