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전북장애인체육회 전문체육과장

"모든 길은 진리로 통한다!" 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만, 진리는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내가 아는 것이 진리라 믿고 있다.

진리는 이치라서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플라톤 이후 보편진리가 있다는 믿음에 의한 이분법적 사고가 세상의 많은 재앙을 잉태하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천동설, 지동설, 고전물리학, 양자역학 등 과학이라는 영역에서, 심지어 부부, 부모자식과의 관계와 자연도 변한다.

그러므로 변하는 것이야말로 진리와 이치이며 이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변하지 않는 것 중에서 약한 것은 공격당하기 쉽고, 인간 한 개인은 맹수 한 마리도 감당하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이다.

그래서 필요에 의해 무리를 짓고, 공동체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이곳에서의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지라 나보다 약한 것이라고 여겨지면 필요에 따라 공격하고 약탈하기 마련이다.

공동체로 살면서도 공동체의 힘이 약해지면 공격받기 쉽다는 것을 알기에, 우두머리는 개인보다는 우리를 중시하게 된다.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게 되면 우리 속에 '나'는 점점 없어지게 된다.

또 공동체의 우두머리는 알고 있다.

그 속에 각자의 '나'가 얼마나 존재하는지! '나'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을 속이는 것은 정말 쉽다.

우두머리는 '우리'를 표면적으로 내세우면서 '자기 욕심'을 조금씩 가지게 된다.

나중에 한참 지난 후에 '나'는 알게 되었다.

속았다는 것을!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알았다.

어리석었다는 것을!공동체도 알게 되었다.

다양한 '나'가 존재하지 않는 공동체는 약해지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공격받기 좋은 먹이감이 된다는 것을!큰 역사의 흐름에서 민중의 공동체 의식이 그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하지만, 공동체의 힘은 다양한 '나'가 존재하고, 그 공동체가 서로 다른 '나'를 존중하고 잘 이끌어줄 때 생명력은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과거 로마시대의 종말, 중세 스페인의 몰락등 이 좋은 사례이다.

우리는 근대 이후 이분법적이고, 메카시즘적인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대하는 교육에 익숙해져 있었다.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시급했던 우리 부모세대의 절박함을 활용하여 물질만능이 숭상시되고, 그 가치가 다른 어떤 것보다 높은 위치에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나'를 존중하는 것이 당연한 너그러운 사회가 되어야 한다.

편리함, 안락함에 익숙해져 그것을 위협하는 다른 것을 적대시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온전한 나만의 '나'가 필요할 때이다!!

/전북장애인체육회 김성호 전문체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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