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5년이 지났으니까 강산이 3번 변했다.

필자가 국악이 아닌 사범대에서 수학을 공부할 때였으니 머릿속에는 온통 대학 미적분, 로그와 탄젠트를 그리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그러한 공간에서 벗어나 서해안 어느 바닷가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아마도 전북 부안으로 기억되는데 그곳엔 참으로 아름답고 신기한 추억이 많다.

전주를 시작으로 정읍 그리고 부안을 거치는 나 홀로 여행.

동해안의 드넓고 푸른 기대를 저버리고 왠지 모를 서해안의 끌림으로 그렇게 발길을 따라 굽이굽이 직행버스에 몸을 맡기고 떠났다.

탁한 차창 넘어 펼쳐진 비경은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평온 그리고 안식이었다.

이내 황금빛 대지, 붉은 노을과 함께 육신의 멍에가 하늘로 비상 터니, 처음 보는 이름 모를 무(巫) 의식에 순간 마음도 잃었다.

아마 신도 필자의 고뇌를 알고 있어 그렇게 몸과 마음을 이끌었던 것 같다.

바다로 나가는 길목에서 의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무녀와 동행한 선주처럼 보이는 이는 치성과 기원을 드렸고, 자연스레 모인 동네 사람들은 합장하며 함께 마음을 담았다.

오래전, 그렇게 그 의식은 무를 향한 필자의 처음 끌림이자 강신무와의 첫 동상이몽(同床異夢)의 사연이 되었다.

전라도 서해안 일대에 행해지는 대표적 굿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서해안 일대 배연신굿의 풍어제와 위도 띠뱃놀이란 풍어와 안녕을 위한 마을굿이다.

먼저 우리나라 풍어제를 살펴보면 네 종류의 국가무형문화재가 지정되어 있다.

동해안의 별신굿은 제82-1호로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은 제82-2호, 서해안 위도 띠뱃놀이가 제82-3호, 남해안의 별신굿이 제82-4호로 각각 그 종류와 역사적, 지리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별신굿은 이처럼 삼면(三面) 바다인 한국의 지역적 관습과 음악적 특이성을 잘 지탱하며 전승되어 왔다. 

전라북도 부안 위도의 띠뱃놀이는 매년 정월 초사흗날 어민들의 풍어와 마을의 평안 등을 기원하는 마을 공동제의이다.

본래의 명칭은 원당제(願堂祭)였는데 원당제는 제당의 명칭이 원당인 데에서 불린 것으로 띠뱃놀이로도 불리는 것은 원당에서의 당굿에 이어 바닷가의 용왕굿 때에 띠배를 띄워 보내기 때문이다.

또한, 위도 띠뱃놀이에서 보이는 두드러진 점 중 하나는 위도 띠뱃놀이가 행해지면 위도 대리 지역의 어업민 이외에 타 지역의 어선들도 함께 참여하여 풍어와 안전을 함께 기원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지막 풍어제가 끝나고 동네 주민과 함께 먹었던 음식이 있었는데 바로 바지락죽이었다.

전라북도 부안은 갯벌에서 나는 풍부한 조개류를 이용한 음식이 많았다.

아름다운 고슴도치 섬 위도의 바지락은 육질이 좋고 더욱 맛이 좋다.

더불어 질 좋은 위도 바지락은 곰소 천일염과 만나면 최상의 바지락젓으로 탈바꿈을 하니 마른 입에도 침을 고이게 하는 참으로 신기한 음식이다.

일 년의 안녕과 무사고를 위한 소원과 함께 그렇게 위도 띠뱃놀이와 바지락죽은 필자의 마음을 위로하듯 달래 주었고 35년이 지난 오늘도 추억을 되새기며 코로나19로 힘든 시간을 위로한다.

지금도 바지락죽의 구수한 향과 맛이 원고(原稿) 주위를 돌며 필자의 입맛을 당긴다.

요번 주말에는 꼭 바지락죽을 해달라고 아내에게 말해야겠다.

애독자님들도 입맛이 떨어지는 저녁엔 온 가족과 함께 둘러앉아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의 바지락죽과 백합을 맛보는 것이 어떨는지?

/김용호 전북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장 한국학 박사(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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