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문득 떠오르는 기억은 맛이나 냄새에서 열린다.

오래전 아프리카에서의 숯불 가래떡은 기억의 맛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질 줄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빈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베개를 돋아 고이 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고향의 들녘을 마치 그림처럼 펼쳐주는 이동원 박인수가 부른 노래 “향수”다.

노래 역시 때로는 기억의 먼 곳으로 데려다 준다.

3년 전이다.

아프리카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서 6개월간 머물렀던 적이 있다.

생애 처음 간 아프리카란 나라는 적응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맞지 않는 음식.

가끔 어머니 생각.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오면 늘 단골 메뉴로 이 향수 노래를 들었다.

어느 날은 담 넘어 머리 긴 흑인 여자의 집에 소리가 넘어갈 정도로 크게 볼륨을 높여 고향 낙원으로 들어갔다.

아프리카에 정착해서 바나나와 파인애플에 물렸을 즈음이다.

어느 날 옆집 한국 사모님이 흰 가래떡을 가지고 오셨다.

오지 아프리카에서 가래떡이라니 상상이나 되는가 열대 과일은 지천에 널려 있지만 쌀이 돈만큼 귀한 나라.

그 아프리카에서 흰쌀에 가래떡이라니 정말 ‘웬 떡이야“였다.

그것도 우리가 머무른 르완다의 떡이 아니라 바로 이웃 나라 우간다라는 나라에서 공수를 해왔다니 긴 가래떡을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일 수밖에흰 비닐에 폭 쌓인 가래떡은 딱 4줄.

우리는 너른 마당에 숯불을 피웠다.

석쇠 위에 가래떡을 올려놓고 뒤적뒤적 타지 않도록 굽는다.

그 사이 남편은 아프리카 단골 노래인 ‘향수’ 를 낯선 동네가 떠나갈 듯 소리를 키운다.

그리운 고향의 뜨거움이 가래떡 화로에 숫 불 만큼 뜨거워진다.

그날 우리는 아프리카 르완다 키갈리 밤 별빛 아래서 꿈엔 들 잊을 수 없는 그리운 고향을 그렸다.

노릇노릇 구워진 가래떡을 한 입 한 입 깨물면서   기억은 모두를 추억할 수 없지만 추억은 전부를 기억 할 수 있다.

언젠가 먹어본 행복한 맛은 늘 추억을 꺼내준다.

나에게는 바로 흰 가래떡이 추억의 맛이다.

설 명절이 돌아오는 이즈음이면 고향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이 있었다.

집집마다 떡쌀을 담그고 동네 방앗간 앞에 긴 줄을 서서 떡 만들 차례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남의 가래떡을 하나씩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남의 떡이 맛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동네 아줌마들의 수다가 요란한 방앗간 기계 소리만큼 크다.

방앗간 주인아주머니의 화통 같은 목소리에도 방앗간에 가래떡은 아주 질서 정연하게 나온다.

뿌옇게 김을 내며 나란히 눕혀 있는 가래떡이 식을 세라 집으로 가져오면 이제부터 떡 잔치다.

형제 중 누군가 귀신같이 찾아온 조청이 등장한다.

길게 쭉쭉 뻗은 가래떡은 저녁 내내 질리지 않는 먹거리였다.

뜨거운 김을 다 몰아내고 살짝 굳은 가래떡은 동글 돌글 썬다.

그리고 떡국으로 설날 아침상에 올려진다.

새해 설날 아침에 왜 떡국을 먹을까? 그 이유를 안 시점은 동네 방앗간을 가지 않은 이후다.

떡국 먹는 풍습은 식구 모두 음복(飮福)하여 복을 받고자 하는 데서 출발한 것이라고 한다.

또 떡국을 만들 때 가래떡을 동그란 모양으로 썬 이유는 조상들이 쓰던 화폐인 엽전의 모양을 딴 것인데, 이 역시 새해의 첫 시작에 떡국을 먹으며 돈이 잘 들어와 풍족해지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란 책이 있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어머니가 주신 세로로 홈이 파진 마들렌 과자를 홍차에 적셔 먹다가 문득 일요일 아침 콩그레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해내고 옛날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이제 설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어릴 적 손꼽아 기다리던 설렘이 떠나버린 명절이지만 그래도 설날 아침은 떡국을 정성껏 끓여야겠다.

뒤축이 닳아버린 버린 듯한 고향이라도 좋다.

그 옛날 명절 설렘으로 잠 못 이뤘던 시간 여행을 다시 할 수만 있다면.

/서향숙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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