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고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사건이 또 발생했다.

작년 10월 생후 16개월 밖에 되지 않은 정인이가 양모의 상습적인 학대로 인해 고통 속에서 숨을 거뒀다.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였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이었기에 더욱더 마음이 아프다.

경찰은 세 차례나 학대가 의심된다는 신고를 받고도 내사종결하거나 혐의 없음으로 검찰에 송치함으로써 부실하게 대응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경찰이 아동 학대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조치를 취했다면 최소한 정인이의 생명은 지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진한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정인이의 죽음은 양모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겠지만 경찰의 책임도 이에 못지않다.

아동학대 범죄는 일반적으로 형법의 특별법이라 할 수 있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먼저 적용되지만 정인이 사망사건의 경우에는 아동학대치사냐 살인이냐에 따라 처벌의 근거 법률이 달라진다.

아동학대 처벌 특례법에서는 아동학대치사죄, 즉 폭행, 상해, 유기 또는 감금 등으로 아동을 사망에 이르게 한 때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는 반면 형법상 살인죄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둘의 차이점은 사형의 유무이다.

검찰은 지난 달 8일 양모를 형법상 살인죄가 아닌 아동학대 처벌 특례법상 아동학대치사죄로 기소했다.

아마도 양모에게 명확한 살인의 고의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법리 분석에 몰입하거나 이에 익숙한 전문가의 시각에서 보면 살인죄보다는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양모에게 살인죄의 책임을 물어 엄벌해야 한다는 진정과 국민청원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법리적으로 양모에게 살인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여지는 없는 것일까? 이번 사건의 경우에 양모에게 살인죄가 성립할 가능성은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의 판례에 따르더라도 살인죄의 고의는 반드시 살해의 목적이나 계획적인 살해의 의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타인의 사망의 결과를 발생시킬 만한 위험이 있음을 예견·용인하는 것으로 족하며 그 주관적 예견 등은 확정적인 것은 물론 불확정적인 것이더라도 미필적 고의로서 살인의 범의는 인정될 수 있다 정인이의 쇄골과 늑골이 부러질 정도로 학대했다면 상식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이라면 단순한 학대를 넘어 아이가 사망에 이를 수 있을 정도의 폭행이라고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이러한 행위를 반복적·상습적으로 행하면서 의사의 치료를 받도록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한다면 아이가 사망할 수도 있다는 예견은 더욱더 확실에 가까울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양모는 정인이가 사망하더라도 상관이 없거나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즉 양모는 자신의 폭행 등의 학대로 인해 정인이가 사망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예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결과를 용인한 것이다.

지난 해 자신의 아이를 여행 가방에 가둬 사망케 사건이 세상을 달궜을 때 검찰은 의붓어머니를 살인죄로 기소했고 법원에서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한 적이 있었다.

정인이 사건은 양모가 살인의 확정적 고의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학대하였거나 적어도 살인에 미필적 고의는 가지고 있었다고 보인다.

검찰이 왜 살인죄로 기소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검찰은 지금이라도 살인죄로 공소장을 변경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살인죄로 기소하더라도 법원이 관대한 판결을 내린다면 법이 정한 형량은 의미가 퇴색된다.

법원은 법리와 정의의 형평을 고려하여 판결을 하여야 한다.

단순히 법리에 얽매여 정의를 무시하거나 정의에 집착해 법리에 벗어나는 판결을 내려서도 안 된다.

법리가 지고한 가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법리는 정의의 실현을 위한 지침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언론에서 이슈화하지 않았으면 사회적 관심에서 멀어져 묻혔을 수도 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난 후에야 좀 더 법정형이 높은 죄명을 적용하고 형량을 가중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를 볼 때 아동학대의 법정형을 늘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경찰단계에서 신속하고 효과적인 조치, 검찰 단계에서 적절한 죄명의 적용, 재판 단계에서 엄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이러한 각각의 단계에서 미온적으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한다면 아무리 형량을 강화한다 하더라도 효과가 없다.

좀 더 정밀한 입법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로문 법학박사·민주정책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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