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14년만에 무죄 인정
자유민주주의 정당사유로
88조1항 정당사유 해당 판단

인권단체-국가인권위 대환영
공동체와 다를 수 있는 자유
대체복무제도 시행 촉구

난민대책행동 반대집회 열어
여호와 국가-공동체 사탄 규정
납세-투표 행위 등 거부 규탄
국가안위 정책 국민투표해야

국방부 대체복무 교정시설서
36개월간 합숙근무 쪽 무게
징벌적 성격시 사법부 부정
새판례 맞는 정부안 마련키로

전주지법 하급심 무죄 첫 사례
진정한 양심따라 정당 사유로
예비군훈련 거부도 무죄 판결
검찰 진실한 신념 미진 항소

찬반 갈등 해결-통합기구 필요
양심의 행정적 판단 가능 의문
전문가 주축 1년 심사 진행을
병역기피 수단 악용 우려도

대한민국 남자들에겐 국방의 의무가 존재한다.

그 동안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처벌’ 문제는 남과 북의 첨예한 대치 상황 속에서 안보문제와 병역 특혜에 민감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양심의 자유는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헌법상 기본권이며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영역”이라며 오랜 세월 법적 다툼의 종지부를 찍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여전히 양심적 병역 기피의 악용문제와 대체복무제가 어떤 형태로 마련돼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쟁점들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 현재까지 전개된 상황과 내용을 토대로, 합리적인 대체복무제 문제해결을 위해 풀어야 될 과제 등은 무엇인지 짚어봤다.
/편집자주



▲대법원,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정’ 무죄 판결…14년만에 입장 바꿔 결정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증인 신도 오모(34)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대법관 의견은 9대 4로 갈렸다.

다수의 대법관은 "병역 의무 이행을 일률적으로 강제하고 불이행에 대해 형사처벌 등 제재하는 것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에도 위배된다"며 "양심적 병역거부는 88조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앞서 오씨는 2013년 현역 입영하라는 통지에 불응해 1‧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지난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는 정당한 사유가 아니다”라고 판단해 1968년에 확립된 유죄 판례를 유지했다.

이 때문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는 징역 1년 6개월형의 선고가 일괄적으로 내려졌다.

이번 선고의 쟁점은 병역법 88조(입영의 기피) 1항이었다.

현역입영 또는 소집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정해진 기간 내 응하지 않는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제도를 병역의 종류로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5조 1항에 대해서는 6(헌법불합치) 대 3(각하) 의견으로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내년 12월까지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88조 1항의 경우 4(합헌) 대 4(일부 위헌) 1(각하) 의견으로 합헌으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당시 헌재는 “양심의 진실성이 인정될 경우, 법원은 대체복무제가 도입되기 전이라 하더라도 (중략) 무죄를 선고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대법원 무죄 판결로 현재 각급 법원에서 진행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 재판에도 잇따라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상고심은 200건을 넘었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현재 966명에 이른다.

다만 대법원 판결 전에 확정된 사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이미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은 정부의 특별사면 등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인권시민단체 등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찬성 ‘대환영’

인권시민단체인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전쟁없는세상,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등은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법원이 양심의 자유를 인정했다”고 대환영했다.

또한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도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간 병역거부자를 변호해온 김수정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공동체와 다를 수 있는 자유’에 대한 언급이 이날 판결에 있다고 들었다”라며 “그 문구가 들어가기까지 오랜 세월 감옥에서 지내야 했던 이들이 떠올라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이날 대법원 판결을 전해들은 당사자들과 관련 시민단체는 한결같이 큰 기대를 품었다.

병역거부자 전원 석방과 아울러 합리적이고 인권적인 대체복무를 마련해달라는 것이다.

이용석(38)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는 “병역 거부에 대해 유죄냐 무죄냐, 찬성이냐 반대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양심이 제대로 존중 받고, 이들이 사회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대체복무제도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군인권센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시민단체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등은 하루 전 헌법재판소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 도입 결정을 크게 환영했다.

이들은 헌재가 제시한 대체복무제 도입 마지노선인 2019년 12월31일에 대해 “입법은 2018년 하반기 정기 국회에서 신속하게 논의돼 2019년부터는 시행돼야 한다”며 국회가 시기를 앞당길 것을 촉구했다.


▲난민대책 국민행동,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반대 입장

가짜난민 반대, 불법체류자 추방 집회를 개최해 온 대표적인 반(反)난민 시민인권단체인 난민대책 국민행동은 지난 17일 집회를 갖고 “양심적 병역거부 반대에 대한 다수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여 병역거부와 대체복무를 반대하는 첫 장외집회를 열게 됐다”며 “병역거부, 병역회피, 가짜종교, 가짜양심 규탄 한다.

양심을 팔아 병역을 회피하는 가짜종교 추방하라.

병역거부 무죄판결, 가짜종교 특혜판결 대법관은 사퇴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여호와의 증인이 어떤 종교인가.

선택된 자신들만 여호와의 백성이며, 국가와 공동체를 사탄의 동맹체, 마귀의 피조물로 상정하고 배격하는 이들로 군복무, 투표, 납세 등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일체의 행위를 거부한다”며 “무기를 내려놓고 군대를 해체하는 가짜평화 거부한다. 양심을 팔아 병역을 회피하는 국가해체세력을 추방하라”고 주장했다.

