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눈을 떠보니 사방이 환합니다.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점등 한 꽃들이 지천으로 널려 대낮인데도 눈부셨습니다.

바쁜 요즘 세상과 닮아 가는지 차례를 기다리지 못하고 초경 계집아이 처럼 펑 쏟아놓고 부끄러워 할지 못하는 그런 봄날이 이제 갑니다.

엊그제 는개 속에 눈보라 군무를 보여주었던 마이산 벚꽃도. 배고픈 보릿고개 시절에 눈으로 나마 허기를 채워주었던 조팝꽃도 낙화유수네요. 꽃잎이 진다고 비바람을 탓 할 수 없고... 새파란 풀잎과 함께 물위에 떠나가는 저 봄날의 꽃들은 정녕사람을 위해 아름다운 것일까요? 사실 자연은 지독히도 무정하고 매정한 것이죠. 단지 인간이 유정해서, 아름다운 것들의 소멸과 추락이 아깝고 안타까워서 그렇게 무심과 유정사이를 배회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랑이여 건배하라. 추락하는 모든 것과 꽃피는 모든 것을 위하여” 다오니소스의 ‘건배’ 문장이 가는 봄날에 퍽 도발적이라며 꽃이 아름다운 건 지기 때문이고 영웅이 감동을 주는 건 마지막 순간을 혼신으로 살기 때문이라는 어느 작가의 말이 생경합니다.

진다는 건, 온힘을 다해 피었다는 것이요 마지막 순간을 산다는 건 뒤를 남기지 않고 살아 왔다는 뜻이겠지요. 뒤를 남기지 않고 피었다 진 꽃들이 그래서 더 숙연합니다.

그래도 영랑이 그랬던것 처럼 아직 모란이 피기까지 나의 봄을 기다릴 여유가 조금 있네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봄의 여윈 슬픔에 잠길 테지만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해는 가고 말아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울라면서도 아직 모란이 피기까지 기다리고 있을 찬란한 슬픔의 봄을 말이죠. 이런 봄날에 시절은 아랑곳 없이 하수상 합니다.

쏟아져 나오는 세상 별별 소식 속에 저 꽃들처럼 이쁘게 피고 진 이야기는 한줄도 없습니다.

원래 세상사 그런다 치부하지만 그래도 문명을 깨쳤고 정(正)과 사(邪)의 분별을 아는 직립 영장류들 소식 치고는 어둡기만 하네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은 희망이 있어야 하고 배부르고 힘있는 사람들은 나누고 배려해야겠다는 소망이 있는 사회가 그리운 건 그리운 것으로 그쳐야 하는지요. 하여 지치고 팍팍한 일상을 보호해 주고 껴안아줘야 할 국가 녹을 먹는 공직자들은 이런 때 일수록 정말 잘 해야겠죠. 제가 몸담고 있는 경찰은 더더욱이죠 그러나 그리하긴 커녕 요즘 오히려 자살골 넣은 삼류 축구 선수처럼 낯을 세울 수 없을 정도로 실수가 많다보니 염치가 땅에 떨어져 엉망이 되었습니다.

이봄 다가기전 얼른 추스려 지치고 힘든 약자들의 수발을 정성껏 들어 사랑받는 경찰이 되길잠시 희구 해봅니다.

봄 바람이 온 봄 부풀려 갈 때 세월 가는 걸 아파하지 않고 오늘 같이 젊은날 더 이상 없으리 라는 시인의 노래처럼 아직 모란이 피기까지 남은 봄날 동안에 우리 모두 한번쯤 낙화의 아쉬움을 잠시 미루고 바람 팽팽한 봄밤 보리수 밑에서 희망가나 목청껏 부르면 어떨런지요.

/박철영(시인·진안경찰서 정보보안과장)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