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가을장마-태풍 방제 씻어내
도내 벼43% 4만9,303ha 피해
전북도 농식품부 농업재해 인정
재해복구 지원 정밀조사 요청
이상기후 직접원인 확인돼야

농민회도연맹 "때늦은 장맛비
명백한 자연재해 전북만 극심"
도의원 농업재해인정 1인시위
권익현군수 피해입장 강력건의

신동진벼 장기재배 저항성 감소
1999년부터 재배 품종 변화 필요
참동진벼 개발 2024년 정식보급
송지사 품종 다변화 공동 대응

8월 13일후 출수된 포장서 병발생
저온-강수일수-일조 등 기상 최악
송영길 피해현장 방문 힘 실어
이달 중 농업재해 대책 심의 결과
이상기후 연관성 입증 관건

지난 가을, 전북지역에서 역대급 벼 병해충 피해가 발생했다.

부안을 비롯해 인접한 김제, 정읍, 고창, 군산 등 서남권 중심의 전북도 전역에 가을장마(8월15일~9월6일)와 태풍 피해가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전북도는 시ㆍ군에 벼 병해충 피해 규모 조사를 진행한 뒤 결과를 농림축산식품부에 전달하고 전북의 농업재해지역 인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어 농식품부는 농촌진흥청에 피해 원인 파악을 위한 정밀조사를 요청했고, 농진청은 이상기후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한달 간의 정밀조사를 진행했다.

현재는 농식품부와 검토 분석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나 ‘신중한’ 조사분석을 위해 보름 동안의 기간 연장에 들어간 상태다.

벼 병해충 피해지역에 대한 ‘농업재해’ 인정 여부는 오는 11월 중 판가름 날 것으로 예상된다.

벼 병해충 피해가 가을장마 등 이상 기후 연관성에 따른 ‘농업재해’로 인정될 경우 농가에는 일정한 보상지원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벼 병해충 피해의 심각성과 전북이 ‘농업재해’ 지역으로 인정받아야 할 당위성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역대급 벼 병해충 피해…타는 ‘농심’  

지난 8월 중순을 지나면서 전북지역에는 가을장마와 태풍 등 이상기후로 병해충이 삽시간에 번져갔다.

6월 10일을 전후로 심어 놓은 벼는 8월 10~20일 이후까지 출수기를 거치면서 가을장마와 태풍을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가을장마가 지속되는 가운데 8월 23~24일 사이 불어 닥친 제12호 태풍 ‘오마이스(OMAIS)’ 는 한반도 남단과 일본 열도 사이를 향하면서 서해와 인접한 전북에 엄청난 비바람을 쏟아 부었다.

서북쪽의 고기압 대에 눌려 남서풍을 타고 전북지역으로 들이닥친 비구름은 출수기를 맞은 벼와 맞닥뜨렸고 치명상을 입힌 뒤 물러났다.

벼 병해충은 계속되는 장마와 함께 8월 초부터 발생하기 시작했고, 태풍이 지나간 뒤 급속도로 번져 나갔다.

농민들은 가을 장마와 태풍 속에서도 틈틈이 방제를 서둘렀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고 농약은 그대로 빗물에 씻겨 내려갔다.

농민들은 가을장마가 시작되던 당시부터 망연자실하고 있다.

이후 점점 말라가는 벼를 속절없이 바라보던 농민들은 새까맣게 타는 마음으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이 지난 9월 전국의 벼 피해 추정면적을 조사한 결과 재배면적 13만5천308ha에서 병충해가 발생했다.

전북도 농업기술원은 지난 9월 13일 기준 도내 전체 벼 재배면적 11만4천509㏊ 가운데 43.05%인 4만9천303㏊에서 병해충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삭도열병이 26.5%인 3만376㏊로 가장 많았고, 세균 벼알마름병 1만684㏊(9.3%), 깨씨무늬병 8천243㏊(7.2%) 등의 순이었다.

