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가약(百年佳約)과 풍수지탄(風樹之嘆) 그리고 지독지정(舐犢之情)











 

제목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도의원 유유순

백년가약(百年佳約)과 풍수지탄(風樹之嘆) 그리고
지독지정(舐犢之情)

젊은 남녀가 만나 100년을 함께 하자는 약속.

어버이께 효도를 다하려 했지만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 것,

한낱 미물인 소가 어린 송아지를 챙기는 모습 등을
설명하는 고사성어다.

가족들간의 최소한의 약속과 정, 사랑을 이야기 한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은 사회를 구성하는 최초의 시작점이자 최후의 도착점이다.

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자신을 수양하고 가족을 돌본 뒤에 사회와 나랏일을 한다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는 바로 이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매스컴에 연일 보도되는 가족간의
형용할 수 없는 사건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가족의 의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기회를 돌아보게 한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이렇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부부끼리의 범죄,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거나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는 극단적인 범죄는 과거에도 없었다고 할 수 없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욱 무도해지는 경향이 있다.

선진 외국에서조차 ‘한국의 가족문화가 사회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는 연구사례를 내 놓고 이를 학습하여 가는 마당에 모델 스스로가 내적인 문제해결을 못하고 퇴보하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고려 말 주자학의 도입이후 정신적 세계는 불교가 지배했지만, 사회 전반과 정치사상에
유교교리는 우리 민족의 의식세계를 지배해왔다.

유교사상이 강조하는 것이 충(忠), 효(孝), 의(儀), 예(禮)였고, 이중 효를 기본으로
했기에 가족 공동체의 끈끈함은 유교의 종주국인 중국보다도 더욱 철저하고 각별했다.

또 불과 수 십년 전까지 농업이 주요 산업이였기에 생산주체를 가족 구성원으로
충당을 해가정과 사회생활의 내외가 일치하고,  위계와 질서가 이뤄졌다.

 

하지만 한국전쟁이후
한국의 가족사회가 한차례 붕괴를 한 뒤, 산업사회로의 전환시기와 외국문화의 유입. 정부의 출산율 억제 정책 등 사회 전반의 복합적인 원인으로 유교적 가족공동체 의식은 점차 희박해졌다. 

이렇게 되기까지 기성세대의 잘못이 너무도 큼은
모두가 알아야 한다.

기성세대의 무관심과 지나친 애정, 비뚤어진 현실에 대한 이해가 의식을 약화시켰다.

급격한 산업사회로의 전환에서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했을 60-70년대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아가며, 삶의 질 문제의 부각과 열등의식을 자식으로부터 해소하려 했던 80-90년대.

그리고 준비하지 못한채 맞이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세대간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정신적 교감을 이루지 못하는 현재.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부부간에 부모 자식간에 정신적
교감이 순수하고, 온전히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물론 일부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문제라 느껴지는 순간 바로 우리의
가정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음은 눈을 감고 돌아보면 감지할 수 있으리라.

우리 어른들 스스로가 옳다 믿는 것과 이렇게 살면
편하다는 생각의 괴리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가정교육의 폐해가 자라나는 세대의 사고방식을 삐뚤어지게 한다.

 

요즘은 현상에 대해 분석을 시키는 교육이 대세다.

하지만 사물 그대로를 그대로 바라보게 할 수 있는
순수한 마음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솔직히 부부와 부모 자식간의 정이 단순한 혈연공동체를
벗어나 합리적인 선택을 가능케 한다면 삭막해진다.

부부는 이성(二姓)간에 이성(異性)끼리 만나
사랑이라는 순수함으로 맺어진 인연이며, 자식은 그 사랑의 결실로 또 다른 자아를 만들게 된 천륜이다.

합리적으로 만나 결혼을 해 이해타산이 떠난 경우
헤어져버리고, 아이를 낳고 부모를 모시던 중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판단이 서면 이를 저버리는 그런 관계가
아니란 말이다.

 

많은 학자들과 사람들이 가정을 되살리고, 가족공동체가 건강하게 유지 되는 방법에 대해 여러 고견을 내놓는다.

하지만 왠지 너무나 힘들어 보이고 어색하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며 순수함을 생각한다면
더 쉽지 않을까?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심으로 별로 즐거울 것은
없어도 살아 숨쉬는 것 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인생을 가게끔 해주신 부모님의 은혜.

사랑이라는 열정으로 과거에는 몰랐지만, 서서히 알아가며 든든히 인생의 친구가 되어주는 배우자.

그리고 그 배우자와의 합의 아닌 합의하에 만들어
놓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들.

그냥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를 느끼게 해준다면 그나마 우리 가정은 기쁜 웃음이 마르지 않을 그런 휴식처가 될 것이다 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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