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나이에 도전 부담
연습 매진 실력 인정 받아
스승님께 감사··· 상에 걸맞는
더많은 연습과 노력 필요해

”정말 기뻤다”고 했다.

대금연주자 겸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박상후(41) 부수석의 얘기다.

그는 대금 연주를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다.

도립국악원 관현악단에 들어 온지는 16년쯤 됐다.

오랜 시간 대금연주자의 길을 걸어왔음에도 상대적으로 대통령상 도전은 늦게 한 편이다.

매일 오전 8시30분에 예술단 연습실로 출근해 개인 연습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박상후 부수석은 관현악단 연주 연습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지 않는다.

연습을 하루만 쉬더라도 소리의 깊이가 달라진다는 걸 일찍 체득했기 때문일까.

단 몇 분이라도 대금을 불었다.

그렇게 묵묵히 연습에만 매진했고, 실력을 갈고 닦으니 연주에 대한 인정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지난 9월 8일~9일 경북 경주에서 열린 제36회 신라 전국 국악대제전에서 일반부 대상을 차지하며 대통령상을 거머쥐었다.

기악부문 전국 최고의 대회로 여겨지는 곳에서의 수상.

어떤 기분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어 1일 직접 만나 소감을 물었다.

“정말 기뻤어요. 막상 대통령상을 수상하니까 부모님 보다는 스승이신 정회원 선생님과 이태백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어요. 대회를 준비하면서 부담감이 엄청 컸는데 그때마다 스승님께서 저에게 진심 어린 격려와 질책을 해주셨죠. 정말 감사했고, 기뻐서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했던 연습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했죠.”

불혹의 나이에 도전한 대통령상은 무엇 하나 쉽지 않았다.

특히 국악대회에 출전하는 도전자들의 연령대가 점차 낮아지면서 ‘나이’에 대한 부담감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게다가 도립국악원 예술 단원에게 갖는 기대감도 무시 할 수 없는 압박이었다.

만만찮은 부담감을 안고 출전한 대회에서 거머쥔 대통령상은 그야말로 ‘값진’ 수상 일 수밖에 없다.

세습무 집안에서 나고 자란 박상후 부수석은 무속음악을 공부하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민속악을 보다 쉽게 접했다.

어찌 보면 소리와 음악에 관심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될 무렵, 아버지는 “대금을 연주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음악이 좋았기에 승낙했다.

이후 20년 넘게 대금연주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박 부수석은 자신이 이만큼 성장 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스승님 덕분이라고 말한다.

“소리의 기본을 알려주신 정회원 선생님, 민속악의 정수를 깨닫게 해주신 이태백 선생님, 연주의 기술적인 면을 다듬어 준 이용구 선생님까지 그 분들 덕분에 계속해서 음악을 할 수 있었어요.

특히 제가 하고 있는 소리가 판소리를 모토로 하는 산조인데 정회원 선생님이 지방에서는 가장 흡사한 소리를 갖고 계세요.

소리의 기초를 제대로 익힐 수 있었죠.

또 이태백 선생님께선 ‘적당히’가 없으세요.

깐깐하게 지도, 검수를 해주시면서 칭찬보다는 질타를 더 많이 하시죠.

그러면서도 제가 고민하고 흔들릴 때마다 잡아주세요.

정신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도록 옆에서 정말 큰 힘이 되어주세요.

”대통령상 수상 이후에도 여전히 스승 이태백 선생님을 찾아가 연습한 결과물을 지도, 검수 받는다는 그에게 이제는 연습을 쉬엄쉬엄 해도 되지 않느냐고 묻자, “안된다”고 말한다.

 “대통령상을 탔다고 연습을 그만 두는 건 자만이라고 생각해요. 연습을 한 만큼 대금소리의 깊이가 달라져요. 안 할수록 실력은 저하 되죠. 그래서 일주일 이상 놀아 본적이 없어요. 대통령상을 탔으니까 연습을 쉬엄쉬엄한다? 도리어 대통령상을 수상했으니까 상에 걸 맞는 연주자가 되려면 많은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상에 취하기보다는 상에 걸 맞는 사람이 되고자 더욱 실력을 갈고 닦겠다는 박상후 부수석의 말속에 담긴 진심 어린 다짐에서 그가 얼마나 대금을 사랑하고, 음악을 아끼는지 느낄 수 있었다.

20년 동안 음악과 대금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달려온 만큼 앞으로 이루고 싶은 소망이 정말 많다는 박 부수석은 “욕심일지 모르겠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고 말한다.

“작년에 ‘서용석류 대금산조’랑 즉흥연주 형태를 띤 ‘변청시나위’, ‘진도 씻김굿 중 길닦음’ 등 3개를 묶어서 연주회를 가졌어요. 이후에 국악이라는 카테고리에 담긴 창작음악, 정악, 산조음악 등 여러 갈래의 음악들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졌어요. 또 밴드와의 협업을 통해 음악적 새로운 시도들도 만들고 싶고, 산조음악을 살리는 일에도 관심을 두고 있어요. 결과적으로 이러한 활동들이 쌓여서 서울에서 공연도 올리고, 서울에 있던 사람들이 소리를 배우기 위해서 전주로 내려오는 등 다양한 교류활동이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우선 그러기 위해서는 저부터 많은 공부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제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해내고, 꾸준히 연습하고 다양한 음악들을 공부해 나갈 생각이에요.”

/박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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