시ㆍ군별로는 부안 1만2천689㏊, 군산 6천757㏊, 고창 5천930㏊, 남원 5천5㏊, 순창 4천602㏊, 김제 3천972㏊ 등의 순으로 피해가 컸다.

벼 병해충 피해가 ‘농업재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농어업대책법에 따라 호우, 태풍, 한파 등 이상 기후와 이를 직접 원인으로 병해충이 발생했다는 인과관계 확인이 선행돼야 한다.

전북도는 지난달 농림축산식품부에 벼 병해충 피해에 대한 농업재해 인정과 재해복구 지원을 공식적으로 건의했고, 농식품부는 농촌진흥청에 병해충 피해 원인 정밀조사를 요청했다.

현재 농식품부는 이번 벼 병해충 피해에 대한 농업재해 지역 인정을 농진청의 기후 연관성 등 분석자료를 토대로 조사분석을 거쳐 최종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벼 병해충 피해가 농업재해로 인정될 경우 농민들에겐 농약대가 직접지원 되며, 간접지원으로 이자감면, 상환연기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벼 병해충 피해는 이상기후에 의한 자연재해”  

농민들은 벼 병해충 피해를 두고 정부에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은 “나락이 여물기 시작하는 8~9월 때늦은 가을 장마가 몰려왔고 순식간에 벼 병해충이 퍼지는 바람에 역대급 피해가 발생했다”며 “이는 명백한 자연재해이기 때문에 하루빨리 전북도를 ‘농업재해’ 지역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농 도연맹은 “전북의 병해충 피해면적은 전체 재배면적의 43% 정도로 조사됐지만 이는 벼 수확기 초기 집계된 것으로 수확기 이후 피해면적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항변했다.

도연맹은 지난달 8일 부안군 행안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전북지역의 벼 병해충 피해는 명백한 재해”라며 정부와 지자체를 성토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벼 병해충 피해가 이상기후 영향으로 발생했다는 농민들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이와 관련 도 농업기술원은 벼 병해충 피해의 가장 큰 원인으로 가을 장맛비를 지목했다.

농업기술원은 “벼 피해 추정 면적 조사 결과 호남평야 중에서도 전북의 피해가 두드러졌다”며 “전남과 충청권의 경우 가을비가 전북만큼 내리지 않아 극심한 상태는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도의회 본회의에서는 ‘벼 이삭도열병 등 병해충 피해지역 대책 마련 촉구 건의안’을 채택했다.

도의회는 “벼 병해충 피해를 농업자연재해로 인정해 재해대책 복구비를 지원하고, 농작물 재해보험 제도 개선과 농업 분야 기후변화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 도의회 최영일 부의장(순창)과 강용구 도의원(남원) 등은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농업재해지역 인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도의원들은 “벼 수확기에 이상기후로 발생한 병해충 피해가 심각하다”며 “하루빨리 정부의 피해 대책이 수립돼야 한다”고 성토했다.

막대한 벼 병해충 피해를 입은 부안지역에서는 권익현 군수가 지난달 30일 피해현장을 찾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농업재해 인정을 요청한 데 이어 지난 3일 송하진 전북도지사를 면담하고 농업재해로 인정될 수 있도록 재차 요청했다.

권 군수는 가을장마로 인한 병해충 방제횟수를 기존보다 늘렸으나 이삭도열병 등 피해가 확산됐다는 입장을 밝히고 농업재해 인정을 강력하게 건의했다.

 

▲저항성 떨어진 벼 품종 지목 ‘이례적’  

호남평야의 벼 병해충 피해는 긴 가을장마와 태풍에 덧대 신동진벼 품종의 장기간 재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벼 이삭이 나오는 출수기에 잦은 가을장마가 내려 방제 효과가 적은데다 주력 품종인 신동진벼의 장기간 재배로 저항성이 떨어진 원인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가을장마와 태풍은 벼 병해충 피해 원인으로 지목된 상태지만 신동진벼 품종을 또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신동진벼는 지난 1999년부터 재배를 시작한 벼 품종으로 올해 전북지역 전체 벼 재배면적 11만 4천509㏊중 64%가 이앙됐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전북의 쌀 품종 다변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중만생종인 신동진벼에 병해충이 집중돼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 때문이다.

