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선 현대무용단 '모나리자' 등
현대무용으로 재탄생 무대올려

이번엔 미술이다.

그것도 세계적인 거장으로 잘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다빈치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 그리고 ‘비트루비안 맨’이 570여년이 흐름 지금 현대무용으로 재탄생됐다.

강명선현대무용단이 지난 26일 선보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명작의 숲’은 타 장르와 결합을 시도한 두 번째 무대다.

지난해에는 음악을 모티브로 한 ‘베토벤 걸작의 숲’을 소개한 바 있다.

올해는 미술이다.

타 장르와 결합은 예술가 입장에선 상상력과 영감을 불어넣은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음악이나 미술 같이 공통점이 없는 장르와의 결합은 끊임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을 뿐 아니라, 예술가의 무한한 영감을 바탕삼아 새롭고 신선한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반면 지나칠 정도의 주관적 해석으로 자칫 원작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객관적이고 보편성 있는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게 관건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 협업에서 그칠 가능성이 매우 크며, 주관만 가득 찬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지난해 선보였던 ‘베토벤 걸작의 숲’에서 이미 강명선현대무용단은 자신들의 능력을 검증한 바 있다.

베토벤의 음악을 바탕으로 풀어내는 몸짓은 투쟁을 통해 얻은 내면세계의 성찰과 명상을 전달해주며 주목을 받았다.

메시지의 효과적 전달은 객관성을 얻는 유일한 통로며 관객과 소통하는 밑받침이 된다.

이번 무대 역시 마찬가지다.

예술의 영역이 무너지고 불분명해지는 것이 현대예술의 추세라지만, 강명선무용단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간결하고 단순하다.

철저하게 억제되고 과장되지 않은 몸짓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관객은 몸짓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소개된 다빈치의 세 작품은 익히 알려진 소재다.

잘 알려져 오히려 선택하기 어려울 수 있다.

유명한 소재는 관객과 공통분모를 형성하기 쉽지만 반면 평행성이 만들어 질 위험성도 크기 때문이다.

강명선현대무용단은 과거 기억 속에 존재한 다빈치를 현대로 소환해 그들만의 언어로 무대를 풀어간다.

영상으로 만들어진 다빈치의 작품을 배경삼아 때론 격렬하게 때론 유연한 몸짓으로 관객과 시선을 맞춘다.

무용으로 다소 전달하기 어려운 부분은 영상을 통해 부족한 점을 메운다.

영상은 풀리지 않은 퍼즐의 마지막 부분을 메워주며 비로소 보편적인 면을 완성해 나간다.

여기에 가쁜 숨을 쉬어가며 무대 안팎을 휩쓰는 무용수들은 상상의 이미지를 전달하며 무대를 이끌어간다.

최근 들어 현대무용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느낌이다.

전통무용도 현대무용의 몸짓을 표현하고, 발레도 그런 경향이 보인다.

경계에 선 현대무용이다.

이런 와중에도 강명선현대무용단은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다.

전작 ‘베토벤 걸작의 숲’이 무용과 음악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얼굴을 선보였다면, 이번 무대는 미술을 통한 현대무용의 새로운 확장이다.

그 확장의 지평이 어디까지 진행될지 자못 궁금하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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