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우식/(사)전북청소년교육문화원장
겨울방학 중에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둘째 아들과 함께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학교 준거집단에서 기획한 일본 문화탐방이었다. 평소 아이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아 빚진 마음도 갚을 겸 부러 시간을 내었다.

초등학생 30여명과 함께하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그 때문인지 4박5일 동안 많은 생각이 오갔다. 내 아이뿐 아니라 다른 집 아이들의 생활 모습까지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니 걱정스런 점이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대체로 아이들은 기초생활 질서나 예절 따위는 한 번도 제대로 배운 적 없는 아이들처럼 마음대로 행동했다. 남은 아랑곳 않고 아무데서나 떠들기 일쑤이고, 식사 예절은 온 데 간 데 없고, 하룻밤 묵어갈 뿐인 호텔 방은 왜 그리도 너절하게 어질러 놓는 것인지. 그러나 이런 것들은 오히려 익숙해서 새삼스럽지 않았다.

그보다는 아이들의 세 가지가 단순해지고 있는 것이 특히 심각하게 다가왔다. 음식과 놀이와 관계의 단순해짐이다. 음식, 놀이, 관계의 단순화   대부분의 아이들은 야채, 나물 반찬이나 생선을 입에 대지 않았다.아이들이 먹는 것은 대체로 튀기거나 구운 고기와 우동, 국수 등 면류가 전부였다.

같은 육류라도 색다르게 조리한 것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상당수의 아이들이 김치와 밥도 거의 먹지 않았다. 식사는 거의 뷔페식이었는데 메뉴가 제법 다양해서 어른들은 먹을 게 많았지만 아이들은 먹을 게 하나도 없다는 소리도 가끔 했다.

그러다 돼지갈비 요리가 나오자 모두 그것만 집중 공략하는 바람에 계속 리필해 놓아도 이내 동이 나곤 했다. 아침인데도 접시에 베이컨만 담아 먹거나, 아무 것도 없이 그냥 맨밥만 먹는 아이도 있었다. 물론, 아이들이 대체로 먹어본 것, 자기에게 익숙한 것만 먹는 경향이 있는 것은 보편적 현상인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음식을 먹어본 적이 있거나 먹을 줄 아는 상태에서 특정 음식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과, 다른 것은 먹어본 적도 먹어볼 뜻도 전혀 없이 한두 음식밖에 먹을 줄 모르는 것은 크게 다르다. 아이들은 노는 것도 단순했다.

여자 아이 몇과 남자 아이의 상당수는 게임기를 휴대해서 출발 때부터 내내 끼고 살았다. 버스 안이나 식당, 호텔에서도 온통 게임에만 정신이 팔렸다. 문화유적 관람은 뒷전이었다. 비싼 돈 들이고 일본까지 와서 저리 할까 싶어 딱했다.

게임기가 없는 아이들은 게임하는 아이를 에워싸고 구경했다. 호텔에서도 컴퓨터가 있으면 거기에만 몰려들었다. 서로 간의 관계 역시 단순했다. 서로 대화나 장난이 별로 없어 관계의 밀도가 매우 성긴 느낌이었다.

작은 군것질거리 하나라도 친구 것까지 같이 사서 나누어 먹는 장면을 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각자 제 것만 챙겨 먹을 뿐이었다. 자연이나 문화재에 대한 호기심과 관계 맺음까지는 애당초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었는지 모른다.

먹는 것과 노는 것과 관계 맺는 것이 단순해지고 있는 현상은 정말 예사로워 보이지 않았다. 단순화는 편향과 불균형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먹는 것이 단순해지면 튼실한 성장이 어렵고, 생존과 적응 능력이 떨어질 위험성이 있다.

편식 성향이 심신의 나태함과 사고의 균형감 상실을 가져올 가능성도 높다. 놀이의 단순함은 우리 삶의 다양성을 해치면서 문화를 획일화, 황폐화할 우려가 크다. 또 관계 능력 약화는 건강한 사회 존립을 위협한다.

본보이지 못한 어른들 편향 세 가지 상념으로 여행 내내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스러웠다. 이는 아이들의 탓이 아니다. 어른들이, 부모 된 자들이 각성할 몫이 더 크지 않나 싶다.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성적 외엔 아무 것도 가치 없다 여겨 제대로 가르치고 본보이지 못한 어른들의 편향 때문은 아닌지 돌아봤으면 한다.

지금부터라도 이러한 잘못을 어디에서부터 바로잡을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지엽적인 문제를 너무 걱정 어린 시각으로만 바라봐서 과도했다면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차라리 아이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꽉 막힌 어른의 지나친 기우였으면 좋겠다.

/정우식 원장 ((사)전북청소년교육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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