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문학가들의 고독감을 말하다

굴원, 아첨에 의해 권력서 밀려남
송옥, 부랑의 삶 사는 고독 등 담겨

25년 전 우연히 보았습니다.

작고한 강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윤수영'교수가 타이페이 유학시절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크게 감명받고.

세 번으로 나누어 복사하여 아주 어렵게 번역했다고 서문에 적혀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에 정보가 많지 않아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당시 이루 말할 수 없이 감동하여서, 정리해 올리려 25년 전의 희미한 기억을 되살리고자 최근 다시 읽었습니다.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에서 좋은 책을 다시 읽는 행위를 'reread'라고 하더군요.

'오에 겐자부로'는 再讀을 그렇게 표현하네요.

그런데 웹을 뒤져보니 당시엔 없던 많은 정보가 넘쳐났습니다.

책의 일본어판 원본만 해도 멀리 타이뻬이까지 갈 것도 없이 고려대학교 도서관에도 있더군요.

저자인 '시바 로쿠로오(斯波六郞, 사파육랑,1894~1959)' 히로시마문리대교수에 대한 정보도 조금은 알 수 있었습니다.

책은 은자(隱者), 시경, '굴원', '송옥', '항우', '완적', '유곤', '좌사', '포조', '원찬', '육기(陸機)', '왕희지', '도연명', '두보', '이백' 등의 시가를 분석했습니다.

많은 방대한 문헌을 모두 읽었으니 저자의 필생의 작업이 아니었을까하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일본의 하이쿠와 방랑 문학을 대표 시인 '바쇼'와 더불어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만 일본의 싯구는 같은 감정을 일으키는 시어를 연속 사용하는 특징이 있으나, 중국은 서로 음운학적 댓구를 만드는 것으로는 몰라도 내용적으로는 끝까지 읽지 않으면 진의를 파악하기 어려운 고도의 은유와 상징을 사용하는 점이 다릅니다.

일본의 수준이 낮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고 나름의 미학이 있습니다.

기원전 전국시대의 '굴원'은 초나라 조정에서 다수에 의해 밀려난 충신(본인이 그렇다 하니 믿어야죠.)이 억울함과 울분을 토로하는 것입니다.

이(離)란 이(罹) 즉 근심 罹로서 병에 걸리다는 의미이고 소(騷)는 憂, 즉 근심하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당시에는 철학이나 지배 종교가 없는 상태여서 굴원의 고독감의 원인이 아첨에 의해 권력에서 밀려난 것입니다.

고독감을 처음 보게되는 시가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송옥'은 '굴원'보다 약간 늦은 거의 동시대의 인물이라 합니다.

그 역시 타국에서 부랑의 삶을 살아가는 실의에 젖어 있는 자신을 연민하는 시를 남겼습니다.

'시바'교수의 견해는 괴독(塊獨)이라는, 흔치 않은 표현에 주목하는데 고독의 덩어리라는 뜻이 아니고 塊란 홀로 멍하니 넋을 잃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그외에 처음으로 자련(自憐), 자비(自悲) 등을 써서 고독한 자기 자신을 또 하나의 자신이 바라본다고 처음으로 서술하였다 합니다.

역발산 기개세와 사면초가의 '항우'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알려져 있으나 자신의 실패가 시운(時運)의 탓으로 한탄함이 중심이고 그것에 의하여 체념하려는 심정이 나타납니다.

이때의 時는 시간적인 의미가 아니라 섭리적인 성격을나타냅니다.

3~5세기 사이의 위진(魏晉) 시대에서는 이전 시대와 성격을 달리하는 고독감이 나타나는데, 본인이 주위를 거부하는 데서 기인하는 고독감이 나타납니다.

'완적(阮籍)'이 대표적인데 험난한 국가나 사회에서 사는 것이 마치 불안한 그물에 조여지는 듯한 느낌이어서, 가능한 주위를 스스로 거부하고 자신만을 의지하며 살라갈 수밖에 없게 되어 생기는 고독감을 보입니다.

