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4월 11일, 낙태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형법상 낙태죄 규정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낙태 가능 시기, 조건, 절차 등과 관련된 적절한 입법이 있을 때까지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낙태죄 규정의 효력을 당분간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일반적인 임신의 경우 낙태를 전면적으로 막고 있는 현 낙태죄는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단이다.

최근 들어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상당히 ‘진보적’ 경향을 가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수년 전 형법상 간통죄에 대해 위헌 결정, 얼마 전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데 이어, 이번에도 오랜 기간 사회적으로 논란이 돼 왔으나 수차례 합헌 결정을 받았던 ‘낙태죄’ 사안에 있어서 결국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

이로 인해, 사회가 조금 더 국민 개개인의 ‘자유’에 무게를 실어주면서 과거 ‘개인을 희생하면서 지켜야 할 마땅한 의무’ 내지 ‘사람으로서의 도리’와 같은 보수적인 굴레를 벗어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국민들의 ‘인권’에 대한 의식 수준이 성장하는 현 상황에서 필자는 위와 같은 규정, 제도들에 대해 당장이건 나중이건 언젠가는 결국 ‘위헌’ 판단이 나올, 시간문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다만, 간통죄, 병역법 사안과는 달리 이번 ‘낙태죄’ 사안에 있어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이렇게나 빨리’ 나올 줄은 사실 기대하지 못했다.

아직까지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에 비해 ‘태아의 생명권’을 더 중하게 바라볼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권’은 이념적으로 절대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서, 그 무게감은 어떠한 인권보다도 무거운 것이 당연하기에, 필자는 우리 사회가 ‘태아의 생명권’의 경우에도 그에 근접한 무게감을 부여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에 헌법재판소가 생성 시기를 불문하고 태아에게도 분명히 존재하는 ‘생명권’의 무게를 한 개인의 ‘자기결정권’보다 더 우위에 둘 것이라 생각하며, 낙태죄에 대해 ‘합헌’의 결과가 나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며 현 낙태죄 규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임신한 여성과 태아 사이의 특별한 관계로 인하여 그 대립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태아는 엄연히 모와는 별개의 생명체이지만, 모의 신체와 밀접하게 결합돼 특별한 유대관계를 맺으면서 생명의 유지와 성장을 전적으로 모에게 의존하고 있다. 임신한 여성과 태아는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의존적인 매우 독특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임신한 여성은 자녀가 출생하면 입양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어머니로서 출생한 자녀에 대한 양육책임을 부담한다. 특별한 예외적 사정이 없는 한, 임신한 여성의 안위가 곧 태아의 안위이며, 이들의 이해관계는 그 방향을 달리하지 않고 일치한다.” 라며 여성의 안위를 태아의 안위와 동등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임신한 여성의 안위가 태아의 안위와 깊은 관계가 있고,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해 임신한 여성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언명은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 사회적 보호를 포함할 때 실질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원치 않은 임신을 예방하고 낙태를 감소시킬 수 있는 사회적, 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등 사전적 사후적 조치를 종합적으로 투입하는 것이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실효성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헌법재판소에서 이번 결정을 위해 많은 고민과 준비를 한 흔적이 역력했다.

또한,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필자로 하여금 스스로가 ‘모름지기 사람으로서 마땅히’라는 말을 전제로 하는 옛 논리에 사로잡혀 시대의 흐름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한 번 더 생각하게 했고, 해당 결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통해 ‘산모의 자기결정권’을 상대적으로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이유를 더욱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장웅주 변호사(변호사 최정원‧장웅주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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