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행은 1시간의 시차관계로 오후 3시에 심양에 도착하여 심양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받았으나 베이징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으로 인해 중국세관 검문검색이 예전에 비해 까다롭게 이루어져 예정 시간보다 상당한 시간이 지체된 뒤 만주 봉천 땅을 밟게 되었다.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100여년을 기다린 중국인들의 인내심과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철저한 검문검색은 우리 일행 모두가 십분 이해하였으나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지폐까지 검사하는 중국세관의 지나친 검색은 우리 일행을 당혹스럽게 하였다.
그러나 피켓을 들고 마중 나온 교포 3세 가이드 최경애 양의 따듯한 미소를 보자 겨우내 얼었던 눈이 녹듯이 우리 일행은 불과 몇 분 전에 행해진 불쾌한 검문검색을 잊고 요녕성의 수도이며, 옛날 봉천으로 알려진 심양에서 북릉을 관람한 후 중국민항으로 1시간을 경유, 연길에 도착하여 숙소를 잡고 여장을 풀게 되었다.
우리 일행을 친절하고 정겹게 맞은 가이드 최경애 양은 버스로 이동하는 짬을 이용해 최 양의 사촌 언니가 한국으로 시집갔으나 사기결혼으로 결혼생활에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말을 듣고 뜻이 있는 몇몇의 평통위원들이 모여 여독을 풀기에 앞서 한국의 결혼 실상과 탈북자들의 현실에 대한 진지한 대화가 새벽까지 이어져 본 기자가 이전에 생각한 유람이라는 생각을 무색케 했다.
우리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황홀한 비취색으로 물든 천지를 보는 순간 심장이 멎는 벅찬 감동과 환희를 받는 동시에 백두산이 지난 1962년 천지를 기준으로 북한과 중국정부가 금을 긋고 산의 60%는 북한, 40%는 중국 땅이 되어 중국인들로부터 장백산으로 불리 우고 있다는 현실에 가슴이 아팠다.
더구나 같은 피를 나눈 우리 동포가 굳이 중국 땅을 경유하여 우리민족 고유의 성산인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다는 점에 아쉬운 속내를 털어 놔야 했고 지척에는 북한에서 천지로 내려올 수 있도록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며 남한에서 백두산으로 갈 수 있는 직항로가 하루 빨리 개설되어 중국에서 벌어 들이는 관광수입이 북한으로 유입되어 북한경제활성화에 기여해야 한다고 간절히 바랬다.
14개 시∙군 민주평통 중 임실군 지부가 백두산 천지를 막차에 답사하였으나 하느님이 도우심 인지 아침에는 날씨가 흐려 아마도 천지를 볼 수 없을 것이 다는 가이드의 말에 모두가 실망을 금치 못했으나 다행히도 백두산으로 가는 도중에 흐렸던 날씨가 개여 닭살이 돋아날 정도의 푸르스름한 천지의 수면과 장엄한 계곡을 뚜렷이 볼 수 있게 되어 모두가 기쁨을 감추지 못했으며 최 가이드는 “중국의 영웅인 등소평도 천지를 보기 위해 세번을 방문하였으나 한번도 천지를 관람하지 못했는데 여러분이 평소에 착한 일을 많이 하여 300만원짜리 관광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농담을 던지며 우리 일행을 즐겁게 하였다.
백두산 산중에서의 고즈넉한 잠을 청하고 셋째날은 선구자의 숨결이 깃든 용정으로 향했다.
오후에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을 마주 보고 있는 북경도시 도문시를 향해 달리자 도로 우측으로는 압록강의 폭이 좁아 북한의 모습을 제법 가깝게 볼 수 있었으며, 두만강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실향민의 아픔을 달래고 있는 노인네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가슴이 답답해 짐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머지 않는 날에 북한에서 다리를 건너서 도문을 방문했을 때 실향민들의 눈물도 마를 수 있을거라 기대해 봤다.
나는 22명의 임실군민주 평통위원들과 3박4일의 빡빡한 답사 일정을 마치고 인천행 대한항공에 몸을 의지, 3일간의 일정을 회상하며 백두대간 시발점 백두산천지에서 하루 빨리 민족통일의 염원을 간절히 빌었으며 또한 요동벌을 달려 만주봉천과 두만강에서 일송정과 해란강을 만나고 일제에 항거한 민족투사들의 살아 있는 숨결을 느꼈으며 짧은 일정이었지만 척박한 중국 땅에서도 당당하고 꿋꿋이 살아 가는 위대한 우리 민족성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임실=최경수기자chks@jj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