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은 조선 정조 임금의 신임을 받아 개혁정치를 폈던 사람이다.

그는 탁월한 능력에 걸맞게 임금의 신임을 받으면서 조선의 문물과 제도 개혁에 앞장섰다.

그가 정조의 신임을 받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는 치열한 당파싸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참신하면서도 개혁적인 의지를 가졌고, 누구보다도 연구하고 노력하는 학자적 기품도 갖추었다.

그러나 그는 기존의 정치체제와 관행에 비춰볼 때 한 마리의 미운 오리새끼에 불과했다.

특히 그의 형제들이 천주교와 연관된 것은 큰 시련이고 걸림돌이었다.

특히 큰형 약현의 사위 이벽의 출현은 정약용 일가를 늘 위태롭게 했다.

유독 호기심이 많았고, 세상을 새롭게 바꾸고자 했던 정약용이 일시적이나마 서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친척들이 조상의 신주까지 불살라 버리면서 유교적 전통을 거부한 일을 보면서 그는 당황하고 놀랐다.

그는 그런 점 때문에 서학을 멀리하고 정조의 개력을 도왔지만 새로움에 대한 갈증은 끝이 없었다.

그래서 정파적 이해가 대립될 때마다 그것은 덧난 상처처럼 그를 옥죄었다.

정조를 도와 문물과 제도를 개혁한 과감성, 수원화성 축조에서 보인 공학적 실력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1800년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다산은 기약 없는 귀양길에 올라야 했다.

약전 형과 귀양을 가면서 나주 율정점에서 쓴 이별의 시는 지금도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당파를 초월한 정의의 사도였고, 개혁의 선도자였지만, 그의 귀향길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귀양길에 오른 것은 세도정치 탓이다.

어린 순조를 대신하여 정순왕후가 섭정하면서 정약용은 ‘나쁜 모난 돌’이 되었다.

얼마 전부터 우리사회는 ‘조국 법무부 장관’ 지명과 관련하여 엄청난 회오리가 일고 있다.

장관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쏟아져 나온 숱한 의혹들을 보면서 피자는 많이 당황했다.

모함이겠거니, 모난 돌에 쏟아지는 비난이겠거니 하면서 정약용을 떠올렸다.

천학비재의 필자의 좁은 소견으로 이 대목에서 정약용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불손한 일일 수도 있다.

또한 조국을 잘 알지 못하면서 연관시키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도 정약용을 떠올렸던 이유는 둘이 닮은 점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분 다 개혁적 의지가 강했고, 정권의 총애가 특별했다.

그러나 조국 후보자에 대한 언론과 정치권의 추적은 끝이 없었다.

조국에 대한 기삿거리가 사상 유례 없이 엄청났다.

한 인간을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은 채 발가벗기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은 속단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의 일만으로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는 불변의 진리를 재확인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이런 걱정도 들었다.

앞으로 소위 고위공직자는 누구도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까발리는 데 누가 선뜻 나서겠는가? 그렇게도 사람이 없느냐고 몰아붙이지만 사실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오래다.

당연히 문제가 되는 사람이 공직을 맡아서는 안 된다.

국회의원도, 지방의원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한쪽에서는 이것을 정책검증은 없고 인신공격만 난무했다고 평가했다.

급기야는 대통령은 의혹만으로 그를 낙마시키는 나쁜 선례를 만들 수 없다며 장관 지명을 해버렸다.

다산 정약용은 귀양지에서도 자식들의 교육에 한 순간도 마음을 놓지 않았다.

늘 채근하고 격려했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도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한결같음을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 청문회에서 보듯 자녀교육 문제는 누구에게 폭발물처럼 위태위태했다.

잘난 사람이면 누구에게 이중국적, 위장전입, 스펙 부풀리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왜 정약용과 조국을 이야기 하는가? 누가 뭐래도 그들은 우리 사회의 모난 돌이었기 때문이다.

정약용에게는 서학 관련설을 확산하면서, 조국에게는 범죄의혹을 부풀리면서 옭아맸다.

조국에 대해서는 아직 뭐라고 말하기가 이르다.

헌정사상 이례적으로 많은 검사들이 나서서 수사하고 있기 때문에 곧 전모가 드러날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모난 돌’이 되기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신념이 투철하고 일관되었다 하더라도 쉽게 모난 돌이 될 수 없는 사회 구조다.

사회의 욕망은 가득한데 누구보다 자신과 주변을 잘 관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약용도, 조국도 우리에게는 특별한 인재다.

이런 사람들이 버텨나갈 수 없는 사회 시스템과 제도가 있다면 이 또한 문제다.

그렇다고 잘못과 범죄가 있다는 그것까지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모처럼의 개혁의지가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한 말이다.

/무울 송일섭(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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