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연못을 끼고 있는 전주의 명소 덕진공원 앞에는 전주덕진예술회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전두환 신군부가 득세를 하던 1980년 반공교육의 장을 목적으로 개관되어 문민정부가 끝나는 1990년대 후반까지 덕진반공회관으로 불리다가 국민의 정부 출범과 함께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 당시 반공회관 시절에는 지금의 시립교향악단이 상주하고 있는 별관건물 자리에 북한에서 팠다는 휴전선 땅굴 모형을 본뜬 축소판 전시용 땅굴과 군 장갑차, 그리고 대포류의 중화기까지 함께 설치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사진 배경으로도 곧잘 쓰였던 곳이다.

또한 공연장이 있는 본관 1층에는 당시 안기부에서 파견된 직원이 상주하는 작은 사무실이 있었다.

예술회관으로 용도가 바뀌고 나서야 조잡한 군 전시물과 함께 안기부 사무실도 자취를 감췄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 후로도 말이 공연장이지 민방위 교육을 포함한 각종 교육, 심지어 정치인의 행사 등도 심심찮게 이뤄졌던 곳이다.

군사정권은 물론이고 문민정부 초기만 해도 여권을 내려면 별도의 안보교육(정확한 명칭은 모르지만) 같은 걸 받아야만 했다.

그 교육을 주관했던 주체가 안기부고 실제 교육은 1989년에 출범한 대표적 관변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이 담당했던 걸로 알고 있다.

실제로 내가 처음 여권을 만들었던 1990년에도 그런 교육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희한한 건 반공회관 시절부터 예술회관으로 명칭이 바뀐 후 지금까지 무려 40년 동안을 공연장 건물 3층은 한국자유총연맹 전라북도지회가 눈 하나 깜짝 않고 통채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곳은 예술과 전혀 무관한 관변단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 시립예술단을 위한 예비공간(의상실, 소품실)이나 또는 변변한 사무실 하나 없어 밖으로 내몰리는 지역의 예술단체가 상주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전주시립예술단이 지금과 같은 현대식 전용연습공간을 갖추기 전까지만 해도 교향악단을 제외한 국악단과 합창단은 조립식 가건물에서 꽤 오랫동안 생활했었다.

더우기 극단은 열악하기 짝이 없는 지하에서 한참을 생활했다.

당시 몇십명의 극단 단원들이 열악한 본관 지하실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도 불구하고 고작 직원 두세명이 상주하는 자유총연맹은 항상 넓은 3층을 독차지하고 있었을 뿐이다.

우여곡절 끝에 극단이 채광과 통풍이 되는 자유총연맹 바로 아래의 본관 2층으로 옮겨 약 십여년 간의 생활을 끝으로 마침내 4년 전 지난 2017년 10월에 지금과 같은 현대식 전용연습실에서 3개 예술단이 함께 상주하면서 조립식 가건물 시대를 마감할 수 있었다.

군사정권도 아니고 반공회관에서 예술회관으로 이름이 바뀐지 30년이 지났건만 문화예술공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관변단체가 요지부동의 알박기(!)를 하고 있는데도 누구 하나 선뜻 나서는 이가 없다.

문화예술의 수도를 자처하는 우리고장 전주의 현실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실을 알고 있는 시민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고 특히 지역의 문화예술관련 종사자들도 대부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몇해 전, 전주민예총 회장의 자격으로 이 문제에 대해 전주시장께 건의를 드린 바 있으나 아직까지 별다른 대답이 없는 상태다.

한 다리만 건너면 누구라도 알만한 지역의 정서와 선거만 돌아오면 표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의 특성상 오래된 관행이나 혹은 전임자들이 그저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방치해 온 사안에 대해 현직이 상반된 결정을 내린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이재명 경기지사는 과거 성남시장 재직시 성남시청에 상주해 오던 자유총연맹을 엄청난 저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정리를 한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결론은 지자체장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한국자유총연맹이 어떠한 단체인지는 이명박근혜 시절을 거치면서 그들의 놀라운 활약상(?)을 통해 익히 잘 알려진 바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전주덕진예술회관의 위상에 걸맞는 공간의 활용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 하겠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예술은 시민에게, 예술회관은 예술인에게!!!

/전주민예총 고양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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