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다니던 어린 시절에 자신과 함께 놀이할 친구를 모으기 위해 했던 행위가 있다.

집게손가락을 높이 쳐들고 “숨바꼭질할 사람 여기 붙어라”라고 외치면 함께할 아이들이 집게손가락을 잡는다.

그리고 한 팀이 되어 놀이를 시작하고 한참 놀이가 무르익으면 다른 아이들이 같이 놀기를 원하지만 내 편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외면하게 된다.

그러면 참여하지 못한 아이는 놀이가 진행되는 동안 따돌림이 되어 주변을 서성거린다.

대한민국이 국토로 보면 그렇게 큰 나라가 되지 못한다.

남한 국토만으로 본다면 208개국에서 111번째 국토를 가진 작은 나라에 불과하다.

인구로 본다면 세계에서 23번째로 높은 인구밀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2020년 10월 발표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은 세계에서 10위를 차지하고 세계 10대 수출국이 되어 자타공인 경제 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2021년 국가별 삶의 질에 따른 행복한 나라 순위는 42위에 랭크되어 있다.

행복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 많고 단순한 사회적 수치로 말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지만 전혀 무시할 수도 없다.

상대가 바라볼 때 전혀 행복할 수 없을 거라고 여기는 사람인데도 본인은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반면에 행복한 사람일 거라고 여기는 사람인데 본인은 행복하지 않다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한 때 ‘헬 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지옥을 의미하는 ‘헬(hell)’과 우리나라를 의미하는 ‘조선’을 결합하여 만든 말로, 열심히 노력해도 살기가 어려운 한국 사회를 부정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에서 다시 그 말이 회자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과연 바람직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이념에 의해 남북으로 갈라져 반세기를 넘게 지내오는 불행한 현실 가운데 있다.

그리고 아무리 우리는 한 민족이라고 외쳐도 남북은 두 개의 국가로 존재하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지금도 평화적 관계가 아닌 전쟁을 휴전하고 있고 적대적 관계로 대치되고 있다.

상호 상대편을 향해 군대가 조직되어 경계하고 있다.

남한이 그동안 세계사에 남을 만큼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남북으로 나뉘어 불행한 역사 가운데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남북의 갈등으로도 부족해서 지금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영호남의 지역갈등으로 인해 국가가 분열되어 반목하는 형태를 가졌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이러한 갈등을 부추기고 이용하기도 하였다.

지금에 이르러는 지역갈등을 뛰어넘는 보수와 진보의 극한 갈등으로 인해 사회 모든 곳에서 극한 대립적 관계를 이루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으로 같은 단체 안에서 교회 안에서도 가족 안에서도 대립적 관계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정치인들은 이러한 갈등의 관계를 이용하고 있고 부추기는 것으로 인해 편 가르기가 이루어져 있다.

지난 6월 2일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서울 여의도 국회 당 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국민소통 민심경청 프로젝트’ 대국민 보고회에서 ‘조국 사태’에 대해 “좋은 대학 나와 좋은 지위·인맥으로 서로 인턴 시켜주고, 품앗이하듯 스펙 쌓기 해주는 것은 딱히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런 시스템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수많은 청년에게 좌절과 실망을 주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과 청년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점을 다시 한 번 사과 드린다”며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고 결과가 정의로운 나라가 되도록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바로 세우겠다”고 했다.

그러나 편 가르기는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고 결과가 정의로운 나라”를 이루기란 어렵다.

자신의 편에 있는 자들에게 치우치는 것이 인지상정이어서 그렇게 이루는 것이 곧 평등이고 공정이고 정의로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속담에 있듯이 “손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과 “가재는 게 편”이라는 말은 바로 그러한 공식을 보여주는 말이다.

인터넷 뉴스의 댓글을 보면 갈등의 극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뉴스의 내용에 실린 사건의 잘잘못에 관심을 가지기보다 신문의 기사가 내 편에 서 있는지 아니면 상대편에 서 있는지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일부 댓글의 수준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육두문자를 동원하여 공격성 글을 올리고 있다.

일부 극렬한 지지자들의 특정한 정치인에게 좌표를 찍어 이른바 ‘문자폭탄’을 보내는 현상을 지지하고 권장하는 정치인도 있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강성 지지자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저는 적극적으로 의사 표시하는 지지자들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런 적극적인 의사 표시는 권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사청문회가 개인의 국정 운영능력에 대한 역량을 살펴보기보다는 인신공격적 자리가 된 지는 어제오늘이 아닌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일이다.

그러면서 서로가 이러한 형태의 인사청문회는 변해야 한다고 한다.

SNS는 적극적인 자기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장치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공론화 도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도구가 한 개인이나 사건에 집중공격을 통해 당사자에게 불행한 사건을 만들게 된다.

지나친 자기표현으로 인해 허구적인 일들이 사실처럼 왜곡되어 불행한 사태를 만들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질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 내에서 극단적 편 가르기로 인해 왕따된 직원의 죽음 역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있지만 누구의 잘못인가를 가려내기조차 쉽지 않다.

그 또한 민주주의 시대의 산물로 자기표현의 한 방법이 되는 것이다.

지금 정치인들의 편 가르기를 부추기는 일들은 없어져야 하며 문자폭탄 같은 행위는 음식의 맛을 살리는 양념 같은 존재가 아닌 폭력임을 인식해야 한다.

/전주남부교회 강태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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