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고추장 조선때 진상품
고추 유입전 다른 형태의
고추가 있었던걸로 추정돼
장 담글날 외부인 출입삼가
미생물 집집마다 맛 결정
순창 발효산업 세계로 진출
한식의 기본 지켜야할 유산

행복한 설날이 지났습니다. 예년보다 긴 연휴 탓에 도타운 정을 많이 나눌 수 있었던 올해 의 설날이었죠. 고향을 떠났던 자식들이 고향의 부모를 찾아와 세배 드리고 정담을 나누고 선영을 찾고, 그리고 다시 따뜻한 가슴을 안고 도회로 떠났지요. 그들은 그 따뜻함으로 오래도록 타지의 한파를 이겨내며 살아갈 것입니다.

고향에서 맛보는 행복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우선 혈육의 정을 나누는 데서 오는 끈끈한 정에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 정은 여느 나라 가족들도 느끼는 보편적 정서이기는 하지만 우리 한민족이 나누는 가족애의 돈독함은 유별난 것 같습니다. 고속도로를 꽉 채운 차량행렬과 기차역의 귀성 인파가 그걸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지요.

그 이유가 뭘까. 고향에 모여 어머니의 손맛을 나누고 온 식구들이 함께 그 맛에 들큰하게 취하고 그 가운데 조상과 후손들을 잇게 해주는 데서 오는 충족감에서 오지는 않은지요. 
순창 장류 박물관에 가면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습니다.

 

# 순창 장류 박물관에서 느끼는 전통 장류의 맛

그렇습니다. 장(醬)에 있지요. 장(醬), 즉 간장 · 된장 · 고추장에 있습니다. 우리 음식에 간장 된장 고추장 없이 조리되는 한식요리가 뭐가 있을까? 아무리 찾아봐도 없습니다. 국이나 반찬으로 쓰는 한식 요리에는 간장이나 된장, 고추장이 들어가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그 집안의 맛은 장에서 나오고 장맛은 그 집안의 품격이 되곤 했지요. 순창 장류 박물관에는 그 장(醬)에 대한 모든 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2007년도에 개관된 국내 최초 순창장류박물관은 전국 최초로 장류를 테마로 조성한 박물관으로 전통장류의 본 고장인 순창을 홍보하는 대표적인 문화공간이다. 
장류의 역사, 장 담그는 법, 모형을 통한 순창고추장 소개, 대형 고추 속 어린이 애니메이션 상영, 순창 초가, 장류관련 민속유품 등 7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출처/순창 장류박물관)

 순창 장류 박물관은 생각보다는 아담합니다. 그러나 안에 들어서면 다양한 자료와 자세한 설명, 그리고 요구하면 해설사 까지 친절한 안내를 해주는 특별한 박물관입니다. 
총 7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순창 지역의 문화유산인 ‘만일시비’의 기록과 구전 설화에 의하면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 스승인 무학대사가 기거하고 있는 순창 구림면 소재 ‘만일사’를 찾아가던 중 한 농가에서 점심때 먹은 고추장 맛을 잊지 못하다가 후일 왕이 된 후 궁중에 진상토록 하였다고 전해져 온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순창고추장이 진상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의 각종 요리서에도 순창고추장의 우수성이 잘 나타나 있다고 합니다.


동남 아시아에서 나는 고추는 강한 독이 있으며, 처음에 왜국(일본)으로부터 왔다. 그래서 속칭 왜개자라 불렀다고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순창에는 고추 이전에 고추가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 모순이 있지요. 고추의 유입 경로를 보면 우리나라 유입은 임진왜란 이후이니 태조 이성계가 맛보았다는 고추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요. 친절한 해설사 설동찬님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곳 순창에는 우리가 먹는 고추 이전에 고추와 비슷한 맛과 형태를 지닌 다른 고추가 존재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단군 신화에 나오는 마늘과 쑥에 대해서도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다는 말이 있으니까요.
 마늘이라 해석하는 단군 신화의 시신유령애일주。산이십매(時神遺靈艾一炷。蒜二十枚 : 이 때 신웅이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20개를 주면서) 의 마늘(蒜)이 현재 우리가 아는 마늘이 아니라 마늘과 비슷한 형태를 지닌 달래 비슷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순창의 고추장에 쓰이는 고추 이전의 고추, 생각만 해도 신비롭기만 합니다. 핵심은 우리 맛의 원천 중의 하나인 고추장은 현재의 고추맛과 다른 고추가 이미 순창에 재배되고 있었기에  제조될 수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이지요. ‘밭의 고기’라고 불릴 정도로 양질의 식물성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한 대두(大豆: 콩)는 동북아시아가 원산지여서 메주는 우리의 원삼국 시대부터 된장 고추장 간장의 재료로 쉽게 이용되었던 식품이었기에 이미 순창은 고추 이전의 고추로 인해 고추장이 발달할 수 있는 여러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의 반증이 되고 있지 않나요. 더구나 장을 담그기에 최적의 기상 조건을 갖추고 있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는 장의 의미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장은 장수라는 뜻이니 모든 음식 맛의 으뜸이다. 그 집안의 장맛이 좋지 아니하면 아무리 좋은 채소나 고기가 있어도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없다. 설혹 촌야의 사람들이 고기를 쉽게 얻지 못한다 해도 여러 가지 잘 담근  장이 있으면 반찬 걱정은 없다.」 

