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경제발전사에서 한 획을 그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별세했다.

이로써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세분인 김우중, 정주영, 이병철 전 회장들의 크나큰 족적과 함께 후세인 우리들에게는 또 다른 크나큰 숙제를 남겼다.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김우중 전 회장이 대우의 경영에 있어서 실패했다고 하나,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사 전체를 놓고 보면 절대로 실패만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라도 거쳐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의 가장 특징적인 것은 6.25 한국동란 이후에 사회 기반시설과 인프라 구조가 완전히 제로인 상태 즉,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다는 것이다.

즉 자본력이 갖춰지지 않았고 기술력 또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좋게 말하면 기업가 정신으로 오로지 도전력 하나만 가지고 저돌적으로 밀고 나갔다는 것이다.

이를 평범하게 이야기하자면 그냥 맨땅에 헤딩한 것이다.

원래 김우중 전 회장의 출발점은 정주영 전 회장이나 이병철 전 회장의 제조업 기반보다는, 어떻게 보면 만들어진 물건을 시장개척을 통해 수출하는 세일즈경제의 사업모델일 수도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와이셔츠와 가발 등의 소비재로 시작해 자본력이 약하지만 국내의 기술력이 있는 회사를 흡수 병합하는 형태로 그룹을 키워온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1960년대 초반경 기술력과 제품의 질이 정말로 형편없는 상태에서 국내가 아닌 세계를 상대로 시장을 개혁하는 말 그대로 효시가 됐다.

이는 말 그대로 기업가 정신(企業家 精神, Entrepreneurship)의 대표적인 본보기인 것이다.

대우의 사훈이 “창조·도전·희생”의 맥락과도 같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건, 생산되지 않건 무조건 돈 되는 것이라면 공산국가건, 동구권이건, 해적단이건 신용을 바탕으로 무조건 팔았다.

차 한 대를 팔면 타이어 5개를 팔 수 있다는 긍정적 마인드로 세계를 누볐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경험도 없고, 숫기 많고,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이들을 교육시켰다.

지금도 구 동구권 공산국에 가면 코리아하면 강남스타일 보다도 대우의 브랜드 네임이 훨씬 강력하다.

이름하여 현재도 불리우고 있는 “대우맨”들이다.

대우의 회사대표, 중역 그리고 신입사원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경영”이라는 것을 교육시켰다.

이분들은 현재에도 글로벌 경영을 바탕으로 요소요소에서 왕성하게 사업하고 있다.

이렇게 오기까지에는 얼마나 많은 비하인드 스토리와 에피소드가 없겠는가? 이 많은 에피소드와 뒷이야기 중에서 필자가 제일 김우중 회장에 대해 기억이 남는 것이 80년대에 운동권 학생을 대거 취직시킨 예이다.

이때만 해도 운동권 출신을 어느 기업도 거들떠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김우중 전 회장은 운동권 출신의 “희생”정신을 높게 산 것이다.

인재들의 단점은 보지 않고 장점만을 본 좋은 예이다.

이쯤 해서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우리 때는 이전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도전정신을 갖고 이들을 위해 희생해서 현재의 우리나라를 만들었다.

우리 때는 왜 포기하고 싶지 않았겠나? 그러나 포기 자체를 몰랐었다.

아니 포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도전정신이며, 기업가 정신이다.

요즈음 사회에 나오는 젊은 청춘들이 눈여겨봐야 할 점이다.

김우중 전회장이 주는 이러한 메시지가 이러한 측면에서 실패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정말로 우리나라 경제가 초고속 성장을 하는데 많은 밑거름이 됐다.

외국에 시장 개척하는 데 정말로 많은 지혜와 인지도를 남겼다.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 한번 물으면 끝까지 놓지 않는 근성을 가르쳐 줬다.

그리고 이러한 데는 애국 충정이 뒷받침이 됐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김우중 전회장의 걸어온 자취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으로서의 진행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강길선 전북대 나노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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