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고산성을 견훤이 쌓았다고 하여 견훤산성이라고도 한다.

남고산성 인근에는 포은정몽주우물터, 무형유산원, 반곡서원, 산성천, 삼경사, 불정사, 관성묘, 대승사, 남고사 등과 대숲길이 있고, 느티나무가 반겨주어 역사문화와 얘기하고 즐기며 걸을 수 있는 힐링의 공간이며 어린이들이 즐겨 찾을 수 있는 야호 놀이터는 친 환경자재의 놀이시설이 있다. 

임실, 남원에서 전주로 들어오는 유일한 길목이요 가파른 산세로 기어오르는 적들을 한눈에 바라보며 격퇴할 수 있는 천연요새 남고산성이 있다.

남고산성에 오르려면 산성천의 졸졸 흐르는 맑고 깨끗한 개울물 소리를 들으며 동네 어귀에 턱 버티고 서있는 느티나무를 지나면 어디선가 관운장의 기합소리에 놀란 적토마의 울음소리가 계곡에 울려 퍼진다, 진본 삼국연의도는 도난당하고모사품이 전시되어 옛 모습을 떠 올리게 한다. 

남고산성은 천경대-만경대-억경대의 봉우리를 성곽으로 연결하여 자연경관이 빼어나다, 천경대에서는 천가지 풍경을 바라보고, 만경대의 천년송은 온데 간데 없고 충신의 아이콘 포은정몽주의 암각서가 비바람에 씻겨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도록 훼손되어가고 있다. 만경대를 돌아서면 천년고찰 남고사가 바라보며 예까지오느라 고생했다며 약수 한 사발 마시라며 손짓한다.

남고사 경내를 무심코 들어서는데 사천왕의 부릅뜬 눈에 깜짝 놀라 쳐다보니 너무도 크게 보여 그만 움츠려진다. 

저녁노을에 남고사의 종소리가 어우러진 멋진 광경을 남고모종이라 하는데 풍류를 즐기는 선비들은 어디에 있는지? 없어진 남고사의 종을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어디런지 홀연히 떠나고 말았는지, 후세들은 전주팔경 중 일경인 남고모종을 즐기지 말라는 것인지 옛 선비들에게 물으며 억경대로 향하는데 남고진사적비가 보인다.

남고진사적비의 비문은 창암이삼만이 썼다, 창암은 전주에서 활동하던 서예가로서 중국에까지 이름을 날렸고 조선3대 명필로 꼽히기도 하였다, 한양에서 활동해도 어려운 조선3대 명필을 창암 이삼만은 지방인 전주에서 활동하면서 조선3대 명필의 반열에 올랐으며 창암의 암각서는 한벽당 뒤 자만동 입구에도 있다.

남고산성은 군사들이 1,200여명이 주둔하고 우물이 몇 개이고 민가가 100여채 있었고 군사 훈련하던 북장대가 있었다고 한다, 위봉산성이 축조되면서 성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지만 지금도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내가 없었다면 전주부성을 지키지 못했다며 놀리는 듯하다.

억경대 오르려고 성곽을 걷는데 너무 가파라 땀이 줄줄 흐르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역경대 정상에 전주를 바라보는 경관에 취하고 너무도 상쾌한 기분에 힘들게 올라온 거조차 잃고 말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64세의 노구에도 의병을 모집하고 남고산성을 보수하여 전주부성을 지켜 낸 충경공 이정란 장군의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왜구들은 전주부성에 한 발짝도 들여놓지 못하게 하겠다며 의병들을 좁은 목이 보이는 대승사에 주둔케 하고 무기가 부족할 때를 대비하여 돌무더기 쌓아 놓고 지켜 낸 전주부성, 남고산성 가는 길목에 충경공 이정란 장군 사당이 있다.

남고산성 올라가는 길목의 대숲에서 바람소리에 대잎이 흔들리는 정경은 남고산성을 오르지 않으면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다.

이정란 장군은 왜구들이 전주부성을 한 발짝도 들여 놓지 못하게 하였고, 금재 최병심은 서슬퍼런 왜구들에게 굽히지 않고 조상이 물려준 한벽당을 철거하지 못하게 항거하자 왜구들 맘대로 하던 시절에도 한벽당을 보존할 수 있도록 지켜낸 기개가 전주정신이며 호남정신이고 전라도 정신이 남고산성에도 오롯이 남아있다는 생각이다.
 
/전주시 완산구 서서학동주민자치위원장 박영진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