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재문화부장

한 시인으로부터 최근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자신이 쓴 시(詩)가 전주 시내버스 정류장 벽면에 걸려있었는데 최근 이 작품이 정류장에서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시내버스 유개승강장에 게시됐던 작품이 없어지고, 그 곳에 광고가 내걸린 것이다.

그는 " 작품이 필요 없어져서 철거하게 됐다면 철거 전에 미리 알려주기라도 했으면 덜 서운했을 것" 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전주시의 무성의를 탓하기도 했다. 말로만 문화예술도시라고 선전하는 것이 아니냐는 서운함도 빼놓지 않았다.

          예술작품 대책없이 철거돼

취재 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전주시가 유개승강장 관리를 민간업체에 위탁한 가운데 이 업체가 광고를 게시하기 위해 기존에 게시돼 있던 시와 그림을 떼 낸 것으로 밝혀졌다. 시는 당초 이들 작품에 대해 업체측에서 임의로 처분할 수 없도록 계약을 체결했다고 했다.
 
문화와는 무관한 민간업체의 과실이지만 ‘일방적 철거’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전주시의 무관심이었다. 전주시는 이 사업의 시작과 진행사항 등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뒤늦게 몇 개의 승강장에 시와 그림이 걸려있는지 실태 파악에 나서는 실정이었다. 2008년 당시는 ‘고품격 예술도시 조성을 위한 아트폴리스 프로젝트’ 일환이라며 홍보를 했지만 그때뿐이었던 것이다.

전주 동문거리 사업도 비슷한 예다. 수년전부터 문화예술거리를 만들기 위한 여러 사업이 진행돼 많은 설치작품들이 있었지만 현재 일부 작품은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누가 어떻게 처리했는지 알 수도 없다.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현재 동서로 동문을 통과하는 도로정비 사업이 시행되면서 남아있는 작품들도 훼손될 우려가 높다. 전주시가 뚜렷한 대안을 세우지 못한다면 동문거리를 장식했던 작품들이 또 사라질 것이다.

특히 올해부터는 14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동문거리에서 ‘예술의 거리’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서 한편에서는 기존 작품들이 무관심속에 사라지는 ‘기가 막히는’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다. 
전주 영화의 거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들이 길게는 몇 개월씩 땀 흘려 설치한 작품들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고 있다. 개인 건물에 설치던 작품들로 건물 소유자가 임의로 철거해도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전주시의 대책은 현재까지 알려진 것이 없다.

시민들의 세금으로 구입한 예술작품들이 별 다른 대책 없이 철거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전주시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사업 의지도 없이 눈앞의 결과물에만 집착하고 홍보하기에만 바쁘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사례들은 전주시가 사업계획을 수립할 당시부터 결과물을 어떻게 활용하고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장기적 안목을 갖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홍보성 일회성 문화정책 안돼

문화정책이 단순히 시정 홍보 차원에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또한 각각의 단기적이고 단발적인 사업의 나열이 돼서는 더더욱 안된다. 지속가능한 사업이 될 수 있도록 치밀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그 것은 전주시의 몫이다.
 
전주시는 문화정책을 수립하고 문화시설을 관리하기 위해 전주문화재단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전주문화재단은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조직을 정비하고 의욕적으로 출발했지만 아직까지 역할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전주한옥마을의 여러 문화시설을 수탁받아 운영하는 기구로 인식되고 있다.

문화재단이 아니라 ‘문화시설관리공단’이라는 일부의 빈정거림도 있다. ‘정책은 없고 사업만 있다’는 전주문화재단에 대한 지적은 ‘전주시의 문화 정책이 겉치레에 불과하다’ 비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주시의 문화정책이 미래를 담보할 수 있도록 전주문화재단의 분발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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