최근 취업포털에서 실시한 직장인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서 국민의 82.8%가 병역거부 무죄판결에 부정적 결과가 나온바 있다.

병역거부 무죄판결은 양심과 평화적 신념을 팔아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는 ‘양심적 예비군 거부’에도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논란이다.

헌법은 제72조에서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병역기피자에 대한 대체복무제의 도입여부는 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사항이므로 그 제도의 도입은 헌법 개정이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는 이들 (난민대책 국민행동)의 주장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제 도입 어디까지 왔나?

그 동안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감옥 밖에는 갈 곳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 6월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것을 결정하면서 국방부와 병무청 등은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절차를 진행 중에 있다.

국방부는 현재 대체복무제로 교정시설(교도소·구치소)에서 합숙근무를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다만, 복무기간을 두고는 육군 병사 기준 1.5배안(27개월)과 2배안(36개월)을 저울질 중이다.

국방부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을 막고, 현역병과의 형평성 시비를 없애기 위해 현역병(육군 기준)의 2배인 36개월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이번 대법 판결로 상황이 달라질 전망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판례가 나오면서 대체복무제가 징벌적 성격을 띨 경우 사법부 판단을 부정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지향 김수정 변호사는 "지금 국방부가 마련하고 있다는 안은 모든 면에서 국제적, 인권적 기준에 전혀 맞지 않아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다.

사실상 교정시설에 36개월 가둬 놓겠다는 것"이라며 "대체복무제 도입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국제적, 인권적 기준에 맞는 대체복무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성명을 통해 "남은 과제는 헌법과 국제인권기준에 부합하는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라며 "대체복무 인정 여부의 공정한 심사를 위해 군과 독립된 심사기구 구성, 징벌적이지 않고 공익적인 성격의 복무영역과 기간의 설정 등 인권위와 국제사회가 일관되게 권고해온 대체복무제 대원칙에 충실한 제도가 도입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국방부와 병무청 등은 이번 대법의 새로운 판례에 부합하는 대체복무제 정부안을 마련키로 방침을 정했다.

국방부는 이른 시일 내에 정부안을 확정해 '병역법' 개정안 및 '양심에 따른 대체복무에 관한 법률' 제정안 등을 입법예고할 예정이다.

이어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면 헌법재판소의 권고대로 늦어도 오는 2020년 1월부터는 대체복무제가 시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병무청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대체복무제 도입 때까지 입영을 연기해주고 있는 가운데 대법 판결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고발을 사실상 중단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주지법, 하급심 ‘무죄’선고 대법 판결 후 첫 사례…검찰 항소 방침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취지 판결 이후 관련 사건에 대해 하급심에서 첫 무죄 판결 사례가 나왔다.

전주지법 형사6단독 허윤범 판사는 지난 11월 16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 1월 자택에서 현역 입영 통지서를 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아 기소됐다.

조사 결과 A씨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부모 밑에서 자랐으며 여호와의 증인 교회에 소속돼 2011년 세례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거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조사됐다.

허 판사는 “여러 사정을 종합해볼 때 피고인은 진정한 양심에 따라 병역거부를 하는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며 이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지난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에 영향을 받은 첫 사례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종교적 양심을 이유로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자에게도 ‘무죄’ 선고가 내려졌다.

수원지법 안산지원 형사3단독 송영환 부장판사도 지난 19일 종교적 양심을 이유로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홍모(31)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 취지 판례를 새로 정립한 뒤 처음으로 관련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하급심에 검찰이 항소 방침을 결정했다.

비슷한 사유의 예비군법 위반 무죄 사건에서도 검찰은 항소했다.

‘양심’을 제대로 저울질해 보자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 판단 기준으로 밝힌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신념에 대한 부분이 제대로 심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심리가 미진한 점을 이유로 들어 항소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체복무제 갑론을박…‘기간·양심 판단' 등 앞으로 풀어야 될 과제 ‘산 넘어 산’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결을 토대로 내년 말까지 제대로 된 대체복무제 안을 만들어야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먼 상황이다.

먼저 '양심적'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리와 대체단어를 찾아 반대여론에 대한 이해를 구해야 한다는 게 일부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우선 갈등의 폭을 줄여야 대체복무 절차나 기간 결정에 대한 사회적 비용도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7월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대체복무 기간을 현역 대비 1.5배와 2배로 실시해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오차 범위 내로 비슷했다.

특히 갈등의 폭을 줄이기 위해서는 신청자의 양심 여부를 철저히 판단할 수 있는 통합기구의 구성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정신건강의학자, 심리학자, 헌법학자가 주축으로 구성돼 길게는 1년까지 심사를 거치는 독일의 예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양심적 병역거부 찬성 측 양심도 심사할 수 있다 군인권센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시민단체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등은 헌법재판소의 대체복무제 도입 결정에 대해 “입법은 2018년 하반기 정기 국회에서 신속하게 논의돼 2019년부터는 시행돼야 한다”며 국회가 시기를 앞당길 것을 촉구했다.

이처럼 대체복무제 도입이 현실화 되면서 향후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어떤 방식으로 가려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한 사람의 ‘양심’에 객관적 기준을 설정해 행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과 함께 대체복무제가 병역기피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지지하는 측에서는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일부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양심도 심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진짜 양심’은 개인의 사회경력으로 입증할 수 있고, 현역보다 복무 기간이 긴 대체복무를 선택한 것 자체가 양심의 증거로 제시했다.

/정병창기자 wooju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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