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만 느껴지던 남북간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통해 상호 약속한 선언의 연장선으로 비록 군사분계선이지만 북한 지도자로서는 최초로 남쪽을 방문하여 판문점선언을 발표하였다는 것에 큰 의미를 가진다.

모든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말 한마디 표정 하나 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비상한 관심 가운데 이루어진 역사의 한 부분이 되었다.

물론 아직은 단지 문빗장을 내린 것에 불과하지만 그것마저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데 초석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샴페인을 떠드리기에는 이른 시기인 것이다.

벌써 장밋빛 설계를 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것처럼 모든 국민의 큰 기대는 다방면으로 관계개선을 통해 교류와 함께 통일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김정일정권 시대에도 같은 기대 가운데 있었지만 그 기대가 실망으로 전락되었었던 것처럼 북한의 내려진 빗장이 ‘양치기소년’처럼 되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신뢰는 단순한 것이 아니어서 오랜시간동안 믿음의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남북간의 문제는 단순히 한반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주변국 특히 미국과는 결정적 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북미간의 만남과 함께 비핵화가 이행되는 모든 과정을 이루기까지 얼마간은 긴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남북정상의 만남의 역사성이 너무나 큰 이슈가 되어 모든 언론매체는 남북정상회담에 맞추어져 있어 그동안의 국내의 문제가 그 그늘 아래 묻혀버린 듯한 느낌을 받는다.

대부분에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듯이 과거 19대 국회는 역대 국회 중에서 가장 무능한 국회로 기억하고 있다.

그만큼 일하지 않고 세비만 챙겨간 입법의원들의 집합체였다고 할 수 있다.

여당과 야당의 정쟁으로 인해 국회에 산적한 법안들이 통과하지 못하고 결국 20대 총선과 함께 산회되었다.

필자 역시 그에 대해 칼럼을 통해 비판한 적이 있다.

그런데 20대 국회 역시 과거 야당이 여당으로 여당이 야당으로 바뀌어 역할변화만 있을 뿐이지 과거의 정쟁으로 통한 국회 공전(空轉)의 모습은 여전이 변함이 없다.

여당 당사에 캐치프레이즈(catch phrase)를 ‘일 좀 합시다.

’로 걸어놓고 국회일정을 소화해서 법안들과 추경예산을 심의하여 통과시키자고 한다.

과거 지금의 야당이 지금의 여당에게 끈질기게 요구해 왔던 말이다.

야당은 밀리면 끝장날 것 같은 자세로 방어를 했고 법안 통과에 국회선진화법이 넘지 못할 산이 되어 역대 최소 법안 통과국회로 마감을 했다.

당시 여당의 국회의원이었던 김진태 의원의 발언 중에 “19대, 역대 최악의 국회로 평가받고 있는데 내가 생각해도 얼굴이 좀 화끈거린다”고 털어놨다.

그런데 “내가 국회에서 4년간 의정 활동을 해보니 우리 새누리당이 꼭 잘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그 이유를 ‘제 1야당’ 탓으로 돌렸다.

김진태 의원은 “제 1야당이 정부 여당이 일을 할 수 있게는 해주고 거기에다 정당한 비판을 해줬으면 아마 점수를 많이 딸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데, 이러니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거 아니냐”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들이 야당이 되어 과거 현재의 여당이 했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해가고 있다.

어쩌면 국회라는 곳은 과거나 현재나 변함없는 일관된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 유감스럽다.

어느 당이 더 잘하고 잘못한 다기 보다는 필자가 보기에는 그 밥에 그 나물이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일본 침몰설을 주장하는 등 과대망상 증상을 보인 드루킹 사건을 개인 일탈을 넘어 여당 전체가 개입한 것처럼 운운하는 것은 코미디”라고 말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정치현실이 ‘코미디’라고 생각된다.

정치인들이 ‘내로남불’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그 말이 곧 자신들을 지칭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남과 북의 장벽이 느슨해진다면 진행해야 할 일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모든 진행에 앞서 북한과의 교류와 합작을 하는 과정에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할 일들이 많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과연 국회동의를 받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지난 박근혜 정부를 불통의 정부라고 칼럼에 개재한 적이 있다.

현 정부는 소통하는 정부로서 여야의 소통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통해 국가의 앞날에 발전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전주남부교회 강태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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