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는 전주를 도읍지로 산성을 쌓고 왕궁을 지어 고대사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나라로 기억된다.

후삼국 중 가장 강력한 기세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삼한일통을 위해 전주를 넘어 한반도 전역을 종횡무진 교차하였다.

중국과 일본에도 그 이름을 날렸다.

비록 그 기간이 길지는 않더라도 한 나라의 왕도(王都)로서의 경험은 다른 도시에서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전주만의 역사이다.

그러나 후백제는 천년이 넘는 세월의 더께에 묻혀 잊어졌다.

유구한 세월 속에 우리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한 역사가 되었다.

때문에 후백제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은 편향적이다.

전주가 후백제의 왕도였다는 사실보다는 아들에 의해 금산사에 유폐되어 불우한 삶은 살았던 견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견훤은 뛰어난 용장이다.

단적으로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아도 ‘내가 목적하는 바는 평양의 누각에 활을 걸어놓고 말에게 대동강의 물을 먹이는 것이다’라는 내용을 통해서 삼국통일의 야심을 내비친 호걸이었다.

당시 왕건, 궁예와 당당히 어깨를 겨루던 후삼국시대의 주역이었고, 우리고장 전주는 이런 견훤의 깃발이 힘차게 펄럭이던 후백제의 심장부였다.

후백제 심장부의 역할은 7개 지자체로 구성된 후백제문화권 지방정부협의회에서도 계속된다.

회장도시가 전주시이며,  엄중한 책임이 주어졌다.

우선 지난 2021년 6월에 시행된 ‘역사문화권 정비에 관한 특별법(약칭 : 역사문화권정비법)에 후백제를 포함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법에서 정의하고 있는 역사문화권이 될 수 있는 조건은 ① “고대”에 속하는가, ②“고유 정체성”을 형성 발전시켰는가, ③ “권역” 즉 특정 지역을 특정할 수 있는가, ④“문헌기록과 유적 유물”이 있는가 로 요약된다.

후백제는 법이 정하는 ①고대에 속하는 국가이며, 뚜렷한 ②정체성을 갖춘 국가로 지방 통치체계도 갖추었고, 현재의 ③전라도와 충청 일부, 경북 북부지역과 경남 서남부 지역을 포괄하여 이 지역에서는 ④후백제의 유적과 유물이 확인된다.

따라서 후백제문화권은 역사문화권정비법에 정하는 기준에 합당할 뿐만 아니라 그 의미와 가치 역시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후백제문화권의 법제화는 당위성이나 합리성으로 이룰 수 없다.

단순히 지역 개발의 열망만으로 후백제문화권이 법제화되고 사업들이 이루어진다면 결국은 파도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모래성의 신세를 면치 못할 수 있다.

즉 후백제문화권의 법제화는 합리적이고 정당한 논리가 뒷받침되어야 하며 문화권 내 구성원들이 수긍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후백제 영역에 속했던 시․군이 참여하는 후백제문화권 지방정부협의회의 활동이 중요하다.

협의회 차원에서 시․군마다 후백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후백제를 조명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필요하다.

비단 그러한 노력은 지방정부 차원어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바로 후백제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학계의 노력, 가치와 의미를 지역사회에 확산시키기 위한 시민단체의 노력 역시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은 단순히 한 고대국가의 역사문화적 지평을 넓히는 차원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남․북의 분단, 주변국과의 갈등, 그리고 지역과 이념의 분열 등 혼란을 통합으로 귀결시키는 정신이 될 것이다.

1,100년 전 후백제가 삼국 통일의 열망을 키웠듯이 후백제의 통합 정신을 바탕으로 지역 간 화합과 공동 발전의 시간을 열어갈 것이다.

이제 우리는 후백제 연구를 해온 학자들의 노력과 성과의 바탕 위에, 문헌자료와 문화유산을 종합적으로 살펴 후백제의 역사와 문화의 본 모습이 드러나길 기대해 보자.

/서배원 전주시문화관광체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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