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폐-공가 매입 시작
문화거점공간 프로젝트
'안녕, 선미' 8개월간 진행
노송늬우스박물관-다시봄
뜻밖의미술관 등 자리잡아
성매매업소 감소 범죄예방
지속발전대상 대통령상
지속발전교육 공식인증 등
'물결서사' 예술책방 명소
업소건물 현장시청 들어서
인권유린-폭력 기억 보존
도시의역사 반성의미 담겨
선미촌 2.0 프로젝트 추진

전주시청 인근에 지난 반세기 동안 보이지 않는 산맥처럼 도시를 가로막던 장벽이었던 성매매집결지가 있다.

선미촌이라고 불렸던 이곳은 전주시가 지난 몇 년 동안 성매매집결지 정비사업으로는 이례적으로 공권력을 동원한 물리적 방식이 아닌 점진적 문화재생사업을 펼치면서 문화와 예술의 공간인 서노송예술촌으로 재탄생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85곳에 달했던 성매매업소도 이제는 거의 사라졌고, 성매매업소로 활용되던 공간은 시민들을 위한 문화예술공간으로 변신했다.
/편집자주  


 

▲성매매집결지를 밀어낸 문화예술

선미촌의 변화는 전주시가 여성인권센터 등 여성인권시민단체와 머리를 맞대고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지난 2016년 거점공간 확보를 위해 폐·공가를 매입하면서 시작됐다.

전주시와 전주문화재단은 같은 해 선미촌 내 폐공가 부지에서 첫 번째 문화예술 행사인 ‘눈동자 넓이의 구멍으로 볼 수 있는 것’을 주제로 한 설치미술가 소보람 씨의 작품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는 작지만 성매매집결지를 문화재생을 통해 열린 공간으로 바꾸기 위한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됐다.

전주시는 이듬해에는 성매매집결지인 선미촌의 어둡고 침침한 공간에 녹지와 휴식공간 등을 갖춘 시티가든 2곳을 조성했다.

각각 기억의 공간·인권의 공간으로 명명된 이곳은 성매매집결지가 위치한 탓에 일반시민들의 발길이 찾기 어려웠던 이곳을 누구나 찾아 쉬면서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취지에서 시작됐다.

이후 동네 곳곳에서 마을잔치가 열리고, 문화예술 공연이 펼쳐지게 됐다.

옛 성매매업소 건물들은 점차 지역 예술가들의 창작예술공간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선미촌을 창작예술공간으로 전환하고 문화적 활력을 불어넣는 핵심문화거점공간 조성을 위한 프로젝트 ‘안녕, 선미’가 약 8개월간 진행된 것.

‘안녕, 선미’는 대중순수예술가 3인의 선미촌 100일 살아보기인 ‘100日의 움직임’, 라운드테이블 파티인 ‘너를 우리집에 초대해’, 전시 발표 형태의 ‘ 100日의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 등 3개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펼쳐졌다.

선미촌 한복판으로 들어간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성매매집결지에서 문화예술마을인 서노송예술촌으로의 변화를 가속화하는데 앞장섰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8년 12월 선미촌 한가운데 위치한 옛 성매매업소와 낡은 가옥을 사들여 문을 연 예술책방 ‘물결서사’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서노송예술촌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전주에서 활동 중인 시인, 화가, 성악가, 사진작가, 영상작가 등 일곱 명의 예술가로 이뤄진 프로젝트 팀 ‘아티스트 랩 물왕멀’이 운영을 맡은 물결서사는 문화·예술의 저력을 바탕으로 어두웠던 선미촌을 활력 넘치는 공간으로 변화시켜 왔다.

이후 옛 성매매업소 건물에는 서노송예술촌 프로젝트를 전담하는 현장시청이 들어갔으며, 첫 번째 지역거점 소통협력공간인 ‘성평등전주’, 노송동 마을사박물관인 ‘노송늬우스박물관’, 폐자원을 가치 있는 상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전주시새활용센터 다시봄’, 예술작품 전시관인 ‘뜻밖의 미술관’ 등이 차례로 자리를 잡았다.

올 연말이면 서노송예술촌 내 5층 건물(완산구 권삼득로 63-1)을 리모델링해 예술협업 창작지원센터인 ‘놀라운 예술터’도 들어설 예정이다.


 

▲예술촌으로의 변화, 시민들의 삶을 바꾸다!

