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만의 정신
전주만의 정신
  • 전북중앙
  • 승인 2021.04.06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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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는 조선의 본향으로서 책임과 역할에 충실하였다.

왜냐하면 임진왜란 등 전쟁과 화마에도 조선실록과 어진의 원본을 충실히 지켜 조선의 모든 것을 굴곡과 가감없이 사실에 입각한 당시의 상황을 후손들이 제대로 알 수 있게 연구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정신이 살아있는 전주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여립은 전주에서 대동계(마을자치기구)를 조직하여 토론과 심신단련을 하면서 지인들과 교류를 하던 중 왜구들이 전주근교 손죽도까지 침입하자 전주부사는 정여립에게 왜구를 물리쳐 줄 것을 요청했다.

정여립은 전주부사의 요청을 받아 출병하여 왜구를 물리치고 돌아오자 전주를 중심으로 인근의 지역에서 인재들이 모여 규모가 확대되고 정여립의 거침없는 순수한 사상을 역모로 몰려 살던 집은 파소하였으며 죽도에서 자결하여 생을 마감하였으나 민초들이 마을의 대소사를 민초들의 의사로 결정하는 기구 대동계를 조직한 사상 였음에도 관리가 되지 않는 어정쩡한 정자가 지키고 있다.

곤지산 줄기의 초록바위는 ‘갈마읍수격’ 말이 물을 찾는 형상이며 전주천의 맑은 물에 비친 바위가 초록빛을 띠어 초록바위라 한 초록바위에서는 평등사회, 부패관리 척결과 종교의 자유를 갈망하던 역사의 현장이다.

동학농민혁명군 지도자 김개남 장군의 처형장이요, 전주천에서는 포로, 투항한 동학농민혁명군을 처형하여 몇 날, 몇 일 검붉은 핏물이 흘러간 전주천에서 수천 명의 전라도인들이 이름없이 사라진 동학농민혁명군들과 김개남 장군의 주장하였던 평등한 사회가 되어 있는가? 부패한 관리들은 사라졌는지가 꾸짖음이 들리지 않는가? 

왕조시대의 엄중함에도 항거하여 민관 협약으로 집강소 설치는 민초들의 용기있는 행동이었으며 민초들이 주인이 된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서학(천주교)신자를 체포하였는데 미성년자이고 전라감사가 배교를 종용하였음에도 서학의 믿음에 변함없어 성년이 된 후에 초록바위에서 참형 후 수장, 일설은 맑은 물에 수장을 하였다는 기록을 보면서 동학, 서학이 형장의 이슬로 생을 마감하면서도 소신을 지켜 낸 초록바위는 전주미래유산으로는 지정되어있으나 초라하기 짝이 없다, 곤지산의 흡월대에서 곤지명월을 감상하며 소신을 지켜 낸 이들의 생각을 다시금 기려보는 성역화가 절대 필요한데 언제나 성역화가 될까?

금재 최병심이 강학하던 옥류정사는 유학과 항일정신의 본거지요, 전주 선비의 정신에 왜인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전주 선비의 정신이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왜경들이 옥류정사가 항일정신의 본거지임을 간파하고 잠사를 짓겠다며 강제수용하자 선조들에게 몰려 받은 조상의 땅을 왜인들에게 줄 수 없다며 항거하자 옥류정사에 불을 지르며 퇴거를 시도하였으나,  죽을지언정 나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금재 최병심을 식솔들이 모시고 나와 목숨을 부지하였다.

 또한 왜인들은 철로를 개설하겠다며 한벽당을 이전하려고 하자 이전할 수 없다는 금재 최병심의 항거에 결국 한벽당을 철거하지 못하고 선형을 변경하여 개설함으로서 한벽청연(맑은물이 바위에 부딪치며 피어오르는 모습)이란 전주의 아름다운 십경 중 일경의 감상과 금재 최병심이 칩거하자 후학들과 지인들이 금재 최병심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면서 한 채, 한 채 한옥을 지으면서 금재 최병심을 기다렸고, 왜인들이 더 이상 전주 시내에 거주하는 걸 저지하겠다는 선비들의 뜻이 모아진 전주 한옥마을이 천만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한옥마을이라는 대한밀맹단 전주지역회장을 맡아 군자금전달과 후학들이 항일 운동에 참여토록 하는 강학과 독려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킬 옥류정사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하고 잡초만 우거진 옥류정사에서도 금재 최병심은NO아베, 사지도, 팔지도 않겠다는 우리의 다짐을 지켜보고 있다.

/박영진 한중문화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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