그야말로 천애고아와도 같은 어쩔 수 없는 쓸쓸함과 치미는 분노와 하염없는 수심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완적'의 특징으로 방일광달(放逸曠達)함을 꼽는데 항상 예법을 무시하는 언동을 하였고 이는 그 시대 상황에 반항하고자 하는 심정이 굴절되어 나타났다고 합니다.

노장 사상이 크게 유행하던 시대적 상황에서 그가 대표적 인물이라 하겠습니다.

같은 시대의 '유곤(劉琨)'은 가정이 파탄나고 나라가 망하는 恨을 슬퍼하고 분노하는 감정으로부터 기인한 고독감을 보입니다.

이 시절은 淸談이 유행했는데 지식인 계급 대다수가 노장 사상에 심취해 있었고, 그 영향으로 실제적 업무를 팽개쳐두고 규범을 무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합니다.

그러나 '완적' 등의 방일광달하는 노자장자의 주장에 헛되고 부질 없고 허망한 것임을 자각합니다.

즉 전란과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유곤' 자신에게 노자장자가 허위로만 생각되어 집니다.

이의 사상 풍조가 '왕희지'에 계승되고 이 시절 이후부터 급격히 노장 사상이 쇠퇴했다 합니다.

쓸모가 없다는 자각이죠.

동시대의 '좌사(左思)'는 이름처럼 좌파 진보측(제 조크입니다.--;;;)인지 몰라도 사회 신분 계층의 불만에 의한 고독감을 나타냅니다.

귀족, 세족의 자제만이 영달하는 상황을 슬퍼합니다.

문벌중시의 계급차별을 슬퍼하고 한탄합니다.

150년 뒤의 '포조'도 유사한 경우의 고독감을 표출합니다.

고차직(孤且直)이라는, 고직(孤直)이 아니라 외로울 고와 곧을 직을 동등하게 사용하여, 자신이 대체로 개성을 숨김없이 표출하여 융통성이 없고 비타협적인 성격을 가졌다고 표현합니다.

지켜나가려는 것이므로 지조와 같은 추상적인 그 무엇을 지키는 자신의 성격을 돌아보고 체념합니다.

'원찬(袁粲)'은 <묘덕선생전>이라는 불후의 산문을 남겼습니다.

모두 미치게 되는 광천(狂泉)이란 샘물로 온 국민이 먹는 나라에서, 혼자만 마실 수 있는 우물을 가진 국왕이 미치지 않은 것을 보고 신하들을 포함 온 국민이 그를 치료하겠다고 야단을 떱니다.

견디다 못한 왕마저 광천을 마시고 미치게 되자 온 국민이 모두 기뻐한다는 내용의 탁월한 산문을 남깁니다.

그는 주위와 조화를 이룰 수 없는 자신을 의식하고 거기서 고독을 느끼는 고독감을 표출했습니다.

그의 고독감은 스스로를 높이 여기는 고독감으로, 고고한 자부심이라 하겠습니다.

'육기(陸機)'는 한자가 다른 동명이인이 많아서 주의해야 합니다.

그는 영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떠도는 인간을 바라보고 인생무상을 슬퍼합니다.

이는 '왕희지'와 조금 다른데 세월의 흐름을 슬퍼하며 고독감을 표출합니다.

현재까지의 역사상 체관(諦觀)을 묘사한 최초의 작품이라 합니다.

엄청난 철학적 진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희지'는 명필로서만 알았었는데 당시의 대문장가이기도 하였다는 군요.

그는 무한히 넓은 우주 속에서 표류하는 인간을 바라보며, 절실하게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 특징을 보입니다.

그는 직접 체득한 노장사상의 정신 생활을 하고 노장사상마저 초극한 느낌까지 주지만, 오히려 이 초극하는 심경으로부터 인생에 대한 슬픔이 용솟음쳐 나옵니다.

그의 슬픔은 항상 인생문제로서의 생사를 고뇌하는 슬픔의 형태를 보입니다.