성매매집결지의 오명을 뒤로 하고 점차 성매매업소가 줄면서 전주 노송동 일대도 살기 좋은 마을이라 문화예술거점마을로 점차 변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선미촌 일대는 과거 시민들이 찾기 꺼리던 기피 장소에서 어린아이와도 함께 찾을 수 있는 예술마을로 변화했다.

이 일대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과거에는 자신이 이 마을(선미촌)에 산다는 점을 밝히기 꺼려했지만, 이제는 ‘서노송예술촌’ 주민이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얘기할 정도가 됐다.

성매매업소가 감소하면서 이 지역의 범죄 발생 건수와 112 신고접수 현황도 점차 감소한 것도 이곳이 살기 좋은 마을로 변화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 성과에 힘입어 전주시는 지난해 10월 ‘제5회 대한민국 범죄예방대상 시상식’에서 ‘선미촌 문화재생사업’으로 범죄예방을 위해 노력한 우수기관에 선정돼 경찰청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앞서 선미촌 정비를 위해 지난 2014년 발족한 전주시 선미촌민관협의회는 집담회, 정책토론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점진적 기능전환방식으로 문화재생사업을 추진하면서 2015년 전국 지속발전 대상 시상식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특히 전주시는 대규모 공권력을 투입해 성매매집결지를 밀어버리고 그곳에 아파트 등 대규모 개발사업을 펼쳐온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리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한 점진적인 기능전환을 추진하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강제철거 방식의 경우 반대에 부딪혀 성공하지 못하거나, 수많은 후유증을 낳았지만 전주시가 추진한 점진적 문화재생사업의 경우 다소 시간은 더 걸렸더라도 큰 충돌 없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성공사례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선미촌 문화재생 프로젝트’는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지난 2019년 7월에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로부터 지속가능발전교육(ESD) 공식프로젝트로 인증을 받기도 했다.

가장 큰 성과는 폐쇄된 공간에서 여성들의 인권이 유린당했던 이곳이 새로운 여성운동의 상징공간이자 문화예술의 힘을 확인하는 혁신공간이 됐다는 점이다.

과거 해지는 시간이면 빨간불이 켜졌고 새벽무렵까지 보이지 않는 다양한 폭력이 행해졌던 선미촌은 이제 누구든지 24시간 언제나 자유롭게 소통하고 문화를 향유하며, 삶의 질을 높이는 공간으로 변화했다.

누군가에게 빼앗겼던 시민들의 공간이 60여 년 만에 마침내 시민들에게 되돌아온 것이다.


 

▲서노송예술촌, 가장 특색 있는 인권과 예술의 공간으로!

서노송예술촌에 자리한 ‘뜻밖의 미술관’에서는 그 동안 인권을 주제로 한 ‘오감연대’ 전시회, 서노송동의 역사를 주민들과 함께 그려낸 ‘노송도팔연폭(老松圖八連幅) 전(展)’, 텃밭·정원과 관련된 전시인 ‘미술관에 피는 꽃’ 등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여기에 오는 12월에는 예술인과 시민들이 함께하는 문화예술 협업 프로젝트 공간인 ‘놀라운 예술터’가 개관하게 된다.

시는 이곳에서 예술인들의 안정적인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동시에 시민들이 다양한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창작활동 공간 △전시 공간 △문화 카페 △회의실 △강의실을 갖출 예정이다.

놀라운 예술터가 생기면 뜻밖의 미술관과 함께 서노송예술촌의 양대 문화거점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서노송예술촌의 또 다른 특징은 비록 아픈기억일지라도 성매매집결지였던 마을의 기억을 고스란히 보존했다는 점이다.

도시의 아픈 기억이든, 좋은 기억이든 그 기억 자체가 도시의 역사라는 생각에서다.

동시에 여성들의 인권이 유린됐던 폭력의 공간이었던 과거를 잊지 않고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도 담겨있다.

무엇보다 시는 올해를 성매매 종식의 원년으로 삼고 문화예술 인프라를 추가 구축하고 주민공동체 활동을 더욱 확대하는 등의 ‘선미촌 2.0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 과정을 거쳐 성매매집결지였던 선미촌은 국가대표 여행지인 전주한옥마을과 연계해 전주의 대표적인 명소로서의 완성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선미촌 기능전환 사업은 ‘여성의 인권’과 ‘도시의 기억’이라는 두 가지 관점을 충실히 지킴으로써 느리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전진해 왔다”면서 “두려움을 이겨내는 용기, 여성인권활동가와 주민, 예술가들의 협력, 여성인권이라는 관점 위에 조성된 서노송예술촌이 자유로운 소통과 문화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완성도를 높여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낙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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