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상담센터 실효성 지적
전북연극협 청년 비대위 구성
가해자 제명 극단 해체 수습
청소년 연극제 성교육 이수 필수
민족 미술인협 여성인권 전시

미투 장르 떠나 생각해봐야
언론 가십거리로 본질 놓쳐
결국 개인의 몫으로 돌아가
사태 수습뿐 반성-성찰 없어
피해자 비공개로 대응 미비

조직내 따돌림-무차별 비난
펜스룰 등 2차 가해 잇따라
단순 폭로 아닌 사회적 변화를
인식개선-처벌 강화 입법 시급

미투 가해자로부터 시작돼
사회적 인식 '고발자' 낙인
성평등 교육-재발방지 법제화
연대 솔루션 제시-공론화돼야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은 지난해 10월 미국 여배우가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의 성폭력을 소셜 미디어에 폭로하면서 전 세계로 확산됐다.

한국판 미투 운동의 사작은 서지현 검사의 폭로에서부터였다.

지난 1월 현직 검사는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백하며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숨어 있어야만 했던 피해자들이 각계 저명인사들의 과거를 폭로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지난 2월 전북 연극계에서 활동하던 여배우가 극단 대표에게 8년 전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시작된 전북 미투는 전주 사립대학교 교수의 성추행까지 연이어 터지며 추한 민낯이 세상에 드러났다.

이후 전북 연극계에서는 비판과 방조에 대한 반성, ‘미투’에 대한 지지 목소리를 내고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가해자로 지목된 회원의 영구제명, 사건에 연루된 극단 해체라는 결론으로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로부터 8개월이 흐른 지금 전북 문화예술계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 전북 미투 이후…‘어떤 움직임이 있었나’

도내 문화예술 기관에서는 문화예술분야 성폭력 근절을 위해 한시적이지만 성폭력 상담센터를 개설했다.

상담위원을 선정하고 상담을 요청할 수 있도록 창구를 열었다.

그러나 문제는 센터가 개설 되었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여서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올해 초 전북연극협회도 14명의 청년들을 비상대책위원회 이사진들로 구성해 자정적 움직임의 시작을 알렸다.

또 가해자는 제명됐고, 극단은 해체에 이르렀다.

여기에 성폭력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양성평등, 성범죄 관련 교육 등을 진행했다.

실제 7월 전주에서 열린 전국청소년연극제 스태프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성범죄 관련 교육을 이수해야만 참여 할 수 있는 하나의 관문이 생겼을 정도로 성과 관련된 교육을 실천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줬다.

도내에서 활동하는 한 연극인은 “미투가 터지기 전에는 성 관련 교육을 진행한다고 했을 때 ‘이런 걸 왜 해?’라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해야 한다’, ‘하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다”며 “전북 연극판은 무조건 성평등 관련 교육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북여성단체연합 노현정 정책실장도 협회 안에 비대위가 생긴 것만으로도 변화의 기운을 감지 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앞으로 비대위에서 어떤 활동을 펼칠지 모르겠지만 내년 총회에서 성폭력 등에 대한 제재 조치들이 논의되고, 이에 대한 결과들이 협회 정관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면 한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큰 변화이자 대단한 성과가 될 듯싶다”고 밝혔다.

지난 8월, 전북민족미술인협회는 미투 운동으로 촉발된 여성폭력과 인권에 관한 문제를 표현한 ‘지성에는 성별이 없다’ 전시를 기획해 선보였다.

전북 미투 이후 처음으로 지역에서 활동하는 미술작가들과 동료 10명이 참여한 이 전시는 그간 우리 생활 곳곳에서 나타났지만 침묵했던 성적대상화, 여성폭력과 차별 등으로부터 스스로 치유하고 변화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비치는 계기가 되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북문화예술 ‘변한 건 없다’

지난 2월 시작된 전북의 미투 운동은 또 다른 미투로 이어졌다.

뉴스는 연일 미투에 관한 내용들로 가득했다.

연극협회는 사과문을 발표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정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건이 노출될수록 대중들의 관심은 오히려 줄어드는 양상이다.

점점 고통은 무감해졌고 관심은 시들해져 현재 남겨진 건 법률상의 피의자와 피해자 둘 뿐이다.

현재 전북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전주 사립대 교수와 극단의 전 대표는 강제추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으며,  최근 재판이 열리면서 사법부로 공이 넘어간 상태다.

도내에서 활동하는 한 연극단체 대표는 “특정 장르에서 사건이 붉어졌지만 과연 그게 그 장르에만 국한된 문제인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며 “타 장르에서도 간접적이지만 견고하게 이러한 상황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에 대해서 계속해서 언급하지 않고 버티면서 상황을 흘려 보냈다”고 지적한다.

또 “언론 역시 미투 폭로를 단순히 가십거리로 생각하며 자극적이고 경쟁적인 이야기들로 범벅 해 사건의 본질을 놓쳤다.

결과적으로 이제는 미투의 무게를 짊어지고 가는 건 개인의 몫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바뀐 건 없다”고 말했다.

얼굴과 신분, 이름까지 공개적으로 밝히고 사건을 고백한 당사자는 어떠한 입장일까.

