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보면 열정적인 시랑의 환상을 가지고 있던 주인공 베르테르가 약혼녀가 있는 로테를 사랑하더니 급기야 이루지 못하는 사랑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자살하고 마는 이야기이다.

소설이라고 하니 그렇지 실제로 자신의 주변에 그런 일이 있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사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한 세상을 사랑하는 일이고 한 사람을 잃는 것이 온 세상을 잃는 것이란 것을 누가 모르랴만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누구를 사랑하는 일은 주변인에게는 가혹한 일이다.

살아오면서 누구나 사랑을 경험 하겠지만 시간이 흘러 그 경험을 뒤돌아보았을 때 그 누구를 사랑하는 일이 자신을 사랑하는 또 다른 행위로서의 감정의 문제일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무슨 일이든 객관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살아가면서 겪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들면 독이 될 수 있음이다.

  그리스신화의 나르키소스는 어느 날 사냥도중 목이 말라 샘물에 가서 수면의 비친 자신의 모습이 요정인 줄 알고 감정이 복받쳐 사랑에 빠져 죽게 되는 이야기이다.

이렇듯 순간 복받쳐 오르는 자신의 감정이 실제로의 자신일까? 사실 사람에게 감정이 없다면 아마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감정은 살아있음의 역동성을 느끼게 하며 희열과 기쁨, 슬픔 등의 감정으로 미학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 원동력이 되어 예술로 승화되며 사람의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심미감의 원천이 되기도 하여 다양한 형태의 모습으로 소중하게 드러난다.

  어느 날 문득 청소년들의 자살율을 보면서 자신의 감정이 자신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이성적 기준의 판단의 부족함에 가슴이 미어지게 아파오는 건 순간 치밀어 오르는 감정이 ‘나’ 자신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감정과 ‘나’는 별개이고 그 감정은 사라지고 소멸하는 그리고 변하는 현상인 것인데 그 감정이 나의 주인이 되어 그만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은 허다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연휴는 나 자신도 이성적인 인간이 되지 못하며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여 고통을 겪은 경험이 허다하며 어느 순간 일어나는 감정이 나를 밀치며 위협할 때가 많다.

사실 좋은 감정이야 말했듯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연민하며 눈물을 흘리고 희열하며 만끽하는 감정 말이다.

엊그제 tv에서 방영되는 마이클 젝슨의 추모 라이브 공연의 녹화방송을 보면서 인간이 인간의 감정을 저리 위로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아름다운 노래며 공연에 가슴이 뭉클하며 희열감을 맛보았다.

물론 나 자신이 노래를 좋아 해서도 이겠지만 이러한 느낄 수 있음의 풍부한 감정이 참 즐겁고 달콤하듯 감정의 풍부함에서 일어나는 위대함들을 뭐라 말하리. 18세기 이후에는 감정을 에너지로 규정 했지만 고대에서 중세까지는 감정을 영혼의 질병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당시는 감정의 세계보다는 이성적 세계를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그것이 빛의 세계이다.

  어느 철학자는 자아를 검은 말 흰말로 비유하며 흰말은 참된 진선미를 추구하는 감정이고 검은말은 욕망이며 정염으로 통제해야 하는 것으로 검은말은 쓰나미처럼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릴 수 있는 고통을 수반하는 무서운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리스 신화에서 이성은 아폴론에서 감정은 디오니소스에서 유래하여 두 가지다 아주 삶에 유익하다.

제발 순간 치밀어 오르는 감정이 자신으로 착각하지 않았으면, 그 감정이 투사되어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유익한 감정으로의 승화를 생각하며 문득 감정에 대한 나의 작은 응시이다.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