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남부교회 강태문 목사

코로나로 인해 요즘 심심찮게 오르내리는 언어가 ‘포스트 코로나’ ‘언택트(Untact)’ ‘뉴노멀(New normal)’ 등이다.

‘포스트 코로나’는 오랜 기간 지속된 코로나로 인해 생겨난 새로운 생활방식이 코로나 이후에 미치게 될 영향으로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이러한 변화들이 우리 사회를 주도하여 나간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언택트(Untact)는 ‘접촉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영어단어 ‘Contact’에 부정의 의미를 담은 ‘Un’을 합성한 신조어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사람과 접촉하지 않는 의미로 ‘비대면’을 말하는 것이다.

뉴노멀(New normal)은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떠오르는 기준, 표준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코로나 팬데믹(pandemic)과 함께 사회 전반에 걸쳐 변화를 이룬 새로운 생활방식이 코로나 펜데믹 이후에도 정착되어 이어질 거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으로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코로나 이후의 새로운 표준)’이란 말이 사용되기도 한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나타난 사회 전반에 걸친 가장 두드러진 새로운 문화가 사람과의 접촉을 꺼리는 것으로 인한 비대면 활동이다.

어쩌면 이러한 문화는 코로나 이후에도 어느 정도 문화로 정착될 거라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이다.

언택트로 인해 생겨난 몇 가지 현상들을 살펴본다.

우리나라 문화 중 인간관계와 체면으로 인해 무시하고 지날 수 없는 풍속이 관혼상제의 의식이다.

이러한 의례는 인맥으로 인해 때론 부담으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품앗이와 같은 일이어서 때론 의무감처럼 참석하게 되는 것인데 코로나 펜데믹이 이러한 인식을 불식시키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카카오페이 송금에 결혼 축하 문구를 넣는 ‘축의금 봉투’ 이용량은 코로나 이전보다 지난해 12월에는 353% 늘었다.

장례식장을 찾아 식사한 조문객은 빈소당 전년 동기에 비해 3분의 1로 줄었다.

부고 소식을 온라인으로 알리고 최소한의 조문객을 받기 때문에 빈소의 필요성이 적어지고 장례의식 역시 간소화되며 3일장은 그대로 하되 유가족도 가까운 집에서 대기하기도 한다.

요양병원의 면회도 금지되어 요양병원을 현대판 고려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코로나 이후에도 이러한 새로운 트랜드는 점차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될 것 같다.

직장인들의 유연 재택근무제로 인해 집과 직장의 경계선이 모호해졌다.

집이란 잠자는 곳, 직장은 일터란 확실한 경계가 허물어지고 집은 일·휴식·문화의 복합 공간으로 변했다.

재택근무가 불가피해지면서 수많은 기업이 재택근무를 시행하면서 재택근무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발전시켜가는 것으로 인해 회사들은 재택근무를 해도 비즈니스가 가능하며 이것이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집에서도 모든 업무를 해결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갖추고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재택근무를 하는 ‘유연 재택근무제’를 도입하는 기업이 코로나 이후에도 생겨날 것으로 여겨진다.

과연 집과 직장의 확실한 구분이 가능할까? 1인 가구의 증가와 함께 비대면을 통한 개인 생활의 일반화이다.

통계청 2019년 인구 총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1인 가구 비율이 30.

2%이며 1인 가구 수는 6,147,516가구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주민등록인구가 사상 처음으로 감소했는데도 1인 세대수는 처음으로 900만이 넘었다.

비대면과 함께 ‘혼밥, 혼술’이라는 현상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추세가 되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함께 여가 시간은 소폭 늘었는데 집 주변에 제한됐고 비대면 여가활동으로 혼자서 하는 여가활동이 대폭 증가했다.

언택트 시대에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외부활동이 제한됨에 따라 집콕, 방콕족이 되어가고 있다.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불안이 커져 실내 공간과 타인이 사용했던 물건을 공유하는 것을 기피 하는 경향으로 최소한의 핵가족이나 홀로족의 여가활동이 일상화되어가고 있다.

사람과의 접촉이 단절되고 그 대안으로 로봇이 부상하고 있다.

로봇배달서비스, 반려로봇의 등장 등 1인 세대에게 새로운 트랜드로 되어가고 있다.

교회나 성당은 점차 비대면 예배나 미사가 일상이 되어 정상적 예배나 미사처럼 여겨지는 실정이다.

어쩌면 개별활동이 일상화되어가는 것으로 인해 4차 산업혁명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 크다.

빈익빈부익부의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전 지구상에서 절반도 안 되는 사람만이 코로나19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일부 부유층은 로봇으로 음식을 배달받고 의사에게 원격진료를 받으면서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지만 다수의 어려운 사람은 위험을 불사하고 나가서 일해야만 한다.

누군가는 공사현장에서 일해야 하고 누군가는 음식을 포장해야 하고, 누군가는 그 음식을 배달해야 한다.

비대면으로 영업의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영세자영업자나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노동자들과 같이 약하고 가지지 못한 자들은 더 큰 고통에 처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 백신 역시 선진국의 선점으로 약소국가들엔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질병의 재난이 이번으로 끝난다는 보장이 없고 언제든지 다시 나타날 수 있는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이 쓴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에서 보편적 개념의 시대는 더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한 새로운 트랜드에 의한 뉴노멀에 대한 국가나 개인이 이에 대한 문제점을 생각하고 염두에 두어야 할 거라고 사료 된다.

/전주남부교회 강태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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