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의 가장 오래된 이름 '임피'를 찾아서
군산의 가장 오래된 이름 '임피'를 찾아서
  • 전북중앙
  • 승인 2021.02.0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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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의 옛지명 '임피군'
임피노성당 도유형문화재
日경찰 주재소 현재 양로당
채만식 생가터 우물만 남아
채만식도서관-임피향교
임피역 日수탈 아픈역사
우물-오포대 남아있어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연출

# 군산의 옛 이름은 임피

군산시 임피면입니다. 오늘 군산의 옛 지명이었던 임피면을 돌아보면서 임피면의 역사와 향토문화유산을 좀 살펴보겠습니다.

군산은 1899년 개항 전까지는 전주부 관할 옥구군과 임피군 지역이었습니다. 개항 후에도 해안 일대에 조계지를 설치하고 개항장을 관리하는 소관 관청의 이름은 옥구감리서였는데요, 지금의 군산 지명은 1906년 옥구감리서 대신 군산 이사청을 설치하며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군산(群山)이란 지명은 꽤 오래되었는데요, <전라우도 군산진지도>에 따르면 1710년 군산진이 군산도(선유도 등)에서 연안(진포)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있어 그때부터 군산 연안은 군산진으로 불렸고, 군산이란 지명도 군산진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가볼 군산시 임피면은 백제시대부터 옥구, 회미, 함열 등을 관할한 조선시대 현으로 1895년 옥구현과 함께 군이 되었지만, 1914년 옥구군에 통합되면서 이후 여러 차례 행정개편을 거쳐 군산시 임피면이 되었습니다.

백제시대에는 피산(陂山) 취성(鷲城) 시산(屎山) 소도(所島) 등 여러 이름으로도 불렸고 동국여지승람에는 일본과 왕래하는 요로에 자리해 옥구는 마슬, 임피는 고사재라는 지명으로 표기했다는데요, 통일신라 경덕왕 때 한자 임피(臨陂)로 바꾸면서 오늘까지 이어졌습니다.

군산의 옛 지명이라는 역사에서 보듯 역사 문화유적도 꽤 되는데요, 오늘 임피면 가볼 만한 곳은 임피 노서당과 임피향교, 옛 임피 현청의 연지, 채만식 도서관, 채만식 생가터, 임피역 순으로 둘러보겠습니다.

 

# 임피면의 오래된 문화유산들

높다란 담장으로 빙 둘러쳐진 곳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2호 임피 노성당입니다. 노성당이라고 하니 천주교 성당의 하나로 착각하겠지만 노성당은 옛 선비들이 역대 고을 수령들의 위패를 모시고 일 년에 한 번씩 제자를 지내던 곳으로 조선 말기에는 임피현청의 이방청으로 사용했습니다.

현재는 문을 열지 않아 드론을 띄워 들여다보는데요, 일제강점기 일본 경찰이 주재소로 사용한 바람에 해방 후 적산가옥으로 분류되었지만, 임피면의 한 유지가 불하 받아 임피면 노인회에 기증해 현재까지 양로당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임피 노성당에서 임피향교 쪽으로 연지가 하나 있습니다.

현재 임피 초등학교에 자리에 임피현청이 있었는데, 역대 수령들이 고을을 돌아보다 지친 심신을 달래기도 하고 지역 유생들과 연회를 베풀며 풍류를 즐기기도 한 곳입니다. 연지 옆에 자리한 수령 500년 왕버들나무가 증언해 주었는데요, 팔각정은 2004년 신축한 것입니다.

연지에는 고을 수령들의 선정을 기념하는 선정비가 연지를 빙 둘러 17개나 있습니다.

고을 수령만 있는 것이 아니라 관찰사나 어사, 심지어는 이방을 기리는 선정비도 있는데요, 그만큼 임피의 중인 계층인 향리들도 일정 부분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또한,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철로 만든 선정비도 있습니다. 

임피향교 쪽으로 방향을 틀면 좌측 언덕에 채만식 도서관이 있습니다.