'유곤'은 차별의 세계를 초월한 노장의 사상이 차별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겨나는 인간의절박한 슬픔을 해결하기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하는 사고방식, 즉 국가가 멸망하고집안이 파탄에 이르게 되며, 친한 벗들이 재난을 당하는 것을 두렵고 놀라운 심정으로 지켜보고 비로소 노장의 주장이 헛되고 부질없다고 느끼며 흥망/생사/이합 등의 인간 생활에 대한 무상함으로부터 일어나는 슬픔과 파괴로부터 일어나는 격분에 의한 주로 격정적인 고독감이었습니다.

그러나 '왕희지'는 흥망/생사/이합을 한탄할 수조차 없는 근원적인 것, 곧 인간의 생사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심사(深思)적인 고뇌여서 훨씬 집요한 사고를 보이는 차이가 있습니다.

사고의 진보!!!!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도연명'이 얼마나 위대한지 저도 잘 몰랐습니다.

제가 '斯波'교수에게 큰 가르침을 받은 셈입니다.

어쩌면 당나라의 위대한 모든 시인들을 다 견주어도 '도연명'이 더 위대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천성이 한적함을 즐겼고 권모술수와 허위가 난무하던 당시의 시대상을 혐오하여 인생무상을 절절히 느꼈습니다.

요즘 여류 시인 중에 호평할 수 있는 '황인숙'님의 시어 중에 하는 일이 "젖은 그림자 말리기" 라는 웃음이 나는 기발한 구절이 있는데, 꼼꼼히 생각해보자면 그림자라는 자신의 분신이 항상 젖어있다는 것은 많은 슬픔과 허무가 느껴지는 눈물나는 일입니다.

'도연명'은 많은 시어에서 벗도 없이 그림자를 마주 대하고 술을 마시는 등의 서글픈 구절이 다반사로 나옵니다.

처연한 상황에 감정이입하자면 슬픔이 본질이 전해져와 뭉클해집니다.

더더욱 그의 고독감이 추상적이지 않고 매우 구체적이고 체험적인 이유에서 비롯되어서 더한 절망이 느껴집니다.

가히 중국 시가에서 가장 절절한 고독감이 느껴지는데, 다만 아직은 정욕이라든가의 본능을 표출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을 빼고는 가장 서정적입니다.

'두보'에 대해서 저자는 전란의 상황에서 느껴지는 절절한 설움과 외로움을 토로한다고 정리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자는 후당 때의 '백거이'는 자신은 부유한데 가난한 이들을 바라보며 애처로와 하는데 비해, '두보'는 자신도 빈한하고 어려운데 더 힘든 이들을 연민하는 따뜻함을 보인다고 평가합니다.

'이백'은 짧은 중앙 관직 생활 이후 야인으로 지내다 안록산의 난 등으로 어지러울 때 왕자들의 권력 다툼에 휘말려 고초를 겪는데, 어쩌면 상당수 오만하다고 할 그의 성정에 의한 고립으로 인한 고독감을 표출합니다.

다른 시인들과 많은 차이가 있고, 그가 워낙 지명도가 있어 짚은 것 같습니다.

핵심만 요약했어도 분량이 많습니다.

한 학자가 해낸 필생의 작업이 아닌 가 생각됩니다.

처음 읽을 당시엔 잘 몰랐던 '맹호연'과 '이하'가 빠져 있는 점이 많이 아쉬운데 작고한지 60년이 넘은 이에게 뭐랄 수 없죠.

'맹호연'은 번번히 과거에 낙방했고 '이하'는 얼토당토 않은 일로 아예 시험칠 기회마저 봉쇄되었는데, 관직에 나가지 못해서 뺀 것인지, 각각의 사례별 분류에서 중복되어 뺀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동문출판사에서 안 팔렸는지 절판했군요.

다행히 알라딘중고서점에서 중고가가 싸게 나와있으니 얼른 구입해보셔요.

후회 안하실 겁니다.

/박정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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