 ‘장맛이 좋지 아니하면 아무리 좋은 채소나 고기가 있어도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없다.’
 이미 우리 조상들은 장이야말로 맛의 원천임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어쩌면 우리는 맛 들여진 이 장류 때문에 우리는 음식으로 ‘정의 맛(情味)’을 함께 나누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음력 월 말(馬)날인 오일(午日), 또는 그믐, 손 없는 날, 병인일(丙寅日), 정묘일(丁卯日), 제길신일(諸吉神日), 정일(正日), 우수(雨水양력 2월 18일 경),입동(立冬양력 11월 8일경), 황도(黃道), 삼복(三伏)이 장을 담그기 가장 좋은 날이라 했습니다. 수흔일(水痕日: 큰달 1, 7, 11, 17, 23, 30, 작은달 3, 7,1 2, 26일)과 신일(申日)에는 장 담그기를 꺼렸는데, 수흔일에 장을 담그면 가시(구더기)가 생기고, 신일에 장을 담그면 시어진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장 담글 날을 정하면 외출을 금하고 외부인의 출입도 삼갔으며 당일에는 목욕재계하고 메주 한 덩이, 소금, 붉은 고추 등을 소반에 차려놓고 고사를 지냈답니다. 이러한 풍습은 장속 미생물에 의해 장맛이 좋고 나쁨이 결정되기 때문인데요. 미생물은 자연환경과 생활환경에서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지방마다 집집마다 장맛이 달라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장은 온 정성의 결과물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정성을 다하여 담근 장류는 이제 가공하거나 제조 방법에 따라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 등으로 변신하는데 그 종류 또한 다양하여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양조간장, 혼합간장, 산 분해간장, 효소 분해간장, 한식간장 등의 간장류와, 막된장, 토장, 막장, 즙장, 담북장으로 분류됩니다. 형태에 따라서는 청국장과 분말청국장으로 그리고 찹쌀고추장, 밀가루고추장, 보리고추장, 매실고추장, 양파고추장, 호박고추장, 고구마 고추장 등등 재료에 따라 맛과 향이 다양한 고추장으로 탄생하여 식탁에 오르거나 각종 요리의 소스가 되고 있습니다.

 

# 우리의 장(醬), 발효음식의 세계적 보고(寶庫)

세계 최고의 음식은 발효된 음식이지요.  

「발효 음식은 과연 어떤 것인가? 발효 음식은 한마디로 곰팡이나 세균, 효모 등 여러 유용한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하여 새로운 성분을 만들어 내는 발효 과정을 거쳐 만든 모든 식품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므로 발효 음식은 어떤 종류의 발효 미생물이 작용하는가, 어떤 종류의 식재료에 작용하는가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더욱이 발효 과정을 거치면서 이전에 없던 새로운 성분이 생기면서 영양가는 물론이고 저장성과 기호성(선호도) 또한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 또한 알코올 발효는 물론이고 초산 발효와 젖산 발효, 여러 종류의 아미노산 발효 등 발효 과정의 방식에 따라 만들어지는 물질이 다르다. 이들 모두는 각각 독특한 맛과 향을 지닌 여러 종류의 발효 음식이 될 수 있다.」
(출처: https://sciencebooks.tistory.com/1286 [ScienceBooks] 한국음식의 참맛은 이 발효 음식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 발효 음식을 제일 잘 발전시킨 나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발효 음식에 맛에 빠진 외국인들은 이 맛을 잊지 못한다고 하지요. 외국의 치즈, 요쿠르트, 소시지, 주류, 햄, 발효차 등, 이 모든 것들은 발효된 식품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모든 음식이 기본적으로 발효된 소스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메주와 장, 그리고 장과 배추의 만남이 우리 한식요리의 기본이 아니겠습니까.

장독에서 익어 갑니다. 장독은 숨 쉬는 옹기입니다. 햇볕 잘 드는 곳에서 바람과 만나 속삭이며 숙성되어 갑니다. 곰삭아 가는 것이지요. 곰삭는다는 것은 곧 달관입니다.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자신을 죽여서 새로운 맛을 창조하는 것이지요. 그 맛이 한국인을 만들었습니다. 
미생물도 소중히 여기기에 박테리아도 행복하게 봉사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김치각에서 김치도 겨울을 나며 의젓하게 숙성되어가고 있군요.

아이들이 우리의 맛과 멀어지고 있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김치도 못 먹는 아이들이 있다고도 합니다. 서구화된 아이들의 입맛은 달콤함에 길들여져 인스턴트 식품이나 패스트푸드에 빠져가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그 아이들은 소아 비만이 되기 쉽고, 또 성장하면 성인병에 노출되기 쉽다고 합니다. 우리의 발효식품과 멀어지는 데서 오는 당연한 폐해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순창의 장류산업은 세계를 향해 뻗어가고 있습니다. 현대의 기술을 활용하여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수출까지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순창은 세계의 맛을 내는 메카가 되는 꿈을 꾸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행복한 눈으로 웃음 지으며 박물관을 나섰습니다.

설을 지내고 떠난 자식들은 지금쯤 고향의 노부모가 정성스레 만들어주신 음식을 맛보며 뜨끈뜨끈한 혈육의 정맛(情味)에 빠져서 보름을 맞고 있을 시간입니다. 우리의 장류가 만들어낸 음식들이죠. 우리 부모의 마음이 빚은 식품들이기도 하고요. 장맛은 곧 부모의 맛입니다. 그것은 곧 모든 음식의 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맛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키고 가꾸어 나가야 할 우리 민족의 거대한 유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외쳐 봅니다.
“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어!”

/전북보 블로그기자단 '전북의 재발견'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