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코비드19 사태는 교정에 가득 차야 할 학생들이 거의 일 년 동안 보이지 않고 있다.

이를 미증유의 사태라해 이런 경우가 없었다고는 하나 사실 필자의 대학시절이 이보다 더 했지 않았을까 싶다.

필자의 대학 3학년 2학기 때, 박정희 전대통령의 시해사건이 그리고 이듬해에 일어난 광주민주화 운동이 그것이었다.

사실 1977년도에 대학에 입학한 후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유신철폐·독재타도에 전쟁을 방불케 하는 데모가 1970년도부터 십수 년 내내 벌어졌다.

1979년 가을부터 1980년 겨울까지, 약 1년 반 동안 수업은 거의 없었다.

학교대운동장에는 장갑차가 주둔하여있는 폐교 수준으로 학교 문을 닫았다.

최근에는 SNS나 여러 매체들이 잘 발달돼 소통이 수월했으나 그 당시에는 시외전화조차도 신청 후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하염없이 고향에서 농사짓고 낚시질하였던 기억밖에 없다.

이와 함께 대학시절을 회상하면, 내 자신이 민주화 운동에 본격적 참여를 못해 민주화 운동을 열심히 했던 동료들에게는 항상 미안함이 남아있다.

필자의 경우에는 우선 공대생이라는 이유로 문과대생들보다는 현실적으로 전투와 같은 데모에 참여를 못했다.

전공특성상 교수님과 조교들의 눈 밖에 벗어날 수 없었던 체제이기도 했다.

대학생활 4년 동안의 대학문화에서 데모는 일상생활이었다.

거의 매일 터지는 최루탄 가루가 눈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눈 부분에 PVC 랩을 두르고 다녔다.

기숙사에 오픈하우스에서 최고 인기 행사는 데모에서 전투경찰들의 물품을 전리품으로 빼앗아 전시하는 것이었다.

가장 인기 많은 것을 일등을 주었다.

기억에는 전리품으로는 방패·곤봉 등은 애교이었고, 내 친구가 전시했던 최루탄과 최루탄 발사기가 1등을 했던 기억이 있다.

나하고 절친하였던 친구는 광화문 앞에서 데모하다가 전경들의 포위망에 걸려들어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꼼짝없이 체포될 운명이었는데 눈이 마주친 전경이 왠지 놔줬고 동시에 엄마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중첩 되더란다.

이 친구는 그 길로 데모를 그만뒀고 결국 이민갔다.

물론 그날 같이 체포된 친구들의 대부분은 군대에 끌려갔다고 했다.

필자의 경우에는 데모에는 그리 참여를 못했다.

그러나 어찌된 연유였는지 모르겠지만, 1980년 5월 15일에 서울역 광장에서 열렸던 서울지역 30개 대학학생 10만 명이 모여 전두환 신군부 계엄령 해제 및 민주화 시위에 우연치 않게 참가하였다.

10만명은 엄청났었다.

전국 대학생의 1/4였다.

이날 저녁 자진해산하였는데, 이 사건을 두고 서울역 회군이라고 불린다.

자진해산을 끝까지 안 했으면 아마도 광주민주화운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 후 끈질긴 학생운동으로 민주화 운동이 계속된다.

1987년 6·29선언, 1990년 삼당합당을 걸쳐 전혀 이뤄질 것 같지 않던 정권교체 및 완전 민주화가 이뤄지는 개도국 사상 전무후무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전설을 이룬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잊으면 안 될 것이 있다.

우리나라는 3·1 독립운동을 기반으로 6·25학도의용군, 4·19 학생혁명 그리고 민주화와 산업화까지 “학생운동”을 기반을 둔 만큼 순수했다.

많은 20대 젊음들이 나라를 구하고 죽었다.

특히 유신군부시대에 민주화 운동하던 학생들 중에 수백여 명의 행방불명자, 수십여 명의 분신자살자, 데모 중 사망자, 고문 중 사망자, 같은 젊은이로서 데모를 막다가 사망한 전투경찰과 경찰들, 그리고 지금도 20~30여년간 병원에서 누워 있는 정말로 순수(純粹)했던 이들의 희생이 있었다.

그리고 더욱더 중요한 사실은 시위대에 박수를 보내고 같이 울었던 시민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화 희생자와 국민들을 등에 업고, 순수했던 학생운동의 민주화의 원리 본분에서 벗어난 작금의 호도된 민주화들의 특권화가 원래 학생운동들의 취지의 빛을 바래게 하고 있다.

이는 독립운동가들의 정신과 혼을 팔아 사이비 독립운동가를 자처해 개인이 호의호식하는 작태와 무엇이 다른가?순수했던 3·1 독립운동과 4·19 학생혁명의 연장선에서 쟁취했던 현재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어찌 보면 우리 모든 국민들의 것이다.

숭고(崇高)히 산화(散花)한 많은 잊혀져간 학생 의사(義士)들의 원혼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강길선 전북대 고분자나노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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