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현정치부장

이른 새벽, 전주 한옥마을은 회색빛 안개에 휘감겨 있다. 비가 올까, 우산을 챙겨 들고 새벽거리를 걷는다. 적막이 흐른다. 역시 전주는 고요하다. 선거가 치러졌던 11일 아침, 전주는 조용했다.

오후가 되자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아침과는 달리 날씨가 조금씩 좋아진다. 거리는 수많은 외국인들로 채워졌다. 삼삼오오. 이들은 천천히 걸으며 전주의 향내를 음미한다. 마치 슬로시티에 온 것처럼, 이들은 슬로우, 슬로우.

한옥마을 속에 있는 그 많은 관광객들은 전주의 고요함에 매료돼 있었다. 여유 있는 거리, 시민들의 차분한 미소. 그래서 많은 관광객들의 잔상(殘像)은 전주 그리고 전북의 고요함에 머무른다.

그러나 그날.
전주는 조용했지만 전북도민들은 매섭게 변화하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속내를 내보였다. 가감하지 않았다. 더 이상 고요했다가는 굶어 죽을 수도 있다. 속은 썩어가는데 겉으로만 안 그런 척,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속내가 터져 나왔다.

          민주통합당 향한 채찍질

도민들은 4.11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에 매서운 채찍질을 가했다. 당으로선 11개 선거구 중 9곳에서 당선자를 냈으니 이겼다거나 아니면 지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애써,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도민들의 표심이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보다 민주통합당이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이 전북의 중심정당으로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유권자들은 비판과 울분의 목소리를 표로 보여준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정읍에서 또 다시 패했다. 지난 18대 국회의원 총선에 이어, 이번에도 무소속에게 지역을 내줬다. 반(反)무소속 정서를 총결집해 무소속을 꺾으려 했지만 여지없이 패했다. 지역 민심은 민주통합당을 배척했다.

민주통합당은 남원순창에서 통합진보당에 패했다. 민주통합당 후보 공천을 전후해 공천자를 제외한 상당수가 반(反)민주당에 섰다. 통합진보당의 승리는 공식선거운동 초반만 해도, 실제 일어날까 하는 의문을 갖게 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전주완산을에선 수많은 유권자가 새누리당 후보를 찍었다. 새누리당이 어떤 당인가? 호남이 쉽게 ‘껴안을’ 수 있는 당이었던가? 하지만 투표 수의 35.8%를 새누리당이 가져갔다. 하마터면 당의 메카로 불렸던 전주에서 민주통합당이 외면당할 뻔 했다.

3선 당선자 2명의 지역구.

민주통합당은 고창부안에서 39.4%를 얻었고, 무소속 후보 둘은 각각 33.8%와 26.9%를 얻었다. 무소속 후보가 단일화했다면? 민주통합당은 아찔했을 것이다.

경선에서 난적을 꺾었던 김제완주. 민주통합당은 본선에서 55.0%를 얻었다. 하지만 불과 몇 달 활동한 무소속 후보가 36.9%를 가져갔다.

          냉철하게 돌아보고 각성해야

지난 수 십년간 전북의 중심정당이자 사실상 유일정당인 민주통합당이 왜 이런 결과를 얻었을까? 유권자가 무섭지 않다 생각했을 수도 있고, 당연히 2번을 찍겠지 하고 기대했을 수도 있다.

유권자들은 그러나, 전북의 핵심정당이라 해서 무조건 표를 주지 않았다. 지역 발전을 이루지 못한다면 차라리 새누리당을 찍자는 말이 많았던 걸, 민주통합당은 아는가? 민주통합당은 전북의 핵심이다. 그래서 민심이 언제 폭풍우로 돌변할지, 냉철하게 돌아보고 각성해야 한다.

햇볕이 따뜻한 오늘. 전주 한옥마을은 여전히, 겉으로는 평온하고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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