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은 모든 생물의 본능이지만, 한편으로 사람들은 생존을 위협하는 재난 상황을 즐기기도 한다.

재난 영화가 대표적이다.

아포칼립스 장르라고도 한다.

그리스어로 계시라는 뜻이다.

종말과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이런 영화들은 당대의 시대상을 담고 있다.

20세기 냉전시대에는 핵전쟁으로 인한 지구 멸망이 주요한 소재였다.

이런 핵전쟁에 대한 공포가 사라진 뒤에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지구 멸망이 주요 소재다.

또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를 소재로 사회 혼란을 영화화하기도 한다.

소설 『눈먼자들의 도시』, 『페스트』가 생각난다.

『설국열차』와 같이 새로운 빙하기가 시작되는 소재도 있었고, 국내에서는 쓰나미를 소재로 한 영화가 있었다.

좀비를 소재로 한 영화도 있다.

부두교에서 등장하는 좀비가 극장에 나타난 것은 1970년대 B급 공포물에서다.

좀비는 B급 문화의 상징 같은 소재다.

부두교는 서인도제도의 아이티 등지에 널리 퍼져있는 민간신앙이다.

재난 영화가 당대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부두교의 좀비 역시 서구의 제국주의의 식민정책인 노예무역의 어두운 그림자다.

서구 제국주의는 아프리카의 흑인을 노예로 삼아 서인도제도의 아이티 섬 등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했다.

좀비는 살아있는 시체라는 뜻인데, 자신들이 노예가 된 상황과 별 다를 게 없었다.

아이티가 독립한 후 미군이 주둔하게 되는데, 이때 좀비 민담이 미국으로 전파되어 영화로 만들어진다. 

좀비 영화의 효시는 1932년 빅터 할페린 감독의 『화이트 좀비』다.

여기서 좀비는 괴물이 아니라, 사악한 주인에게 최면에 걸린 인간으로 그려진다.

아이티의 좀비 민담에 가깝다.

노예로 그려진다.

이후에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좀비영화의 중요한 기점을 만들었는데, 그 이유가 이때부터 좀비가 괴물 캐릭터로 그려지기 시작한다.

조종당하는 존재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의 살을 뜯어 먹는 것을 목적으로 한 존재로 그려진다.

더 이상 노예의 모습은 아니지만, 인종이나 여성차별에 대한 문제를 반영하고 있어서 미국의 좀비영화들이 당대의 사회현실을 풍자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0년대부터는 별 인기를 끌지 못하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 다시 좀비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2001년 있었던 9.11 테러이후 좀비영화가 다시 유행하기 시작하는데, 실제로 2001년 이후부터 좀비를 소재로 한 콘텐츠가 대중문화에 폭발적으로 등장한다.

조류독감이나 광우병, 코로나 같은 새로운 질병이나 기후변화, 환경오염, 대지진 같은 자연재해들이 빈번해지면서 인류가 순식간에 멸망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다시 좀비 영화가 인기를 얻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편으로는 초경쟁 시대의 세태와 점점 심화되고 있는 인종, 민족, 성, 종교, 소수자, 계급 등의 각종 차별행위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모두 적이라는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영화 외에도 좀비란 단어는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스마트폰 좀비는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집을 샀지만, 어쩌면 평생 대출금과 이자를 은행에 갚아야 하는 이런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비유해서 좀비 자본주의라고 말하기도 한다. 
반면에 삶의 활력을 주기 위한 기획물도 있다.

좀비를 피해 마라톤을 하는 좀비런 대회다.

술래잡기 형식으로 좀비들과 함께 5Km의 거리를 달리는 마라톤 행사다.

전주문화재야행의 ‘경기전좀비실록’이란 기획 행사도 있다.

『조선왕조실록』 지키던 민초의 혼 되살려 현 시대에 맞게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김창주 민주노총 전주문화재단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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