소설 <탁류>의 저자 채만식은 1902년 옥구군 임피면 축산리 계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찌감치 서울과 동경으로 유학을 떠나 창작활동을 하다  임피로 다시 돌아온 것은 지병을 얻었기 때문인데요, 광복이 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1950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군산에는 금강변에 채만식 문학관이 있지만, 생가가 있는 임피면에는 채만식 도서관이 있어 지역 주민들의 독서생활 및 문화생활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채만식 도서관을 지나면 임피향교가 나옵니다.
향교 옆에는 임피 초등학교가 있는데요, 옛 임피현청이 있던 자리로 현재 임피의 옛 건물은 임피향교와 연지, 임피노성당이 유일합니다. 

임피향교는 1403년에 세웠으며 1710년 현재 위치로 옮겼는데요, 1710년이면 선유도 등에 있던 군산진이 연안인 진포로 옮겼던 때로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임피현청 바로 옆으로 향교를 옮겼습니다.

대부분의 향교는 관청이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졌지만, 특이하게도 임피향교는 관청 바로 옆에 있기 때문입니다.

임피향교는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95호입니다.

공자를 비롯 5성과 송조 4현, 동방 18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강학당인 명륜당, 동재와 서재, 흥학당이 있으며 매년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인성예절교육, 일요학교를 운영하고 봄, 가을에 석전을 봉행하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날 분향하고 있습니다.

이제 임피향교를 나와 오늘 임피면 가볼 만한 곳 마지막 행선지인 임피역으로 가기 전에 채만식 생가터를 찾았습니다.

지도와 내비게이션 등으로는 아직 검색되지 않지만, 임피 파출소 앞 사거리에 있어 찾기는 쉽습니다.

군산의 대표적 둘레길인 구불길 2-1길 미소길이 지나는 구간에 있어 많은 탐방객이 지나지만, 생가 우물터만 남았는데요, 군산이 낳은 천재 소설가의 생애를 알 수 있는 시설물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임피면 가볼 만한 곳 마지막 코스는 임피역입니다.

1912년 개통한 군산-익산 철도의 간이역은 오산, 임피, 대야, 개정역으로 현 건물은 1936년 개축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김제 만경평야 등에서 수탈한 쌀을 군산항으로 실어 나르기 위한 집산지 역할로 쓰라린 기억도 있지만, 해방 후에는 군산이나 익산으로 학교나 직장을 다니던  학생들과 직장인들에겐 소중한 추억의 간이역입니다.

당시부터 있었던 우물과 오포대가 생생한 역사를 들려주는데요, 교회당 종탑처럼 생긴 빨간색 오포대는 매일 정오가 되면 사이렌을 울려 12시가 되었음을 알려준 탑입니다. 시계가 귀하던 시절 사이렌이 울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점심을 먹으러 부산하게 움직이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임피면 사람들에게 추억 어린 임피역은 현재 폐역입니다.

2005년 화물 취급이 중지되었고 2008년에는 여객취급도 중단돼 기차가 서지 않는 폐역이 되었지만, 당시 농촌지역 간이 역사의 전형적 건축기법과 철도 역사에 있어 사료로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국가등록문화재 제20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재는 새마을호 객차 2칸을 이용한 전시관과 채만식의 단편소설 <레디메이드 인생>의 한 장면을 조형물로 연출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코로나19로 문을 열지 않아 내부는 살펴볼 수 없지만, 그때 그 시절 간이역 풍경을 수많은 동상으로 재현했으며 임피역 기차 시간표와 요금표도 있으니 코로나19가 잠잠해져 다시 개관하면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임피면은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16년 (757년)에 그때까지 불리던 '고사재'란 지명을 임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임피면의 임피를 한자로 살펴보면 임할 임(臨), 방죽 피(陂)란 뜻인데요, 한자 뜻 그대로를 풀어보면 '방죽에 임한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신라 경덕왕은 이 지역이 1200년 후 새만금 방조제가 생긴다는 것을 미리 알았을까요?  

군산의 옛 지명 임피는 단군이래 가장 큰 토목공사인 새만금의 역사를 미리 알고 지은 듯 참으로 신기하기만 합니다.

군산은 근대문화유산의 보고라고 합니다. 모두들 일제 강점기 지어진 군산의 유물들을 보러 군산 시내로 향하지만, 정작 군산을 알려면 제일 먼저 군산의 가장 오래된 이름인 임피면부터 들러 군산의 역사부터 살펴보시길 추천합니다.

/전북도 블로그기자단 '전북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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