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근-전인삼 명창 사사
결혼후 10년간 공백 41살
4년간 장원 놓쳐 5년만에
꿈이뤄··· "감동 잊지못해"

“큰 대회 상을 타면 한 달간 바쁘다는 말이 있다.

실감하고 있다.

축하전화가 아침 7시부터 지금까지 오고 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난 달 10일 전주무형유산원에서 열린 제45회 전국대사습놀이전국대회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수상한 최영인씨는 한 달이 넘어서도 당시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다섯 번의 도전 끝에 얻은 결과고 더욱이 10년 간의 공백을 깨고 다시 도전 끝에 얻은 터라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한 달의 시간을 보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일반인이 아니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에 맞는 마음과 행동에 임해야 한다는 각오도 생겼다.

서울이 고향인 최영인 명창은 초등학교 4학년때 남원으로 이사했다.

우연히 TV를 통해 남원시립국악단 공연을 보면서 소리에 흥미를 가졌고, 어린 마음에 TV에 출연하면 돈도 많이 버는 것으로 생각했다.

남원국악원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연수생 생활을 마쳤고, 고등학교 졸업후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과 전주시립예술단에서 소리활동을 이어갔다.

이후 더욱 깊이 있는 소리공부를 위해 만학도로 우석대로 진학 해 자신의 소리영역을 넓혀가기도 했다.

초창기 남원에서 강도근, 전인삼 명창을 사사했고, 전주에 와서는 이일주 명창에게 동초제를 배웠다.

하지만 소리인생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결혼을 한 후 남편 따라 강원도 연천으로 거주지를 옮겨야 했다.

국악원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소리도 잠시 멈춰야 했다.

“강원도에 가면서 정확히 10년 뒤에 다시 오리라 작정했다.

육아 생활 등 정신없는 가정생활을 보냈고, 나이 40이 돼 다시 시작했다.

41살 때부터 대회에 출전하며 내 갈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사실 10년의 휴식기에도 소리공부는 꾸준하게 했다.

다만 공식적 활동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10년을 쉬고 첫 출전한 전주대사습대회에서 수상자 명단에 오르지는 못했다.

하지만 수상의 기쁨보다 더욱 큰 기쁨을 맛본 대회였다.

다시 소리인생을 시작한 자신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기도 했다.

이후 4년 동안 대사습에 출전했다.

두 번째 도전은 3등을 했고, 이후 줄곧 2등만 돌아왔다.

네 번 연거푸 장원에 오르지 못하니 창피하기도 했다.

그만둘까 생각도 했다.

“그만둬야 하나, 이 길이 맞는지 수도 없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극복하는 게 소리공부보다 더 힘들 정도였다.”

5년 만의 도전 끝에 목표달성을 했다.

10년을 쉬었으니 앞으로 10년이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편하게 소리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쉬는 기간 너무 소리가 하고 싶어서 울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제 하나 하나 천천히 걸어갈 예정이다.

기라성 같은 스승들의 목을 가지고 싶다.

앞으로 10년 동안 소리꾼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길을 걷겠다.”

/조석창기자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