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소설(小雪)을 지나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내일을 계획하는 연말이 다가왔다.

그동안 연말은 설렘과 희망의 샘이 넘치는 시기였다.

지나온 해의 결실에 대한 기쁨과 다가올 새해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허전함과 쓸쓸함이 커지는 때이기도 하다.

가족이 없는 독거노인이나 홀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소년소녀가장, 각종 사건 사고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에게 연말은 혹독하기만 하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 정신은 도외시하고 오직 물질만을 중시하는 배금주의가 판을 치는 탓이다.

이렇듯 각박한 시대에, 무차별적인 성장 대신 이웃과 상생하며 사회적 재화를 자발적으로 나누고자 하는 지역이 있다.

바로 우리 전주시다.

전주는 이제 천사의 도시로서 새롭게 기부의 메카로 거듭나고 있다.

19년째 익명으로 성금을 기부하는 얼굴 없는 천사와 지역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자발적으로 나서는 주민들, 그리고 많은 봉사 단체에서 김장김치를 담가 불우이웃들에게 나누던 지난 순간들은 더없는 훈훈함을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나눔 하나하나가 물질의 가치나 정도를 떠나서 그 자체로 희망과 행복의 근원이 아닐까 싶다.

이뿐 아니라, 얼굴 없는 천사로부터 시작된 기부의 불씨는 이제 지역 곳곳으로 번져 전주 전역에 그야말로 나눔 열풍이 불고 있다.

올해는 특히나 작년 대비 희망 1004 기부 릴레이 참여 인원이 약 80% 증가하여 전주시민의 따스한 마음을 거듭 느낄 수 있었다.

희망 1004 기부 릴레이는 1004명의 전주시민이 10년간 1004만원의 기부를 약정해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자는 취지로 만든 캠페인이다.

외부로 시야를 돌려보면, 서양에서는 기부와 나눔은 사회적 지위를 떠나 누구든 실천해야 한다는 보편적 인식이 시민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있다.

미국이 그 대표적인 예다.

소위 서양판 금수저라 불리는 ‘블루블러드’(명문가)들은 기부 자체를 부와 비례한 사회적 역할이라고 여기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광범위하게 실천해왔다.

석유 재벌 록펠러가 평생 기부한 액수는 현재 가치로 145조 원에 달했으며, 철강왕 카네기 또한 재산의 90%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여 기부문화 확산에 누구보다 앞장섰다.

모두가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기업가들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미국인 10명 중 8명꼴로 매월 정기기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금된 미국의 기부액은 연간 4000억 달러를 넘고 있는데 이는우리나라 1년 예산에 버금갈 정도로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이와 같은 남다른 기부 정신이야말로 미국의 비약적인 발전을 견인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채근담(菜根譚)에서 말하기를, 아무리 큰돈이라도 사람에게 일시의 기쁨조차 주지 못할 때가 있고, 단 한 공기의 식사이지만 평생의 은혜로서 사람을 감동케 할 때가 있다고 했다.

우리 사회가 진정 화합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베풂의 정도를 떠나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남과 나누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베풂이란 결국에는 잃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들을 얻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베풂의 시작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속에 품고 있는 나눔의 씨앗을 싹트게 하는 일이다.

고통 속에 절망하고 있는 이들에게 있어 실천 없는 나눔은  공허한 외침과 진배없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이번 연말이 보이지 않는 먼 이웃의 아픔까지 보듬을 수 있는 나눔과 사랑의 시간이 되기를 희망한다.

/강동화 전주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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