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 신작 소설집 '이 인간이 정말'

“울퉁불퉁해진 세상에서 균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마다 나는 기억으로 돌아갔다. 고향과 어린 시절처럼 오래된 기억은 천억 개가 넘는 뇌세포 가운데서도 안쪽 깊숙한 데 숨어 있었다. 거기에 언제든 갈 수 있다면 아직은 견딜 만한 것이다.”  

상상과 실제, 과거와 현재 등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타고난 이야기꾼 성석제(53)가 2008년 출간한 ‘지금 행복해’ 이후 5년 만에 신작 소설집 ‘이 인간이 정말’을 펴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발표한 조금은 부족하고 더러는 억울하고 대개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엄마의 주선으로 맞선 자리에 나온 백수가 상대방을 배려않고 잡다하고 불편한 정보를 늘어놓아 여자를 질리게 만드는 과정을 담은 표제작 ‘이 인간이 정말’을 비롯한 8편의 삶이 실렸다.

단순 접촉사고에서 시작된 차와 보험에 얽힌 사건들이 입장에 따라 변화되는 모습을 그린 ‘론도’, 어린 시절 다가갈 수조차 없이 아름다웠던 20년 전 첫사랑에게서 문자 메시지를 받은 화자가 떠올리는 지난날을 다룬 ‘남방’, 소설집에서 유일하게 현재가 아닌 조선시대가 배경인 ‘유희’,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늘 입고 다닌 외투를 물려 입은 화자가 그 외투가 아버지처럼 자신을 보호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외투’ 등이다.

‘이 인간이 정말’에 실린 단편들은 익숙한 이야기다. ‘크게 다치지 않는 한 상대의 실수로 일어난 교통사고를 돈 안 들이고 차를 고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는 심리를 안다.

우상처럼 동경했던 이성의 눈부신 아름다움에 대한 기억도, 잡다한 정보들을 습득하고 떠들어댄 경험도 있다.

이처럼 책에는 삶을 송두리째 흔들 만한 대단한 사건도, 비범함을 지닌 영웅과 누군가를 망가뜨리는 악인도 없다.

성석제는 ‘속도’와 ‘변화’에만 관심을 두는 오늘 사소하고 미미한 순간들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성석제의 글을 통해 재가공 돼 우리 앞에 닿는다.

무심코 지나쳤을 순간에 다시 놓인 독자는 그제서야 웃거나 욕하고 씁쓸해하거나 안타까워하며 저 마다의 순간을 추억한다.

“오늘이 어제의 기억으로 지탱되듯이 현재를 기억함으로써 미래가 생성된다. 잊지 말지니, 기억의 검과 방패로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함께 기쁨을 누리리라는 기약을. 그러니 아직 견딜 만은 한 것이다.”(작가의 말)  

작품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서영채(51)는 “우리가 다만 가지고 있었을 뿐인 시선들을 끄집어내어 보충함으로써 어처구니 영웅 괴물들의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성석제는 능청꾼이되 한두 번 정도의 실패에는 끄떡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집요한 능청꾼이다. 그런 성석제를 읽고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런 또한 대단한 ‘어처구니’가 아닐 수 없다”고 읽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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