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사 회색 껍데기의 밤톨만하다.

가시 대신 돌처럼 단단한 껍질로 자신을 에워싸고 있다.

쫀득쫀득한 질감에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에는 살짝 단 맛도 돈다.

노르스름한 속살은 저절로 침샘을 자극한다.

빠른 손놀림이면 한 양푼 정도야 순식간에 비워낸다.

여기에 텁텁한 막걸리는 최적의 궁합이다.

바로 겨울철의 별미 꼬막이다.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며 겨울이 오고 있음을 알려줄 무렵이면 연례 행사처럼 꼬막을 주문한다.

게장을 밥도둑이라고 하는데 우리 집의 밥도둑은 단연코 꼬막이다.

특히 남편의 꼬막 편식은 유난하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꼬막 2망태기 중 한 망태기쯤이야 앉은자리에서 엉덩이 한번 움직이지 않고 거뜬하게 발라먹는다.

까먹는 데는 자신 있다며 무슨 대회 같은 게 없냐고 호기를 잔뜩 부리며 꼬막을 훑어 먹는 모습은 영락없이 허기진 동물 본능이다.

꼬막은 겨울에 물이 오르고 살이 탱탱해져 11월부터 2월까지가 제철이다.

‘태백산맥’에서 조정래 작가는 꼬막에 대해 ‘간간하고 쫄깃쫄깃하고 알큰하고 배릿한 맛’으로 묘사했다.

꼬막은 임금의 수라상 8진미 중 1품으로 진상할 만큼 일찍부터 그 맛을 인정받았다.

원산지 꼬막 맛을 보겠노라고 벌교를 간 적이 있다.

꼬막이 지역의 상징이 될 만큼 국내 최고의 꼬막 산지라는 명성답게 그야말로 꼬막 천국이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맛은 꼬막 해물 뚝배기다.

싱싱한 해물과 꼬막, 미나리와 콩나물을 넣어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한상 차림의 꼬막 정식도 빠질 수 없다.

꼬막 전.

꼬막 파프리카.

꼬치.

새콤달콤한 생꼬막무침.

꼬막 된장국까지 하나의 재료로 만들 수 있는 메뉴가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다양하다.

엄지손톱만 한 꼬막은 영양분만큼은 겨울 제철 해산물 중 으뜸이다.

꼬막에는 철분을 포함한 헤모글로빈이 많이 들어있다.

핵산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외부로부터 바이러스나 나쁜 균으로부터 이겨 낼 수 있는 면역력에 도움이 된다.

항산화 물질인 셀레늄이 들어있어 노화 방지에도 도움을 준다.

특히 꼬막 100g당 81kcal로 열량은 낮으면서 복이나 굴 등 다른 어패류에 비해 단백질 함량은 높아 체중 감량과 근육강화에 도움을 준다.

필수 아미노산, 비타민 등이 함유돼 성장기 어린이에게 좋다.

숙취해소와 동맥경화, 빈혈 예방에도 탁월하다 꼬막은 손질 방법과 삶는 방법이 중요하다.

씻을 때 공을 들여야 한다.

껍데기를 싹싹 비벼가며 여러 번 찬물에 씻어 준다.

칫솔처럼 빳빳한 솔을 이용해 표면에 붙은 이물질도 완벽히 제거해야 한다.

잘 씻은 꼬막은 물이 끓기 전 기포가 조금씩 올라올 때 넣는다.

다시 기포가 생기면 뚜껑을 덮은 후 4분 정도 삶는다.

이때 수저로 꼬막을 한 쪽 방향으로 몇 번 저어주면 좋다.

그래야 살 모양을 유지시킬 수 있다.

또 오래 삶으면 조갯살이 질겨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하며, 삶은 후에는 찬물에 살짝 헹궈 탱탱한 질감을 유지시킨다.

음식의 제 맛은 무엇인가? 바로 제철에 제대로 먹는 맛이 제 맛이다.

더울 때 먹어야 제 맛인 음식이 있고 추울 때 먹어야 제 맛인 음식이 있다.

이 또한 계절이 주는 맛의 축복이 아닌가.

쫀득쫀득한 갯벌을 누비며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캐 올렸을 어부의 꼬막 망태기 속에 이미 겨울 맛의 축복이 감겨져 있다.

새해 첫날 떡국을 곁들여 꼬막 한 망태기를 삶아냈다.

펄펄 끓는 물에 충분히 추위를 녹였는지 입이 살짝 벌어진 새 꼬막이 양푼 하나 가득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꼬막 더미를 앞에 두고 분주한 손놀림으로 꼬막까기 경주가 시작 되기 직전이다.

꼬막 까기 경주를 하려면 빠질 수 없는 사전 의식이라는 게 있지.

“ 2019년 새해! 꼬막처럼 둥글둥글 윤이 나는 한 해를, 위하여~” 꼬막과 함께라면 낮술도 달다.

/서향숙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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