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진구청이 자리한 진북동은 오랜 구도심으로 유독 골목길이 많다.

오밀조밀 미로 같은 골목마다 사람들의 집도 소리도 향기도 다르며, 비 오는 날엔 우수관에서 쏟아지는 물줄기가 시원하고 뜨거운 날엔 볕에 말라가는 콘크리트 냄새도 정겹다.

모든 것이 사람 사는 냄새다.

가끔은 주변 골목길을 걸으며 오래전 그 길을 걸어간 이들을 생각한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고 어르신들의 모임터가 되고, 때론 어머니들이 모여 김장을 하거나 함께 눈을 치우거나 공동의 작업도 거뜬히 해내던 길이다.

광장(agora)처럼 거창한 공간은 아니지만 지역 공동체의 가장 세분화된 소통의 중심이었던 셈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 좁은 골목길을‘고샅’이라고 하여 외부로 통하는 길‘한길’과 구분하였다.

그리하여‘고샅’은 더 사적인 영역이 되고‘고샅’내부의 이웃과는 ‘이웃사촌’이라 불릴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친밀함은 골목길의 개성을 만들고 특유의 향기를 만들고 매력을 만든다.

그리고 이 골목길들이 모여 마을을 만들고, 나아가서는 도시가 된다.

골목 하나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아쉽게도, 그 골목들이 사라져간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계획도시의 반듯한 도로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정다웠던 골목길은 재개발 등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남은 골목길에도 사람의 목소리가 줄었다.

구도심에서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고, 그나마 남은 주민들은 태반이 노년층이다.

보행 보조차를 밀고 가시는 어르신들이 나누는 인사나마 골목길 인정의 소소한 흔적으로 남은 것이다.

최근 주목할 만한 점은, 쇠퇴일로를 걷는 듯한 골목길에 대한 관심과 향수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먹자골목 같은 상업지구야 그렇다 치고, 고요한 오랜 주택가의 한복판에도 소규모의 식당이나 개성 있는 카페가 슬그머니 자리하더니 꽤 이목을 끄는 곳이 많다.

덕진구청 인근에도 브랜드나 규모에 관계 없이 골목길에 어울리는 개성 있는 상가들이 하나둘 생겨, 적막했던 골목길의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이러한 골목길의 특징은, 거주민을 배려하면서도 외부인들의 방문도 불편하지 않도록 변모한다는 점이다.

주민들을 위해 담배나 소음은 주의해달라는 상가들의 조심스러움이나, 상가를 위해 골목 주차공간 등을 공유해주는 주민들의 협력이, 그 골목의 오랜 가치를 재발굴하고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도심재생의 핵심 사업이 골목길 등에 집중되어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낙후된 골목길을 정비하여 주거환경이 개선되고 창업과 일자리 창출을 통해 주민에게도 이로워지는 상생의 개발정책이다.

우리 전주시도 서노송 예술촌 프로젝트, 서서학동 예술인 마을 등 골목길 재생사업을 통해 그 마을의 과거와 미래까지도 변화시키는 놀라운 혁신을 이루어왔다.

골목길은 이야기가 있고, 미래가 있다.

우리 도시에 가지가지 뻗어있는 많은 골목길들이 지나간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구도심의 특성상 때때로 골목길의 쓰레기나 배수, 장마철의 침수 등 어려움도 분명 있다.

덕진구는 쓰레기 분리수거 및 문전 배출 정착과 단계별 오수관거 정비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최근 장마를 대비해서 주요 상습 침수지역 인근 집수정 알림표지를 설치하는 등 시민불편 최소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꾸준한 환경개선 사업과 더불어, 골목길의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발굴하고 공동체 문화 거점 공간 마련 및 상인과 주민과의 소통의 창구 마련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발굴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따뜻한 소통이 더 그리워지는 때, 골목길의 아름다운 변신이 전주의 새로운 활력이 되기를 희망한다.

/장변호 덕진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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