최초 폭로한 여배우는 재판을 앞둔 상태에서 말 한마디 꺼내기도 매우 조심스럽다면서도 사건 이후, 전북 문화예술계는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고 했다.

그는 “미투의 가장 본질은 위계논리에 의한 젠더 폭력이다.

즉, 여성을 동료로써 존중하는 사회는 여전히 아니다”며 “단체에서 보여줬던 변화의 모습은 비난 받는 걸 막기 위함이었지 재발 방지나 인권존중에 대한 움직임은 아니었다.

바뀐 게 있다면 입조심과 말조심뿐이다”고 말한다.

특히 협회에서 문제가 붉어지면서 관련 단체를 없애고, 지원금을 끊는 등의 모습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움직임일 뿐 사건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나 반성의 모습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암암리에 잘못을 저지르던 이들이 여전히 문화예술계 안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문화예술기관 역시 과거 저지른 만행을 알면서도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는 안일한 대처가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돈을 집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견고하게 뭉쳐있다”며 “실제로 배우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공개 미투를 할 수 없다.

수입원이 보장되거나 직위가 보장되어야만 용기도 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몇몇 더 있지만 비공개로 처리가 되니 협회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너무 미비하게 대응했다.

비대위가 꾸려졌지만 공동체 안에서 자정 하려는 노력은 없었다”고 꼬집었다.


▲ 폭력과 폭력에 맞서는 인권문제

일부에서는 여성을 사회관계에서 배제하는 등 ‘펜스 룰(Pence rule)’같은 왜곡된 행동도 보여 왔다.

또 성폭력을 고발하면서 시작되는 2차 가해도 잇따랐다.

가령 증언의 의도를 의심하고, 신상정보를 유출하거나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전북여성단체연합에 따르면 “피해사실을 고발하는 순간 조직 내 다른 동료들이 연대를 이룬다.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무차별적인 비난과 ‘원래 이런 애잖아’라는 식의 조롱을 받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비공개로 사건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구체적인 언급을 할 수는 없지만 미투 고백이 또 다른 문제들을 양산시키지 않을까 고민된다.

때문에 제대로 된 법과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폭력의 끄트머리에 있는 악질적인 성폭력은 그동안 명확한 증거를 찾기가 어려워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미투 운동’은 성폭력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등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그러나 단순 폭로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 개선이 뒷받침 돼야 한다는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이전까지는 책임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전가 되거나, 개인의 문제로 치부돼 피해자들이 수치심과 죄책감 속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미투 운동을 계기로 피해자들이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게 되었지만, 위계논리에 의한 젠더 폭력은 여전히 만연하고 당당하게 권력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군다나 함께 연대하고 목소리를 내야 하지만 피곤하고 귀찮은 일로 치부되면서 개인이 홀로 싸워야만 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투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며 성폭력에 대한 인식개선은 물론, 피해자들이 문제를 쉽게 폭로 할 수 있도록 실제 장벽을 제거하거나 가해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입법이 시급하다.
 

▲ 현재진행형 ‘미투’…끝까지 논의되어야 할 것들

노현정 정책실장은 “미투 운동에서 테두리는 없다.

이 안에 있는 사람들만 변해야 하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 모든 사람이 변해야 할 때이다”며 “앞으로의 고민은 법과 제도를 바꾸는 일이다.

지금의 미투가 요구하는 사실적 명예훼손죄나 성폭력 범죄의 기한, 법적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여러 문제들을 국가가 나서서 변화에 대한 응답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미투가 현재 진행형인 만큼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것들은 수없이 많다.

그 중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사항은 미투의 시작이 피해자들의 고백이나 폭로에서 시작된 게 아닌, 부당한 행위를 저지른 가해자들로부터 기인되었음이다.

한 문화예술인은 “법적으로 조사중인 사건을 언급하는 게 부담스럽다”면서도 “미투 운동이 왜 촉발되었는지 그 사건을 어떻게 확인하고 없앨 것인가 등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이어 “모든 프레임이 피해 사실을 고백한 분들이 얼마만큼의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해서만 경쟁적으로 보여주는데 사실 중요한 건 불순한 의도로 접근한 가해자들에 의해 미투 운동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폭력에서 침묵은 곧 ‘해도 된다’는 용인으로 받아들여진다.

축소하고 은폐할수록 폭력은 되돌아와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에서 왜곡된 성인식과 편견으로 핍박하며 그로인한 피해는 권력관계에서 권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겪게 된다.

그리고 이 같은 문제에 대해 말하면 ‘고발자’로 낙인 찍혀 일상생활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도 깨부숴야 한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인식변화를 위한 성평등 교육, 강력한 처벌과 재발방지를 위한 법제화는 물론 연대를 통해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전북민족미술인협회 송상민 사무국장은 “미투운동이 잠깐 끓었다 식는 냄비가 되지 않길 바란다”며 “현실에서 겪는 어려움과 대응방안을 놓고 다양한 솔루션을 모두가 함께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간이 아닌 문화예술 관련 기관이 주도해서 논의의 장이 활발히 열렸으면 한다.

문화예술 인력들 중 연대가 되어서 이슈를 기반화 시키고, 나아가 실질적인 토론과 성에 대한 인식 교육 등이 이뤄진다면 밑으로만 가라앉는 이슈들이 계속해서 공론화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제안했다.

/박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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