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기호 '나이테의 무게'

내목숨의 파지쪼가리 같은 한소절 규정
아흔나이에도 고찰 인생의 뒤안길 정리
전작 이어 인생 관통하는 긴 여정 표현

나이테를 무게로 비교한다면 그 수치는 얼마나 될까.

사람은 살아온 만큼의 나이테를 가지게 된다.

나이테가 많을수록 그 흔적은 깊고 넓을 것이며, 범접하기 힘든 원숙미를 가지게 된다.

도내 원로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조기호 시인의 신작 ‘나이테의 무게’(인간과문학사)가 발간됐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 대해 ‘살다 남은 자투리 날짜를 한 장씩 뜯어내버리는 내 목숨의 파지 쪼가리 한 소절’로 규정한다.

인생이란 세월의 나이테가 굵어질수록 외로움과 슬픔이 한 자락씩 늘어나는 것이며, 벌써 아흔이 다가옴에도 아직도 시가 무엇인지 모르는 자신에 대한 푸념섞인 목소리다.

지난해에는 책을 네 권이나 내는 등 활발한 창작활동을 이어갔다.

‘무슨 청승이냐’이냐는 주위의 비아냥도 있었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끼적거리는 것밖에 없었다.

늘그막에 오라는 곳도 없고 갈 곳도 없는 신세가 됐다.

인생은 하늘의 제트기가 아니라 우주선보다 더 빨리 지나갔다.

세월의 덧없음을 탓할 수 있는 여유조차 없는 생을 걸어왔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굶주림과 참혹한 한국전쟁을 거치고 숱한 정변과 혼란 속에서 외로움이란 감정은 그저 사치에 불과했다.

지난해 발간한 첫 장편소설 ‘색’ 1, 2권은 시인의 자서전 경험을 더하면서 시와 소설의 혼합양식으로 한국 사회속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색의 의미를 반추하기도 했다.

여기에 이어진 시집 ‘참 지랄같은 날’은 한국전쟁 등을 겪은 시인의 인생을 비유하면서 소설 ‘색’과 일맥상통한 묘한 공감을 얻어내기도 했다.

이번 신간은 ‘색’과 같은 이념과 사상 등은 배제됐지만 시인의 인생을 관통했던 공통된 주류를 유지한 채 인생의 의미와 숨가쁘게 보냈던 길고 길었던 여정을 마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제목 ‘나이테의 무게’에서도 시인의 이런 뜻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시집은 마치 한 인생의 마무리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힘찬 발걸음보다는 그동안 걸어왔던 발걸음을 추스르는 모양새다.

아흔이 내일 모레인 시인에게 있어 이제 인생은 새로운 희망보다는 하나의 결실이요, 하나의 완성체로서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시인은 ‘아직도 시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겸손해 하지만 긴 여운을 통해 독자의 마음을 투영하는 것이라면 시인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셈이다.

시인은 “그렇잖아도 세상사는 게 어렵고 팍팍한 인간에게 치유와 안식을 안겨주는 역할이 시의 생명이라는 데 나처럼 풍신 난 글마저 어렵게 써서 독자들에게 혼란을 주면 쓰겠는가”라며 “헐렁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수태되어 탄생한 시라는 게 몇 걸음이나 제대로 뗄 수 있을까 모르되 이승 뜨기 전 빈차리 같은 내 파지들을 그래도 바깥바람이나 쐬어 보라고 쫓아 내보낸다”고 말했다.

조기호 시인은 문예가족을 비롯해 전주풍물시인동인, 전주문인협회 3~4대 회장을 역임했다.

시집으로는 ‘저 꽃잎에 흐르는 바람아’, ‘바람 가슴에 핀 노래’, ‘산에서는 산이 자라나고’, ‘가을 중모리’, ‘새야 새야 개땅새야’, ‘노을꽃보다 더 고운 당신’, ‘별 하나 떨어져 새가 되고’, ‘하현달 지듯 살며시 간 사람’, ‘묵화 치는 새’, ‘겨울 수심가’, ‘백제의 미소’, ‘건지산네 유월’,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꿈꾸었네’, ‘아리운 이야기’, ‘신화’, ‘헛소리’, ‘그 긴 여름의 이명과 귀머거리’, ‘전주성’, ‘민들레 가시내야’, ‘이별백신’, 장편소설 ‘색’ 1권, 2권 등이 있다.

목정문화상, 후광문학상, 전북예술상, 시인정신상, 표현문학상, 전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조석창기자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