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빈 '술, 질병, 전쟁 미생물이 만든 역사'

술-미완성교향곡-페니실린-전쟁 등
인류의 삶을 바꿔 놓은 미생물 이야기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미생물 하나.

너무 작아 인지하지도 못했던 존재가 인류의 삶을 바꾸어놓은 일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 가공할 위력을 우리는 바로 지금도 느끼고 있다.

마스크를 쓰는 게 옷을 입는 것처럼 당연해지고, 해외여행을 비롯해 인류의 이동이 멈췄다.

우리가 사랑하는 술,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질병, 그 질병을 치료한 약, 세계의 패권을 바꾼 전쟁.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보이지 않는 설계자, 미생물이 존재했다.

미생물은 인간에게 큰 즐거움과 위안을 주었다.

하루의 근심을 털어낼 수 있게 해주는 술 한잔은 미생물의 선물이다.

수렵 채집에서 농경 정착 생활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나투프 사람들이 아껴둔 보리죽에 야생 효모가 몰래 들어가지 않았다면 인류가 술맛을 알고 주조를 하는 데는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 모른다.

미생물은 예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만약 슈베르트가 매독균에 감염되지 않았다면 ‘미완성 교향곡’을 완성하고 훌륭한 곡을 더 많이 작곡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고통이 더욱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만들어내게 했다는 주장도 있다.

미생물은 인간에게 끔찍한 질병도 주었지만 그 병을 이겨낼 위대한 약도 선물했다.

플레밍의 실험실에 푸른곰팡이 페니실륨이 우연히 날아들지 않았다면 수많은 생명을 구해낸 페니실린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항생제는 악인의 생명 또한 공평하게 구해내며 역사를 또 한 번 바꿨다.

바로 발키리 작전으로 죽을 위기에 처한 히틀러의 목숨이다.

그때 페니실린이 없었다면 히틀러의 죽음으로 제2차 세계대전은 아주 다르게 종결되었을 것이다.

이 밖에도 미생물이 세계의 권력 지도를 바꾼 일은 수없이 많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 군함에 ‘1918년 인플루엔자’가 무임승차하지 않았다면 유럽 연합군은 승기를 잡지 못했을 수도 있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 육군의 3분의 1이 장티푸스균에 당하지 않았다면 전쟁의 승리자는 스파르타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세계의 문명을 바꾼 그리스 문명은 우리가 아는 모습과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미생물은 때로는 인류의 가장 큰 조력자가 되어, 또 때로는 무서운 적이 되어 세계사를 움직였다.

미생물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세계사는 새롭고 신비롭게 다가올 것이다.

  인간과 미생물의 전쟁과 화합, 공존의 역사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간은 끝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싸우고 또 싸웠다.

전쟁의 열악한 환경과 위생상태 속에서 미생물은 언제나 어부지리를 얻었고, 때로는 전쟁의 향배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러한 미생물의 영향력을 19세기 후반에 와서야 마침내 알아챈 인류는 미생물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그 시절 미생물은 생명체이기 전에 병원체로 다가왔다.

미생물은 인간과 함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목숨을 노리는 악마 같은 존재였고 박멸의 대상이었다.

미생물학은 미생물과의 전쟁을 통해 발전해왔다.

이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고, 안타깝지만 인류가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미생물을 우리의 적으로만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사실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은 소수고, 대다수의 미생물은 우리가 삶을 이어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미생물이 없어진다면 우리는 더 이상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없고 머지않아 우리가 버린 쓰레기 더미에 묻혀버리고 말 것이다.

미생물은 역사 속에서 음식과 약, 자원을 제공하며 끊임없이 인간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우리는 미생물과의 전쟁에만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지나치기 쉬운 이런 미담들 또한 제대로 살펴보아야 한다.

그 속에서 인간과 미생물의 뗄 수 없는 관계를 돌아보고 공존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미생물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으니 말이다.

저자 김응빈은 연세대학교 시스템생물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럿거스대학교에서 환경미생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식품의약국(US FDA) 국립 독성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미생물학자로 살아온 30여 년 동안 독성화합물 분해 미생물과 장내 미생물을 연구하며 논문 70여 편을 저명한 학술지에 게재했다.

현재 미국 미생물학회(American Society for Microbiology) 학술지 편집위원이자 한국 환경생물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5년 연세대학교 최우수 강의 교수상을 받았으며, 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 케이무크(K-MOOC)에 ‘활과 리라: 생물학과 철학의 접점 찾기’ 강의를 개설해 생물학과 삶을 연계하는 통찰력 있는 강의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생물 변호사’를 자처하며 여러 방송과 대중 강연, 온라인 매체를 통해 우리가 몰랐던 미생물의 세계를 쉽고 유익하게 전하고 있다.

현재 유튜브 개인 채널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를 운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로 날개 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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