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는 전라감영, 경기전, 조경묘, 풍남문, 풍패지관, 전주향교 등 조선시대의 문화유산이 남겨져 있다.

그래서 전주는 ‘풍패지향’ 내지는 ‘조선왕조의 발상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곳, 전주는 후백제의 도읍지였다.

후백제는 관부와 정치체계를 갖추고 군사력을 정비함은 물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고 중국과 일본에 사진을 파견하는 등 외교를 통한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힘썼다.



□ 왜 후백제인가

892년 견훤은 무진주(현재의 광주)에서 터를 잡고 큰 뜻을 세운다.

그리고 900년에는 완산(지금의 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936년 고려에 의해 멸망하기 전까지 삼국통일의 꿈을 펼친다.

후백제는 거의 반세기에 걸쳐 한반도 서남부 지역을 무대로 한 강성한 국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후백제에 대한 인식은 빈약하다.

후백제의 역사는 45년, 반세기에 불과하지만 중세사회로 넘어가는 동인(動因)을 마련했다.

고유의 통치이념과 체제,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고 중국 오월국과 일본에도 사신을 파견하는 등 활발한 국제교류를 통해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힘썼다.

그런데 후백제를 신라와 고려 사이 과도기적 국가로만 인식한다.

그리고 그 역사· 문화의 실체규명 및 보존·활용을 위한 조치는 전무하다.

중국의 최초 통일국가 진나라(BC 221~206), 당나라 번성의 토대가 된 수나라(581~619), 그리고 일제강점기(1910~1945) 등 역사에서 보면 그 기간에 비해 후대에 미친 영향은 켰다.

후백제가 그 후대에 미친 영향 역시 작지 않았음은 자명하고, 우리가 후백제를 알아야하는 이유이다.



□ 정부의 역사문화권에 빠진 “후백제”

오는 6월 10일부터는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된다.

하지만 이 법에서 고구려·백제·신라·가야·마한·탐라 등 6개 지역으로 설정된 역사문화권 어디에도 후백제는 없다.

이 법은 고대사에서 통치체제가 분명히 실재했던 후백제를 포함한 후삼국기 국가들은 배제되어 있다.

역사적 정체성을 의식하며 살고 있는 지역사람으로서는 문화격차를 느끼고,  소외감을 넘어 패배의식으로 자리 잡아 새로운 성장 동력 추진의 방해요소가 되고 있다.

특히 전주는 전라북도의 중심지이지만 백제문화는 익산, 가야문화는 남원․장수․진안, 해양문화는 군산 등으로 분리되어 있어 문화의 중책도시로서의 역할은 미미한 실정이다.

따라서 전라북도뿐만 아니라 한때 전라권역과 충청권역, 영남서부권역 전체를 아우르던 문화의 중심지로 부각시킬 역사로서 후백제가 논의되어야 한다.

특히, 후백제 문화유산은 역사적 시대구분법에 따라 분류되지 않고 모호한 ‘나말여초’라는 용어로 역사를 정리한다.

중국 당․송 교체기의 오대(五代)는 25사(二五史)의 하나로 자리매김 되어있지 않은가! 우리 역사에서 후삼국시대, 그 중에서도 후백제의 역사는 중요하게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 역사적 공감대를 통한 통합의 새 역사를 쓴다

918년 견훤은 왕건에게 서신을 보내면서 “내가 바라는 것은 평양성 문루에 활을 걸어 놓고 말에게 대동강의 물을 마시게 하는 것이다”라고 밝히면서 고구려 영역을 포함한 후삼국 통합의 의지를 천명한다.

같은 취지에서 지난 6월 1일 전라감영에서 7개 지자체가 후백제와 견훤을 기반으로 통합의 손을 맞잡았다.

후백제 역사성과 가치 제고, 후백제 문화유산의 규명과 활용 확대를 위함이다.

여기에 고도 및 가야문화권에 비해 소외된 현실을 국민과 정부, 정치권의 관심을 끌어내 역사 격차 해소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마중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지자체별로 후백제 관련 사업을 추진하였지만 인식 확산 및 예산 확보가 어려워 실질적 성과 도출에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후백제문화권 지방정부협의회를 통해 충청과 영남, 호남 간 지역감정 해소하고 공존과 상생의 국민 대통합 실현 및 동반자적 공동 발전방안을 모색을 위한 시대적 요구인 셈이다.

이번 업무협약을 계기로 우리 역사문화의 중량감 있는 역사콘텐츠를 개발하고 성장시킬 것이며, 비익조처럼 전주의 역사와 정신을 떠받치는 커다란 새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최락기 전주시 문화관광체육국장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