도 농정당국은 “병해충 발생 요인은 이삭이 패는 8월 중ㆍ하순에 찾아온 가을장마로 논에 살포한 방제약이 씻겨 나간데다, 신동진벼의 저항성 저하가 겹쳐 벼 병해충을 발생시켰다”며 “병해충에 강하고 밥맛이 좋은 신품종 참동진벼 공급을 서두르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와 관련 농진청은 신동진벼의 우수한 밥맛 등 장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병해충에는 훨씬 강한 새로운 벼 품종 참동진벼를 개발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참동진벼는 오는 2024년부터나 정식보급이 가능해 신동진벼를 빠른 시간 내에 대체하는 데는 무리가 다를 수 밖에 없다.

이와 관련 송하진 지사는 지난달 26일 허태웅 농촌진흥청장을 만나 벼 병해충 피해에 따른 세심한 기후분석과 벼 품종 다변화를 위한 공동 대응을 촉구했다.

송 지사는 전북도의 병해충 피해가 기후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과, 내년에 농진청에서 개발한 참동진벼 등이 농가에 확대 보급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벼 병해충 피해 ‘농업재해’로 인정해야 

최근 농촌진흥청은 농림축산식품부와 벼 병해충 피해 조사 결과를 놓고 검토 회의를 가졌다.

농진청과 농식품부는 벼 병해충 피해와 관련된 당시의 기상 상태, 벼 품종, 시비(비료), 농가들의 방제 문제 등 4가지에 중점을 두고 심층 조사분석을 진행 중이다.

당초 한달 간의 조사기간을 마무리하려 했으나 보다 정밀한 분석을 위해 보름 동안의 기간 연장에 들어가 빅데이터 자료 분석을 하고 있다.

벼 병해충 피해를 농업재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가을장마 등 이상기후가 원인이라는 인과관계가 드러나야 한다.

농민단체는 이번 벼 병해충 피해에 대해 농업재해 인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이삭이 패는 출수기인 지난 8월 중순을 전후로 농가마다 수 차례 방제약을 살포했지만, 장마와 태풍에 방제약이 씻겨나가 제대로 된 약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이 병해충 발병의 원인이라며 농업재해 지역 인정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13일 이후 출수된 포장에서 병 발생이 많았고 발병 조건인 저온, 강수 일수, 일조 등 출수기 병 발생에 최적의 기상조건을 형성했다는 것이 도 농정당국과 농민들의 한결같은 입장이다.

정치권에서도 농업재해 인정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원택 국회의원(부안ㆍ김제)은 긴 장마 피해가 폭염, 폭우 피해 같은 또 다른 자연재해라는 점을 농식품부에 인식시키는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의원은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를 집중 지적하고 대안마련을 요청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지난달 30일 전북의 김제·완주 벼 병해충 피해 현장을 방문해 벼 병해충 피해 해결에 힘을 실었다.

송 대표는 이날 김제·완주 벼 병해충 피해 현장을 방문한 뒤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농민들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중앙정부에 피해상황을 잘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또 “농업자연재해 인정과 함께 재해대책 복구비가 제때에 지원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농식품부는 농진청 정밀조사의 최종 결과가 나오면 11월 중 농업재해 대책심의위원회를 열어 농업재해 인정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지난 2014년 전남지역을 휩쓸고 지나간 병해충이 기후변화와 연관성을 입증해 농업재해로 인정받은 전례처럼 전북지역 피해 또한 이를 따라 결정돼야 한다는 것이 전북의 입장이다.

농식품부는 이번 농진청의 정밀 피해조사 등을 철저히 분석해 농업재해 지역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망쳐버린 일년 농사를 바라보며 가슴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농민들에 대한 농업재해 인정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신우기자 l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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