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가 조선의 본향, 전라도정신, 호남정신의 산실이며 중국사신 주지번이 호탕하고 힘찬 걸 작품 ‘풍패지관’ 을 선물하였지요.

조선시대에는 전주를 완산유수부라하고 특별한 예우를 받기도 했고 대동사상을 꿈꾸던 정여립,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던 전봉준장군의 동학농민혁명은 조선의 민주주의의 성지였던 전주이다.

올곧음은 의로움과 바름을 지키고 숭상하는 절의 정신이다.

선비의 정신을 근간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여 품격있고, 고결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청아한 정신이다고 전주정신정립위원회에서 정의하였습니다.

전라감영이 있던 전주를 중심으로 전라도정신, 혹은 호남정신이라 하는데 7년전쟁-임진왜란시에 경기전에 보관하던 조선왕조실록과 태조어진을 온전히 지켜냈고, 전쟁 영웅 성웅 이순신장군이 전공서에 ‘국가군저, 개고호남, 약무호남, 시무국가’(국가의 군수품을 호남에서 대어주니 호남이 없으면 국가가 없다)라 한 기록은 전라감영의 위상 즉 전라도정신, 호남정신의 산실이 전라감영이고 전라감영의 전주가 전라도정신, 호남정신의 근거지이다.

전주정신 대동, 풍류, 올곧음, 창신의 4대정신을 음미하면서 전주에는 개혁가요 사상가인 정여립, 전봉준, 창암 이삼만, 금재 최병심 등의 인물들이 호남정신을 계승 발전시켜왔고 최명희작가는 혼불에서 저항은 의로움이고 올곧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조선의 건국공신 월당 최담이 한옥마을에 은행나무를 심고, 별장으로 한벽당을 건축하였으며 최담의 후손 금재 최병심은한벽당을 왜구들이 철거를 하지 못하도록 두 눈을 부릅뜨고 온몸으로 막아 온전한 모습의 한벽당을 보존, 맑은물이 바위에 부딪쳐 피어오르는 물안개의 아름다운 정경 한벽청연이전주팔경중 일경이다.

항일정신의 거점 옥류정사를 왜구들이 잠사를 짓는다는 핑계로 토지를 수용에 저항하자 옥류정사에 불을 지르며 퇴거를 시도하였으나 불에 타 죽더라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왜구들에게 넘겨줄 수 없다며 불에 죽음을 각오하고 왜구에 끝까지 저항하였다.

대한독립밀맹단에 후학들이 참여하도록 권유하고 군자금을 모금, 전달하는 독립운동가가 옥류정사에 칩거하자 금재 최병심을 만나 학문을 논하고 가르침을 받고자 기다리면서 한 채, 한 채 지어진 한옥마을엔 책 읽는소리, 항일을 논하는 마을이 되어 지금은 1,000만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가장 한국적이며 아름다운 마을이며, 금재최병심의 정신을 잇고자하는 후학들이 자만동 최학사의 학문과 절개의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성금을 모아 옥류정사를 신축하였는데 도로를 개설하면서 두차례 이전하는 과정에서 현 위치로 옥류정사를 이전하였는데 현재는 옥류정사 주변에 풀이 숲을 이루고 지붕의 기와는 금방이라도 와그르 쏟아질 것 같고, 벽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고, 문짝이 떨어진 현장을 찾아 본 필자는 전주정신 올곧음도 옥류정사와 함께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에 억장이 무너지는듯하였다.

전주의 관광거점도시 조성은 조선의 본향으로서 500년의 역사를 온전히 보존, 계승 발전이 전주정신 대동, 풍류, 올곧음, 창신의 정신이었다면 조선 본향 전주에 소재한 조선의 역사문화와 함께 주변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경관 조성사업으로 온고지신한 모습으로 변신과, 전주정신을 계승 발전시켜야한다. 

간재 전우의 수제자, 금재 최병심은 왜구들에게는 추상같은 호령을 하였고 굽힘도 타협도 없던 금재 최병심의 기개와 절개의 정신이 NO아베, 사지도, 가지도 않겠다는 오늘의 항일정신이다.
  
/박영진 한중문화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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